5. 다른 것 -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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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얼리 나가보자, 유시진 연구 v. 1.0
1. 까놓고 가는 즐거움-쿨핫
2. 말
3. 자아를 가진 자의 슬픔
4. 등가의 원칙 - [마니] 해루의 철학
5. 다른 것 - 유희
니체가 백년 전에
'언제나 복수複數의 진리만이 유효하다'
는 말을 했다. 바야흐로 포스트모더니즘이 '흔한 것'이 되어버린 요즘, 이를 가장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건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펄프픽션을 시작으로 한 수많은 자기반영적인 영화들, 만약에 ... 한다면 어떨까? 인생극장스런 모티브의 열린 스토리의 영화들, 왕가위 이
후 유행처럼 번진 다수의 주인공들의 각각의 삶과 스쳐감. 물론, 음악도 조금은 그렇다. 크로스오버나 한 노래 안에 여러 장르를 짜집기하는 것은 '복수의 진리'에
근접한다고 볼 수 있다.(여전히, 음악은 가장 보수적인 장르이겠지만.)
[쿨핫]이 재밌어지는 지점도 그것과 닿아있다. 트랙 3, 4를 지나면서 내가 가장 미치게 좋아하는 부분은 어느샌가 '......'이 되어버렸다. ^^;; '......'의 순간, '멈춤'이라는 순간이 다음 트랙에서 이어질 때, 우리는 같은 사건의 다른 면을
따라 그 순간, 지금까지 알았던 것으로는 분석되지 않았던 그 사람의 내면으로 접근해간다.
준휘의 '......'가 실체를 드러낸 후, 재련이의 '......'의 등장을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렸던가!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의 감동이란! ㅠ.ㅠ;;;
여러가지로 알콩달콩 재미난 면이 많은 작품이지만, 특히나 트랙을 거듭함에 따라 딸려나오는 '......'의 변주는 주어진 정보가 주는 즐거움의 강도를 앞지르는
강력한 미지의 (새롭고 또 익숙한) 정보에 대한 기대의 즐거움을 주는, 상당히 선정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다수의 주인공들(자기 트랙이 있는 캐릭터)들이 자기의 시점을 가지고서 사건을 진행하고, 그것들이 겹치기도 하는 [쿨핫]의 이 즐거운 구도는 말 그대로 유시진의
본색의 드러남이 아닐까 한다. ^^; 작가의 말에서도 친절하게 밝히고 있는 대로다. 감정이입 대신 '어느 한 접접에서의 순간적인 공감 내지는 이해'를 추구하는 것.
너는 내가 아니니까, 내가 너를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 수도 있다. 관용을 터득하고 싶어하는 그가 택한 쿨핫의 전개 방식과 연출 방식은 얄미울 정도
로 완벽하다.
'복수의 내러티브'는 곧 '복수의 진리!' 의 표현형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복수의 진리'란 단지 '상대성 원리'로만 해석해선 곤란하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
들에 대한 예의랄까, 나름의 역사와 전투 행위, 상호작용에 대한 주의깊은 고려를 함의한다.
유시진에게 있어서 이 표현을 위해서는 다음의 양식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유희'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건 치고 빠지는 식의, 트랜디 드라마나 댄스가수들의 인기를 해먹는 무책임한 대중욕망의 이용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유희, 놀이라고 하는 것은 연습경
기이며 학습이다. 인간만이 유아단계의 특징인 놀이라고 하는 것을 개체의 인생 전체에 걸쳐 중요한 생활양식으로 삼고, 학습을 연장해서 지식을 추구하고 문명을
만든다. 놀이와 지적 추구가 인류라는 존재의 양식이며, 유전자,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느쪽을 향하던 간에.
환타지가 현실 도피만을 주임무로 삼았다면,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타지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설정'이다. 이것의 힘은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실감 vitual reality, 손내밀어 만질 수 있고 만들고 개입할 수 있는 연습경기에 있다. 픽션의 세계에서 분출한 감정들은 '가짜' 감정이 아니라
'진짜' 감정이다. 그 행위가 진짜가 아니라고 해도 감정, 시각훈련, 그것이 낳은 욕망은 진짜가 된다.
[신명기]에서 엄청난 힘과 함께 못지않은 현실적 혹은 운명적 굴레를 지고 있는 타마라의 '선택'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환타지 아닌 현실에서 갖가지
문제들에 부딪히는 여자들에게 지표가 되어줄 수는 없다. 진실로 유효한 영향을 주는 것은 그 '강도'이다. 그의 분노와 의지, 행위의 강함. 벌써부터 '사랑이 아닌
야망을 먹고 사는 타마라, 너무 멋있어요!' 라는 독자편지가 날라올 지경이니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 기왕 놀려면 크게 놀아야 하는 법. ^^;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맞부딪히는건 물론 편견에 싸인 지구촌 자본주의 중에서도 고질적인 남존여비의 나라 한국사회지만, 직접적인 현실가능성, 암울한 통계에만
매달린다면 우리의 앞날은 재미가 없다. 다른 식의 재단이 그래서 흥미로우며, 다른 시각과 다른 상상을 가능하게 하므로 인생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환타지의 실질적 효과와 대비되는 진실, 멀더 요원이 끈질기게 추적하는 '진실'이 어떤 오류를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지 또한 따져보자.
'명백한 진실'이란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가 있다고 하는 굳센 믿음에서부터 오류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자신의 다형망상을 뒷받침해주는
현실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인간의 현실은 언제나 의사현실일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기시다 슈는 오블라토(oblato)라는 귀여운 언어를 동원한다. 인간은 오
블라토에 싸여서 살며, 그 안에서의 현실밖에는 보지 못한다. 한 사람이 꾸는 망상은 '사적 환상'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망상은 '사회적 현실'이 된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말도 안 돼!' 하고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실과 허위를 구분짓는 것은 실재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미안하게
도 그것은 늘 우리의 판단이다. 즉,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판단력에 의해 과학은 진리를 공표하고, '증거는 판독'된다.
해루 말대로,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은 독이 될 뿐이다. (왠지 담배맨의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것도 같다. ^^;)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망각이 필요해지고, 그래서 고생을 많이한 한민족의 망각력은 그렇게나 대단하다.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 속에서 결국
미쳐버리도록, 자기기만의 막강한 능력이 우리 속에 유전되어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하며 싸우는 논의는 대개 끝이 나지는 않는다. 신의 존재라든가, 진화론이라든가, 남녀차별론이라든가 민족감정에 결부된 많은 민감한 사안들
은, 그 대결이 언제나 테러리즘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를 못하는 모양들을 볼 수 있다. 그 논쟁이 끝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아무리 많은 명백한 반론을 앞에 두
고서도 자신이 믿는 한가지 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그르다고만은 할 수 없는데, 왜냐면 그는 그 믿음으로써 자기 생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진위판별보다는 공생의 양식이 중요해지고, 정작 유효한 것은 윤리감각이다.
난 [미스티]를 옛날에 연재할 때 보고는 그만 잊어버린 적이 있다. 그땐 유시진이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의식이 없었고, 재밌게 봐놓고는 잊었다. ^^; (나중에 팬이
되어 그 유명한 [미스티]를 보자고 인터넷 까페까지 찾아간 내가 발견한 것은, 너무나 멋진, 그러나 한 회도 안 빼놓고 다 옛날에 봤던 만화였다...^^;;) 그러나 어디
에서 흘러온 말인지 몰라도 기억하고 있는 한 마디 강렬한 나레이션은 뇌리에 남아있었다.
이건 가장 격렬한 허위야...
유시진이 아니면 도대체 어떤 한국의 만화가가 (감히) 이런 대사를 칠 수 있단
말인가? 난 이 최초의 나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다. 일개 만화가가 이런 끝내주는 개념을 갖고 있다니, 니체를 좋아한다고 하는 나의 잘난 존심이 은근한 타격을 받
았었다. 짜릿하면서도 아픈, 묘한 기분이었다.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할 뿐이다... ^^;
진실과 허위에 대한 끝없는 의심의 논쟁 대신에, 가장 그럴싸한 분가루를 휘날리는 근사한 눈속임 대신에 평행우주를 주장하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문제는 '강도'라는 것. 그 '강렬함'에 의해 주인공은 깨어난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세계'를 허위라고 단정해 버릴 수 있는 강렬함은 단호하고도 깊고 열정적
인 사랑에서 비롯된다.
[미스티]는 여러 모로 아름답고 찡한 감동의 만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미스티]가 기본설정으로 하고 있는 양성구조의 거부는 무척 신선하면서도, 몹시 유시진다운
하나의 시험구도로 보인다. 연재 부분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허위의 세계
(우리가 흔히 '학원물'의 배경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세계)
에서 보이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얘기하는 '공주와 기사'의 성적 전도체로 만들어져 있다. 즉, 예쁘지만 강한 여자인 강빈은 예쁘고 여린 남자 유리를 보호하려 한다. 표면
적으로만 봤을 때, 이것은 정말이지 재미난 전도로서, 나레이션까지도 '내 힘이 닿는 한 널 지켜주고 싶어' '내가 좀더 강해져야 할텐데...' 등으로 pc통신 유머란에
자주 등장하는 닭살 로맨스의 공주와 기사의 대사를 그대로 옮긴 듯 하다. ^^;;;
성적 전도라는 것은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픽션에서 보건 현실세계에서 보건 간에 그것이 반드시 실질적으로 여성들이나 남성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즐거움이며, 혹시나 인생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자극이다. 우리 감수성이 남녀 양성구조에 대한 반항과 부정으
로 즐거움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까진 남성지배구조가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몇만년도 안 된 주제에 말이다.) 양성구조와 남성지배는 전혀 다른 문젤텐데 왜 이런 전도가 쉽게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 CF에라도 레즈비어
니즘을 함의한 야시시한 장면이 나오면 괜히 끌리고, 동성애라든가 기타 담론들이 양성구조를 공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즐겁다. (난 3개나 4개쯤 되는 성이 조화와 긴장감을 이루는 종족이 나오는 SF 하나 나오길 기다려보기도 한다. 재밌을거 같다. ^^*)
재미난 것은, 현대에 도전받고 있는 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기본구조, 유성생식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정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지금
생물학계에서는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성(sex)이란, 새로운 개체를 창조하기 위해 한 가지 근원 이상에서 유전물질을 얻어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바이러스 전염도 성
이라고 할 수 있다. 박테리아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이 끝없는 난혼(?)을 통해 유전자가 교환한다. 박테리아의 유전자 교류는 수평적이며, 개체들은 엄청난
적응성을 갖는다. 그 장점을 포기하고 양성을 통한 수평적 유전자 전수로만 한정했을 때 갖는 이점은 다양화의 극대화보다는 안정성을 갖춘 제한된 다양화일 것이
다.
더 재미난 것은, 진화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라고 하는 양성의 모양으로 감수분열이 자리잡고, 고등동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우연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즉, 성이 없더래도 다세포군은 고등동물로 충분히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복제인간 대량 생산을 눈앞에 둔 우리로서는 단성생식의 아이디어
가 수평적 유전자 교류와 결합하는 모양을 유전자 공학에서 그려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노말시티]가 연재를 시작한 것이 그 언제이었던가.
난 지금 진화의 단계가 발달된 뇌와 지성을 가진 인간을 통해 촉진한 전자기계 건설, 유전공학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올지 너무 궁금하다. 앞으론 자본주의의 특징
적인 '죄의식과 결부된 성의식'에서 벗어나 '기계와의 도착'이 대대적인 유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 생활양식뿐 아니라 신체의 다양화가 아주 가까운 미
래의 가능성이 된 지금, 다양함의 추구, 금기에의 도전이 들끓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부터 펼쳐질 것은 확실히 기존질서를 넘어선 차원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질서
를 형성하기 위한 '낭비기간'이 될 것이다. 더 많이 낭비하면서, 엔트로피를 높이면서 새로운 것을 실험하는 것-왕성한 청년의 우주를 즐기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가장 적합한 투자의 길이라고 난 믿는다.
유시진의 작품세계는 상당한 일관성이 있지만, 또한 해를 거듭하면서 보여주는 다른 차원과 다른 색채,,, 변화 중에 있다. 그것은 진화일 수도 있고, 요동일 수도 있다. 난 요즈음의 작품을 보며 무척 즐겁지만 동시에 '그 빨려들어가버릴듯한' 마니의 눈을 찾을 수 없어 섭섭하다. 점점 막강해지고 인간 안 같애지는 '강건체'(그
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는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 뭐 확신이야 당연히 못 하지만, 지금의 수많은 단서들을 마주치면서, 곧이어 그의 근본적인 물음 자체가 최초의 자리에서 탈피해서 사다리를 걷고 다른 층으로 올라가지나 않을까 하는 낌새는 느낀다. 물론 이건 나의 전적인 선입관이겠지만.
그가 어떤 리듬으로 요동을 하던,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나아가던 간에, 그 고집이 바뀌지 않는한, 역시 또다른 무엇으로 아마도 우리를 즐겁게 해줄것은 기대해도 좋을것 같다.
<끝> ^^;
비주얼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해 보죠...
참, 이 글에서 주장?하는 생명이론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명작 [마이크로코스모스](린 마굴리스, 도이언 세이건 1987, 범우사)를 도서관에서 읽어주세요.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들겁니다. ^^;; 하지만 수고할 값어치가 있죠. 근래에 나온 [생명이란 무엇인가?](린 마굴리스, 도이언 세이건 1999, 지호)와 [섹스란 무엇인가?](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지호)도 쓸만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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