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한없이 하늘에 가까와지는 블루?!
-하늘색 파랑 cerulean blue 모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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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서양화-수채화-를 그릴 때 가장 좋아했던 색이 세룰리안 블루다. 코발트 블루는
아름답고 무난하게 여러군데 쓰일 수 있는 색이지만, 그렇기에 심심했다. 군청색은 이유없이
싫어했다. ^^; 프러시안 블루는 어두운 듯하면서도 나름대로 성깔있는 색이지만, 역시
세룰리안 블루의 아름답고 화사하면서도 귀한 색에 대한 애정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세룰리안 블루는 바로 하늘을 그릴 때 쓰는 색이다. 다른 것을 칠하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팍
튀어버리기 십상이라,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너무나 강렬하면서도 감상적이라, 하늘을
표현할 때조차도, 적절한 물과 적절한 코발트 블루의 보필을 받아서야 언뜻언뜻 드러나는
모습만이 가능한 색이었다.
그래서 내가 97년 샐리에서 나온 진소재의 투피스에서 이 강렬한 파랑이 글자 그대로
쏟아붓듯 강렬한 자태 그대로 쓰인 것을 보았을 때 받은 충격과 흥분은 대단했다.
그 2년 전인 95년 겨울만 해도 난 내가 사랑하는 파랑색의 숄이라고 해입고 싶은 생각에
온동대문을 다 뒤졌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고, 97년 봄이 되어서야 그 색과 가까운 무테
선글라스를 해쓰고 마음을 달래었고 (94년부터 진작 파랗고 동그란 선글라스를 시도했었지만
눈이 너무 나빠서, 그리고 안경집 아저씨의 이해부족으로 타원형 짙은 파랑색이 되었다...-_-;;)
그 여름 NOM에서 만든 바로 그 색의 자루 가방에 열광하며 충동구매를 했던 것이다.
나의 세룰리안 블루에 대한 열광은 지속되어 같은 색의 티셔츠를 사입었고 지금도 이 색이
눈에 띄면 눈을 쉽게 떼지를 못한다.(샐리 옷은 못 사입었다. 일단 가격이...^^;)
이 색의 대대적인 유행은 97년의 화려한 개화를 처음이자 끝으로 하여 곧 사그러들고 말았지만,
난 조금도 섭섭하지 않다. 이제 약간의 '아 저거 몇년전에 유행하던거, 이젠 한물 갔지'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다시금 나만의 아름다운 색이 될테니까.
세룰리안 블루의 대중적인 재조명은 94년 여름의 영화
[스피드]부터라는게 정설이다.(아직까지 이 분야의 전문가는
나 외에는 보지 못했지만. ^^*) [스피드]의 크레딧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파랑색은 코발트에
가까운 세룰리안 블루로, 80년대를 거치면서 오직 하나의 세련된 파랑색으로 통했던 코발트
블루의 아성에 첫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그전까지 한국에서는, 경제발전을 향해 온나라가 치달았던 70년대 이후, 그 부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번영을 구가한 80년대에는 세룰리안 블루는 너무 화사해서 유치한, 플라스틱 바께스와
호스, 생각없는(?) 트럭의 도장색으로 외에는 쓰이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세련된 색은 단연 코발트 블루였다. 물론 코발트 블루는
아름다왔다. 그러나 거리거리의 간판, 특히 자동차 대리점 간판을 특징적으로 장악해가는
코발트 블루만의 파티 속에서, 난 갈수록 더 외로워져갔고, 점점 더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다.
90년대가 되고, 바뀔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하던 그 아성을 치고 들어가는 시도가 영화에서
일어난 후, 다른 분야, 특히 내가 관심을 갖는 패션 쪽으로 상품화가 일어나는데는 대략 3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그 외에도, '젊은 여행사 블루'의 배낭여행 포스터에 감질나게 조금씩,
그러나 행복하게도 세룰리안 블루가 나타난 것도 94년이었다.) 그 동안 여성의류의 유행은
빨강색이 돌고, 그 다음해엔 군청색에 가까운 파랑색이 돌고, 해를 거듭하며 점차로
코발트 블루에서 약간씩 세룰리안 블루쪽으로 가까워졌다.
난 기다렸지만, 지루했다. 역시 한국의 패션이란 유행에 살고 유행에 죽는 것으로서, 남들이
안 하는 짓은 죽어도 안 하기에 예측불가능으로 어디서 하나 튀어나오는 보물조차 없다.
요즘은 약간 나아졌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 특히나 옷에 있어선, 다양성이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힙합바지가 대대적으로 유행하던 97년의 겨울엔, 이 바지에 어울릴 만한 여성용
코트(스포츠웨어틱 하지 않은)가 없어서 난 맘에 안 차는 롱코트를 입었고 다수의 다혈질
십대들은 한겨울에 얇다란 쟈켓을 입고 다녔다. 98년 겨울이 되어서야 힙합 스타일에
들어맞는 짧고 경쾌한 패딩코트가 약속이나 한듯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모든 디자이너들이
힙합을 입지 않아서 생각을 못 해주었다는 가설을 세울 순 있다. 하지만 역시 역사는 자기
스스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겁많은' 패션업체들의 관행에 따라 굴러갔던 것이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 내 손에 들어온 색이지만, 역시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어주는-
'입는'이 아니다...;;; - 세룰리안 블루라는 것은 당연한 절차로 지겨워졌다. 가슴아프지만, 역시 남따라 장에 가는 식으로 별생각 없이 입은 여자들의 세룰리안 블루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보기 좋은
한 때가 지나면 물리게 된다. 특히나 그렇게도 튀는 색상이니 그 사이클이 짧으리란 것 역시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패션에서 여타 다른 광고나 팬시로, 상품들로 그 여파가 미칠 만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난 평가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 색은 완만한
하강선을 그리며 여전히 가끔씩 '요 분야에서는 참신한' 색으로 기능하고 있다. (주로
소품들에서 사용되는 것, 힙합스타일이나 운동화에서 '완전 하늘색'으로 등장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은근슬쩍, 코발트 블루가 다시금 세련된 색상으로서 재등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1990년대의 후반기에 잠깐 스쳐갔던 이 까다롭고 화려한 색의 유행이 가물가물한
옛적 일이 되고, 가끔씩 재미난 일화로서 기억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언젠간 보편화되어
아주 우아한 색조로 추앙받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멋쟁이들의 괴팍한 척하는 취미의
일종으로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인도풍이나 집시풍이 오랜 시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올가을엔 오랜만에 에스닉풍이 제법 유행하는 듯한데, 이 소수들만이 즐기던 패션이 몇년
마다 약간의 유행을 타는 것을 보면, 세룰리안 블루도 아마 비슷한 패턴으로 가끔씩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인도풍도 좋아하고 아주 밝은, 하늘색에 가까운 터키석의 은제품도 좋아한다. 내가
역시 좋아하는 보색대비의 근사한 옷을 구할 수 있다면, 아주 행복할 것이다. 여기에 내가
아무도 동그란 무테 선글라스를 쓰지 않던 97년 봄에 드디어 맞춘 파랑 선글라스를 동그랗게
끼고, 신나게 돌아다니며 나의 파랑 모험담을 자랑하고 싶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으며, 유행에 앞서가느라 겪은 고생은 또 얼마나 되는지, '지금'처럼
자기가 입고 싶은 걸 쉽사리 만들어 입는다는 건 소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는 '옛날 얘기'를
말이다. 언젠가...
(올가을엔 안 입기로 했다. 남들이 다 입어서...^^; 나중에나 생각해 볼란다.)
199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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