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부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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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의 권력이라니, 참 거창한 제목이다. 하지만 이미 10세 미만 20세 이상은
음용하지 말라는 음료수까지 나온 지금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젊음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피어오르는 젊음, '한창때'란 언제를 말하는 걸까? 한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창때란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고교졸업후부터 시집장가
가기 전의 몇년간을 이르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나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온 것인지 점점 한창때라는 것이 '십대후반 고등학교까지의 나이'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잘 나가는 패션모델을 봐도 그렇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멋쟁이들을 봐도 그렇다. 특히나 남자는, 일반적으로 보아 십대들만이
패션이라고 볼 꺼리가 있다. 이십대는 거의 전멸이다.(스물이나 하나둘까지는
십대패션 안에 휩쓸린다고 본다.)
90년대 후반을 휩쓴 복고풍과 힙합은 기본적으로 나이 어린 사람을 위한 패션이다.
맛이 간 얼굴로 또는 두꺼운 화장으로 위장하여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장을 할 수 없고 하이힐도 신을 수 없는 남자의 경우, 이 조건은 더욱 엄격해서
몸매와 얼굴이 안 따르는 경우 얍실한 금성무 스타일이나 비틀즈룩을 실행하는
것은 스스로 돌맞기를 청하는 일일 것이다. 여자의 경우도, 무릎 근처에서
끊어지는 스커트 라인과 얕은 스트랩은 다리가 짧거나 해서는 꿈도 꿔서는 안 될
일이다. 얼굴도 그렇다. 화사한 악세서리들을 이용하는 촌티패션은 나이가
조금이라도 들어보이는 여자가 했다간 그대로 아줌마가 된다. 기본적으로 과거의
조각같은 미모를 자랑하는 황신혜 같은 미인들 대신 등장한 최근의 패션모델들은
쫙 빠진 몸매에 쭉 찢어진 눈과 툭 불거진 볼탱이를 자랑한다. 어린애다움의
척도가 되는 솟아나온 볼이 그대로 소통가능한 십대미인의 코드로써 작용하는
것은 이미 사회가 그들을 욕망의 대상으로서 스스로를 뽐내고 쾌락을 누릴 권리가
있는 주체라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성년자에 대한 수많은 금지조항을
설정하는 법이나 언론에 등장하는 기성세대의 표면적 윤리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힙합 역시 스스로 어린 채로 남기를 원하는 패션으로, 커다란 발과 헐렁한 옷은
그가 아직 자라고 있다는 표시이자, 절대로 자라서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함의한다. 물론 힙합 물결의 변종인 이지룩은 많은 경우 '난 양아치가
아니고 대학생이다' 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 어쨋건 이 패션 역시 20대초를
넘어가서는 돌을 맞기 십상이다. 요새는 워낙에 유행을 타다보니 이지룩 정도
는 '두꺼운 화장족'도 많이들 실천하고 있지만.
막강한 피부의 권력이 패션에 작용하고 있다. 뽀얀 피부는 '어린 나이'이며
패션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보증서다. 나이를 먹어도 피부는 좋을 수 있지
않은가 할 수도 있지만 대개 그렇지 못하다. 몸매는 자기관리를 잘 하면 보전할
수 있는 것이지만, 피부는 좀더 어렵다. 특히 얼굴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나이를
먹기 때문에, 좀처럼 자기 혼자의 힘으로 어린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죽어라마셔라의 음주문화와 너도나도의 흡연관습은 대개
언제부터 놀았는가에 따라서 그만큼 피부가 맛이 가는 정확도를 보증한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뽀얀 피부와 지나친 음주흡연 문화는 상충한다.
이것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시기뿐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거라고, 짧고도 소중한 청춘을 즐기라고 패션산업과 주류산업, 그리고 담배인삼
공사는 속편히 말할 수 있다. (군대는 아무 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사는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왜 젊음은 곧 사라지며 아름다운 얼굴은
망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아주 조금, 삭았을 뿐인데도 왜 선망의 대상으로
서 자격을 잃어야 하는지 하는 물음에 대해서 '자연의 순리'라고 말하는 것은
변변찮은 답변이자 명백한 사기이다. 자연은 인간이 반드시 사회를 이루어 살며
의무와 관습의 속박 속에서 하루하루 늙어가라고 지정한 적이 없다.
피부만이, 어린 나이만이 모든 것이며 인간 일반의 인생을 즐길 권리,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곳에서 가동되는 것은 흔들림 없는 사회적인 시선이다. 피부는 이
사람의 나이가 몇이며, 따라서 어떤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어떤 애인과 사귀며
어떤 즐거움을 누릴 만한 것인지 말해준다. 물론 돈이 많은 남자들은 상당한
예외 조항을 누리며 살 수도 있지만 그러한 기생적 행태는 길을 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윤리적인 비난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제한이,
사회제도고 뭐고를 떠나서 미학적으로 가동되는 것이다. 즉 아주 무자비한
말, '어울린다/어울리지 않는다' 의 칼날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한국에서는,
상당히 센 객관적인 외양의 기준이 작동하고 있어서 이를 무시한 개인의 주관적
가치창출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짓은, 용서받을 수 없다.
미학의 엄격함 뒤에 있는 것은 물론 사회적 요구일 것이다. 젊은이들이나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놀러다닐 수 있는 것이지 나이든-각종 사회적 의무를 짊어진
성인들은 그런 꿈을 꿔선 '꼴불견'이라는, 즉 나이먹어 영계찾아다니는 늙은
이들의 추태와 같은 급이 된다는 강력한 윤리적 압박이 가동된다.
특히나 우리 일반 한국인은, 외국 영화에서 보는 삼사십대 여인들의 화려한
패션이나 성적 매력에 대해서는 아무 거부감 없으면서도, 당장 길거리에서 우아한
정장의 개념을 벗어난 도전적인 패션을 시도한 삼사십대 여인을 만난다면, 우리들은
대개 적응이 안 되어 차마 눈둘데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아줌마가 맛이간
얼굴로 화사한 신세대패션을 입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 여성들의 피부는 한국인들보다 훨씬 안 좋다. 그런데도 그들의 패션은 어울려보이는데,
이는 문화적 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이먹은 여자가 발랄하게 성적 매력을 과시하며
여러 나이층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류할 수 있는 관계망이라는 것이 이 나라엔
없다는 것이다. 애엄마는 애엄마로서 본분을 다할 것을, 일하는 여자는 업무에
충실할 것만을 요구받을 뿐이다. 그 범주를 벗어나는 패션이 용인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적 매력이나 패션은 자기 혼자서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라, 보아주는
사람의 시선에 의해서 늘 최종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연예계를 제외한다면,
이 나라에선 거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방법은 있다. 영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정사]의 이미숙이나, [사랑]의 김미숙은
아름다왔다. 절대 이정재나 장동건이 아까워보이지 않는, '충분히 그림이 되는' 매력을
가진 모습이었다. 소설을 통해서건 만화를 통해서건 드라마를 통해서건 나이먹은
여자들의 '정당한' 로맨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하나의 분위기 조성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반적인 우아미와는 사못 다른 컬트적인 패션이나
그외 남다른 분위기의 완벽한 미모의 여인네가 영화를 통해 젊은 남자들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좀더 나아가 아줌마 몸매의 개성파 여주인공이 매력을 인정받는다면,
정말로 '다른' 미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마력은 강력해서 실제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풍길 수 있는, 그녀만의
향기를 갖는 여성이란 환상까지도 탄생시킬 수 있다. 독립적인 여성의 가치확산과
함께 잘 된 영화 몇편이면 충분하다. 이미 남자는 나이가 풍기는 멋과 여유라는 환상이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남자의 환상은 오래되었지만, 여자의 환상 역시 발달된 미디어의
도움으로 빠른 시일 내에 확산될 수 있다. 이미 경제능력이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닌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독립성은 이제 '미감적'으로 표현될 때가 왔다고 본다.
내가 영화를 특히 지목한 것은, 영화는 다른 매체보다 휠씬 더 정서적이면서도 성적인
환상과 밀접한 관계를 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본래 취약하기 때문에
다른 길로 올지도 모르긴 하다.
역시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은 패션의 벽이다. 어느 정도 벽이 무너지더라도 이미
우리 미감에 깊숙이 침투한 피부의 절대가치는 쉽게 자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경로로 사회전체에 바람을 몰고온다면 남따라 장에 가는 식의
유행에 대해 관용성이 생길 것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건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러나, 피부의 권력이 비록 막강하지만 이종교배(하이브리드)를 통해 늘 새로운
것은 탄생하는 법이다. 다른 '어울림'이 등장한다면, 막을 수 없다. 난 지금
젊은이 문화의 중심은 십대로 내려갈지 몰라도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들의
생활양식이 은연중 확산되고, 젊음을 낭비로서만 확인하는 관습을 거부하는 새로운
가치와 생활양식이 조금씩 세를 확장함에 따라서 다른 시각과 시선들이
다발로 생겨날 수 있다고, 패션의 다양화를 전망해 본다. 따라서 피부의 권력에
대한 나의 다소 비극적? 어투의 단언을 변질시키련다.
피부는 나이에 그대로 대응하지 않으며 가장 먼저는 생활양식과 그 다음은 가치와
대응한다. 따라서 원한다면, 나이의 권력에서 구분되는 피부의 권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노선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회사의 명예를 걸고 동물실험을 반대하며
재활용 비닐봉지에다 순식물성 화장품을 담아주는
바디샵
의 즐거운 캐치프레이즈를 참고해 보자.
FORGET YOUR AGE, NOT 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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