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관능적 쾌락? 여성적 쾌락! (미소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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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 쾌락이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의 지각체계를 통한 자극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성기중심의 성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일종의 범성애라고
할 법할 넓은 의미의 성과 구분선이 모호한 관능적 쾌락의 범주를 여성들은 가지고 있다.
이 쾌락은 여러가지 형태로 뻗어나갈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성의 열락에 빠질 수도 있지만, 촉각의 왕국으로 갈 수도 있고, 번지점프나 스
피드를 즐기는 운동감각에 치우칠 수도 있고, 춤이나 음악, 맛, 멋, 목욕의 사치나 영화의 쾌락으로 갈 수도 있다. 난 이를 '여성적 쾌락'이라고 이름붙
여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주체-대상의 박탈의식'이 없는 자유롭고 다발적인 쾌락과 감수성이 앞으로 인류를 끌고나가는 강력한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계속해서 탈영토화되는 욕망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영토화란 '자기 자리를 지키기'라는 도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도덕을
지키고, 죄책감을 지키고, 노동윤리를 지키는 것을 관두고, 제도를 넘어, 도덕을 넘어, 자아를 넘어 우리의 각각의 부분들은 진행해 나아간다. 이것은
특별히 문란하거나 반항적인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삶의 기쁨, 존재이유에 관한 것이다.
세간에서는 문화상품이야말로 21세기의 노다지다, 뭐다 하는 얄팍한 부화뇌동을 하는데, 상품으로서 검증받기 이전의 그 수많은 감수성들, 아이디어
들을 판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란 점을 생각하자. 남따라, 문화코드를 추정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실제로 감성
적 복합물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있으며, 자기자신과 흐름, 두 가지를 다 안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이 성공을 할 것
이다. 자기의 몸을 사랑하고 바라볼 수 없는 자들은 최초의 감수성의 문턱에서 탈락한다.
미소년은 아마도 이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을 남성들이다. 여성들에게나 남성들에게나, 수없이 쳐들어오는 사회적 외압과 굴종의 요구들은 자신의 피
부를 멍들고 굳은살지게 할 위험이 크지만, 이것을 이기고 자기 삶을 계속하자는 데는 의의가 없을 것이다. 여기엔 방어와 동시에 여유를 가져야 하
는 어려움이 있다.
여성들이 자신을 잡아누르는 대상화의 굴욕에서 벗어나 역으로 '대상화의 즐거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순수한 애착'을 만들어냈듯이, 미소년 역시 사
회가 요구하는 남성적 역할과 육체의 피폐화에 맞서서 '순진한 쾌락'과 '박애의 감수성'을 얻을 것을 희망한다.
내가 '분명히 전망'하지 않고 '희망'한다고 말한 것은 그것을 지속하는 일이 얼마만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미소년으로 남는 것은 어
려운 일이다. 그것은 개인의 엄청난 노력과 행운을 필요로 한다.
1999.9.9
->미소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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