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섹시한 여자의 고민 - 미스코리아의 버릇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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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못생긴 총각이나 이미 맛간 아저씨나 살만큼 산 할아버지들까지도 모두 공평하게 심사할 권리를 가지고서 막간에 급하게 짜장면 먹으면서도 열심히 쳐다보는 기호 x번의 미인은, 자기의 맘에 들기 위해 교태와 화장법과 미소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침을 질질 흘릴 수도 있고, 냉철하게 단점만을 꼬집을 수도 있고, 신체의 비례를 감상할 수도 있고 관람태도는 자기맘이지만, 어쨋거나 요모조모 쳐다봤다고 성희롱에 걸릴 이유 없이 당당하게 쳐다보시라고 번호표 달고 나왔다는데 그 재미가 아니 쏠쏠할 수가 없다.
이것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듯 여성의 상품화로서, 근절되어야할 일인가? 그들의 덜떨어진 논의는 YMCA 아줌마들이나 할 법할 비난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성의 상품화를 비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다. 시인은 시집을 팔아먹으면서 자신의 감정, 추억, 전인격을 상품화한다. 영화배우는 자기의 얼굴, 몸매, 표정 할거없이 모든 것을 다 팔아먹는다. 하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인격을 팔아먹는다고 한다. 팔아먹는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떤 판매행위를 비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존중에 걸려있다. 존중 respect, 이것은 미국영화를 보면 끊임없이 나오는 여자들의 불평이다. You don't respect me! (당신은 날 존중하지 않아요, 대개 이렇게 번역이 나오곤 한다. 이게 무쓴 쏘리? 사실에 가깝게 말하자면 너 나 무시하니? 당신 나 무시하는 거야? 정도일 것이다.) 역시 문제는 남자들은 여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어디라도 널려있으며, 널린 여자들의 꼴을 당하기 싫고 누구의 여자라는 안정된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들은 정상적인 남자의 뒤에서 고분고분 잘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편견이다. 내 집에서는 내 의견이 중요하지 마누라의 의견은 필요치 않다는 억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좀더 조직적이고 심각한 형태로 과도한 노동과 심각한 굴종적 요구가 결혼한 여자들과 결혼할 여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어딜 가나 문제는 당신이 날 사랑은 하되, 부당하게 대우해도 된다는 건가? 이다.
그렇다면... 상품화되는 여성은 존중받지 못하는가? 정말로? 탤런트들은 상당히 존중받는다. 연예인들은 그 인기로 인해 가치가 생겨난다. 남자들의 농담 따먹기나 성적 백일몽에 등장하는 것은 감춰진, 공적 생활에서 언급할 수 없는 부분이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어디까지나 부와 명예를 한손에 쥔 스타이다. 될법도 안 한 루머가 스포츠신문을 장식하고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 정도 갖고는 뭐라고 불평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삼류에로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멸시받는다. 탤런트 못지 않게 예쁜 호스티스나 창녀들은 물건 취급을 받는다. 성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미스코리아는 한편에선 한국의 미인대표라고 떠받들려지지만, 동시에 다수의 경멸을 받는다. 그들은 아무리 잘 봐줘도 연기도 어색하고 분장도 졸렬한, 키만 커다란 아마추어 배우일 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갈고닦으면 잘 나가는 탤런트라도 될지는 며느리만 안다.
성적 매력을 무기로 하고 다른 어떤 그럴싸한 포장을 갖지 못한 여성은 실제로 경멸당한다. 선망하면서 동시에 업수이 여기는 것, 이것이 인기좋은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전통적인 태도니까.(이건 인간만이다. 유인원은 그런 짓 안 한다.) 여기에 다른 여성들의 시각 역시 곱지 않다. 단지 예뻐서가 아니라 미인이기 때문에, 인기가 좋기 때문에 질시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서 간혹 단지 외모만 보고 뽑아다 놓은 여자 연예인이 머리가 나쁘다고 타박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여자 MC란 단지 '말하는' 남자 MC 옆에서 그린듯한 외모로 '웃는' 역할만 하면 되는 존재라는 걸 너도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역시 말못한다는 것, 머리 나쁘다는 것은 적절한 지탄의 구실이 되어준다.
왜 성적 매력을 내세우는 여자는 존중받지 못하는가? 왜 여자는 사랑받는 것과 존중받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 되는지, 당사자들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본주의에 장악당한 지구위의 문화는 대개 그렇다. 이것은 여자들도 자라나면서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감수성이다. 부계사회에 적응하여 사회적 위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선 여자들이 감수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우스운 것은, 성적 매력은 이미 여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거의 절대적인 우선 기준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오로지 외모만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데 여자 개인이 이를 무시하고 다른 가치만을 주장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스스로 성적 매력을 개발하고 과시하려고 들면 '헤픈년'이라고 욕을 먹다니, 욕망이냐 사회적 위신이냐 여자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어있으며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가해지는 성적 차별에 여자들은 익숙해진다. 흔히 남자들이 여자들은 영 모를 존재라고 속을 알 수 없다고들 불평하는데, 그것은 살아있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요구하는 그 기도 안 차는 '여성성'이라는 몸에 안 맞는 옷을 그럴싸하게 입고서라도 인기를 얻고 싶은 여자들이 발전시킨 위장술 덕택이다.
거짓말이 체질에 맞지 않는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미적 시선에 대해 '거부'의 노선을 택하기 시작하면, 돌아오는 것은 패배뿐이다. 레즈비언이 되
면 자유로울까? 예술가들은 가끔 반항아로서 사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시집갈 생각인 대다수 여자에게 허울좋은 타협 외에 다른 길이 어디 있을까? 어떤 경우든, 사회의 미적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주장하는데, 똑똑한 여자라면 대상화되면서 동시에 존중을 획득하는 노선을 개척해야 한다. 상품화 알레르기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대상화를 두려워하면 욕망을 꺼낼 수가 없다.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든 간에, 여자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쌍한 편인 존재이다. 어떤 사회적 지위나 문화적 허영심을 만족시킨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난 본다. 그렇지 않다면 왜 지금까지 그 많은 똑똑하고 잘난 여자들이 항복의 길을 택했겠는가?
예쁘게 보이고 싶고 시선을 받고 싶은 욕망은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위해 억눌러야할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어쨋거나, 여자도 동물이고, 그중에도 특별한 종족이라 자기의 갖가지 차원의 문화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고, 살아가는 존재다. 존중받으면서 동시에 사랑받고, 욕망의 대상으로서 매력을 발산하는 것, 그게 바로 현재 여성이라는 존재가 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자는 상품화에 소스라치고 몸사리거나 이중적 가치관으로 덜그덕거리는 대신에, 대상화된 육체에 대한 존중을 유포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거미줄처럼 우리의 지구를 감고 있는 매체들을 이용해서, 전통적인 아름다운 육체의 요소와 결합된 다른 요소들, 미덕들의 비중을 점차 높여나가는 것이다. 방법은 여러가지다. 공격성과 섹시함을 결합해서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샤론 스톤 같은 여배우들이나 커트니 러브 같은 뮤지션들의 방법도 있다. 지적인 여자가 아름답다, 능력있는 여자가 아름답다의 커리어우먼, 프리랜서의 이미지도 많은 도움이 된다. 전통적인 육체적인 매력에 덧붙여지는 능력과 힘의 요소는, 앞으로는 역할을 바꾸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개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확산은 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미국 배우 미니 드라이브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는데,
<굿윌헌팅>을 보면 너무나 좁은 미간, 메기같은 입, 왠만한 남자는 한 방에 날릴듯한 팔뚝, 아무리 봐도 이쁜 구석은 하나도 없는데도 개성있는 외모로 평가받으며 잘 나가고 있다.
능력있는 여자가 아름다운, 강한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광대히 그 이미지를 유포시키고 건설하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백날 여성차별 반대를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우리의 두뇌 안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만 '다른' 아름다운 여성들이 가능한 것이다.
육체의 정형화된 미 외의 다른 가치들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래도 영화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본다. 개성과 인격을 내밀히 드러내기에는 아무래도 적격일테니까.
남자의 육체를 활발히 대상화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아직까지 남자의 대상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시각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예의범절을 여자의 대상화에까지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아무리 여자들 개인이 똑똑하게 대응하고 적절한 전략으로서 사회적 미감을 다양화하더라도 쉽사리 '성적 매력=여성의 가치'라는 등식에서 자유로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정도 사회적 압박에 익숙해지고, 적절히 자기 스타일을 개발하며 능숙하게 벗어나기도 하더라도, 여전히 아니꼽고 치사한 강제의 성격은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토록 불리한 게임의 상황을 뜯어고치기 위해 미스코리아의 위치를 미스터코리아 수준으로 내려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다. 한국의 미를 대표한다는 식의 오버는 정말이지 역겹다. 스스로들도 좀 너무하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카메라의 위력 앞에서는 쪽팔리는 것은 문제도 아닌가 보다. 몸바쳐서, 시선을 받고 싶다는 거겠지. 사실 숭배자 몇몇만으로도 한 여자를 공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물며 카메라야...
본인들의 정신건강에도 심히 해롭다고 보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 더 문제이다. 키 크고 가슴 큰 여자가 제일 인기가 좋다는 식의 편협한 가치관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여자는 그 가치 자체를 수영복 입혀서 번호표 달고서 잴 수 있는 거라는, 노예시장에 노예 보듯 하는 사고방식이 지금 이 시대에도 말없이 물들어가는 것이 문제다.
일단 코리아 선발대회의 방영권은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 티비에 줘버려야 한다. 한국의 미를 대표한다는건 말도 안 되고, 그래도 '키 크고 가슴 크고 머리카락이 사자 같은 미인'이라는 컬트적 취향을 소수가 추구하는 것 정도는 말릴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상금을 줄여야 한다. 그런 멋대가리 없는 대회를 위해 돈을 대주는 스폰서들은 좀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이벤트를 위해 자금을 돌리도록 해야한다.
이미 차지한 분수에 넘치는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강제는 마땅히 해야한다고 본다. 미스코리아를 탓할게 아니다, 여성을 상품화하는 사회적 의식이 문제다 하면서 문제를 호도하는 축들은 백날 그렇게 하고 살라고 해라. 사회적 의식 개혁을 외치거나 거기에 항복하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법적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된 이미지 개혁,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다.
여담이지만, 미스코리아가 만약 컬트로 끝나지 않고 제대로 된 인기를 좀 끌고 싶다면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이나 좀 다양화해보도록 했으면 한다. 얼굴 생긴건 둘째치고, 화장
이나 패션이나 뭐 하나 볼거 없는 대회로 무슨 여성들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건가? 보면 욕밖에 안 나온다. 그 엄청난 돈 쳐들여서 한다는 짓이 멍청한 혹은 멍청한 척하는 여자들 몇명 여왕 만들기 위한 유치찬란한 쇼라니... 아마도 미스코리아 대회에 불평없이 고마와 할 사람은 일부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뿐일 것이다. 나의 주장은 유치한 것에 대해서 무조건 배척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수준에 맞는 대우를 해주자는 거지.
쓰레기는 재활용이라도 한다!
199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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