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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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홍대앞에서 놀다보면 나이가 몇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때가 있다. 얼굴이 동안이라든가, 피부가 원래 빵빵하다든가, 화장발이
라든가, 여러가지 추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역시 나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일반적인 한국인의 생활양식과는 동떨어진 양상이어서, 신비를 자아낸다.
나이를 들면 대개 뒷모습은 속일 수 있어도 얼굴은 못 속인다고 한다. 아무리
피부가 좋고 몸매관리를 잘 했고 동안이라도 살아온 날들이 얼굴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한 피부의 손상이라면 값비싼 피부관리와 성형수술로 극복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차원이 아니다. 부모님한테 좋은 체질을
물려받았거나 미용에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대책 없이 사람들이 먹어버리는
것은 '사회적인 나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나이는 수많은 사회적 서열과 관계 속에 자신을 적응시키면서 얻어
진다. 표정과 말투와 목소리, 많은 것들이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인
나이를 노출시킨다. 그래서 '나이에 안 맞는' 옷은 입을 수가 없고, '나이에
안 맞는' 욕망은 드러낼 수가 없게 된다. 20대초반을 넘어선 여자의 공주풍 패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탄받는 것은 곧 그 나이를 넘어선 여자는 공주가 될
권리가 없다는, 인생을 마냥 즐기면서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 때는 이미 지났다
는 일종의 윤리적인 단죄인 셈이다. 나이든 아줌마의 노출이 '주책이다' 라고
비난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나이에는 성적 매력도 성적 욕구도 갖고있다는
것이 주책스러운 일로 비난받아야 한다. '제 나이에 맞게' 산다면 말이다.
나는 제 나이에 맞게 살라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인데, 그것
은 단지 나라경제의 기반이 되는 가정이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부당한 요구들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역할'이라는 것을 인간들
한테 짐지우고 나서, 스스로가 양심에 비추어서 그리고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스스로의 욕망을 주책스럽고 철없는 짓으로 깎아내리게 한다. 그것은 맨팔을
남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여자를 돌로 쳐죽이는 관습보다는
휠씬 효과적이고 세련된 윤리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멀쩡한 욕망을 짓누르는
뻔뻔한 방식이라는 점은 가려지지 않는다. 만약에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
다면, 최소한 자기가 입고싶은 것을 입고 가고싶은 데를 가고 하고싶은 것을
해야되지 않을까? 물론 선택의 자유라는 걸 달라고 주장할 정도로 근대사회의
이상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오로지 실질적인 권리와 복지를 얻어내는
순간에만 구실로서 효력을 발휘할 뿐이다. 말은 자유를 달라고, 혹은 평등을 달
라고 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이 불공정한 게임에서 장애물 몇개를 치우
면, 좀더 즐거운 인생에 도움이 될거라는 기대 정도다. 하지만, 세계 도처의
많은 여성들은 선택의 자유 따윈 애초에 없는 인생을 살지만 즐겁게 웃으며 살기
도 하니까, 그것은 그다지 삶에 본질적인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역시 본질적인
것은 욕망이며, 그것이 어떤 경로로 씨앗이 뿌려져 어떤 옷을 입고 자라났든간에
사람을 움직이게 하며, 그에게 진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진짜 기쁨을 줄 수 있는 일들만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인생은 그
다지 쉽지만은 않은데,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와 거기에 연결된 주변의 요구들
때문이다. 남들이 바라는 일이 자신이 원하는 일과 일치한다면 참 다행이겠지만,
별로 그렇지를 못하다. 대개 사람들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며, 원하는 혹은
선택한 한두 가지를 위해 많고많은 하기 싫은 일들을 하고 꿈들을 버린다.
저항해서 잃는 것들이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순응을 택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
스러운 본능이다. 원래 인간이 모여살며 문명을 만들게된 이유의 저변에는
인간이 겁이 많은 동물이라는 중대한 사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호랑이도 아
닌 인간으로선 특별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도리어 저항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간뎅이가 부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대개 어느 정도의 할 량을
다 하고 나면 더이상 못 버티고 지쳐떨어져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집이 실속이 있으려면, 저항만이 아닌 자기만의 삶의 양식을 쌓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자극들 속에서, 서로 어울리고,
다른 것들을 판별해내는 자기만의 판단력을 가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남들의
미감과 윤리감각에 의존해야만 하며 따라서 자기자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다. 그래서 '나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패션감각도 훌륭하다. 반드시
남들이 입는 것처럼 입을 이유도 없고, 남들이 아름답다고 보는 방식으로만
사물을 볼 필요도 없다. 주위를 둘러싼 환경과 어느 정도 나이를 먹도록 자라
오며 받아온 사회성 교육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엄청나게
다른 생각과 감각이 자랄 수 있기에, 다른 표현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다. 그런데 이것이 대다수에게선 언제나 자체검열되고 마니 웃기는 일이다.
'제 나이에 맞게' 주장에는 한 가지 중대한 맹점이 있는데, 나이 먹은 만큼
얻은 '경험'이라는 것의 가치를 싹 무시한다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보고 겪은
만큼, 더 아름다운 것,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할 수 있어야할텐데, 반대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매력이나 기쁨을 희생해야하고, 지친 몸과 머리에
무리가 없도록 해오던 대로만 해나가야한다. 즉, 경험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요구되는 것은 의무이행을 위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소통일 뿐이다. 이
는 의미있는 경험이 없는, 지루하고 팍팍한 생활과 단란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그걸 풀어주기 위해 제공한 쾌락들마저 대개 일회성이고 몸을 갉아먹으며 아무것도
보탬이 안 되는 성격들로 주조되어있다.)
그렇기에, 만약에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사는
것의 중요성에 동의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살아야 제대로 일이 된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젊고 아름답고 싶다면 역시
'나이와 상관없이' 사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물론, 사춘기의 몸과 성장기 이후
의 몸은 다르며, 각기 다른 적응과 대비책이 필요하다. 성장기 이후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위해 해줄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영양이나 운동이나
여러가지를 신경써줘야하고 나름의 스타일을 가꾸는 데에도 머리를 써야한다.
만약에 '사회적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고 도시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노화가 늦춰질것인가? 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믿을 만하게 된 것이 없어서
단언을 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스트레스를 안 받는 체질일수록, 그리고 스트레스
받을 관계망이 없을수록 유리할 것은 당연하다.
'나이랑 상관없이' 사는 것의 가치에 얼마만한 동의를 하든지간에, 아예 헛소리
라고 내치더라해도 그 결과물인 '젊은 얼굴'에만큼은 대다수 여자들과 다수의
남자들이 끌리지 않을 수 없을텐데, 난 이것을 미끼로 나이랑 상관없이 살며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지니는, 멋진 생활양식의 미덕을 전파하려고 한다.
상품광고란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는 그 수많은 다이어트상품이 다 어디론가로
팔려나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믿을 만한 기관에서 정확한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약점도 아닌 것 같다. ^^; 애초에, 이 가치가 등장한 것 자체가
자신의 생각을 중요시하며 언제까지나 젊고 아름답게 내가 주인공인 인생을 살려는
욕망이 현대의 각종 변화된 환경과 상호촉매작용을 하여 만들어진 것이니까.
지금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개인화 장비'는 개인을 직접적인 관계망에 덜
의존적으로 만들며 간접적이고 덜 정서적인 간접망에만 의존하고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즉 개인이 (즐거운)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가족이나
동네, 학연, 회사 등 각종 사회적 관계에 적응하며 이것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자신의 기쁨을 찾고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던 시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 관계에 대해 개인이 최초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할만
한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화 장비들을 어떻게 이용하여 스스로
편하고 마음에 드는 관계망을 만들고 모험을 즐길 것인가는 자신들에게 달린
일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사회, 그거야말로 말뿐인 이상향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지만,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이것은 지금 피어나고 있는 싹이다.
(땀 많은 사람을 위한 시원한 화장품부터 생리통의 완전정복까지!) 이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향유하기 위해 오늘도 연구하고, 노력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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