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왜 남자는 화장을 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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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만 화장을 할까? 화장을 하지 않은 아줌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나날이 노화하는 피부가 더이상 이 젖산을 주성분으로 하는 이물질들을
얹고 있지 못할 때까지 여성들은 화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방송이나 무대에 관련된 직업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화장을 하면 곧 지탄받는다.
일반인으로서 남 앞에 화장을 하고 나서는 경우는 최신 유행의 결혼식에서나 볼 수 있다. 왜 남자는 화장하지 않는걸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여성만이 자기의 본색을 감추고 화사한 얼굴을 만들 권리를 가지며, 의무를 갖는다. 이것도 여성차별이라면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남성 차별이지만. ^^; 여성만이 특히나 성적 매력을 주로 하여 그 인간적 가치를 평가받기 때문에, 남성보다 훨씬 강한 외모와
치장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까.
재미난 것은 다른 동물들 세계에서는 수컷이 화려한 반면 암컷은 수수하다는 것이다. 유성생식의 상식에 비추어볼 때, 작고 많은 정자를 지닌 수컷은
무조건 씨를 많이 뿌리는 것이 유리하지만, 커다란 난자를 지니며 한 시즌 한 번의 성공으로 새끼를 낳아길러야 하는 입장의 암컷은 상대를 신중히 골
라야되기 땜에, 좀더 튕기는 입장에 있다. 그래서 수컷들이 암컷을 꼬시기 위해 개발한 화려한 차림새들은 처절하기도 하다. 그 화려한 공작꼬리는 암
컷을 유인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지만, 실은 그 꼬리 땜에 눈에 잘 띄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다분한, 위험한 물건인 것이다.
목숨을 걸고 이렇게 다른 수컷들은 암컷을 꼬시는 데 주력하는데, 인간 남자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미난 유추를 해
보자. 뉴기니와 호주에 서식하는 청정자새(바우어새라고도 한다)의 수컷은
암컷을 꼬시기 위해 아름답기 그지 없는 정자를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란색의 아름다운 깃털을 지닌 이 수컷들은 나뭇가지 등속을 이용해 뼈대를
만들고 예쁜 돌들이나 나뭇잎, 열매, 꽃잎, 깃털들을 이용해 장식을 하는데, 여기에 반드시 경쟁자에게서 뺏어온 파란 깃털이 꼭 들어가야 한다. 암컷들
은 정자를 견고하고 아름답게 짓는 능력, 그리고 다른 수컷들의 침략으로부터 자기걸 잘 지키고 심지어는 뺏어오는 능력을 평가해서 자기짝을 고른다.
재미난 것은, 이 청정자새의 여러 종류들을 보면 정자가 크고 화려한 종류일수록 정작 수컷 자신은 수수하다는 것이다. 즉, 정자를 짓는 능력으로 짝
짓기의 성공이 좌우됨에 점차로 수컷의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우려가 있는) 화려한 깃털은 퇴보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전자의 표현형이 본체를 떠나
다른 것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바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다.
거리를 걷다보면 잘 빠지고 미인인 여자일수록 옆에 끼고 다니는 남자는 의외로 수수하다 못해 안 생긴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를 보고 나 같은
여자들은 쯧쯧 하고 혀를 차지만, ^^; 그 여자들은 제딴에는 아주 영리한 선택을 한 승자들인 것이다. 바로 그 남자들이 멋진 정자를 짓는 데 성공한
(혹은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수수한 청정자새다. 그 남자들은 여자와 아이를 벌어먹일 수 있는 경제력이나 학력, 그리고 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성실하게 아이를 보살필 수 있는 다정한 성격을 가지고서 여자를 꼬시는데 성공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결혼상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도, 남녀의 짝짓기에는 그런 유용한 조건들을 우선시하는 막강한 버릇이 적용된다.
남자가 진화한 방향은 역시 '잘나가는' 유전자의 표현형이 본체를 떠나 여러가지 사회적 능력으로 이전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한 외모와
잘난 능력이 모순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이 지나친 화려함을 배격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잘난 유전자의 표현이 직접적으로 육체를 싸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멋진 정자를 짓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그리고 사회의 지레짐작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날이 갈수록 점점 화려해지는 남자들의 패션과 노출은 무엇보다도 결혼과 상관없는 연애풍속이 자리를 확보함에 따라 여자들 역시 육체의 화려함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좀더 나가자면, 여성의 경제적 능력의 확보에 따라 괜찮은 남성의 조건으로서 경제능력의 순위가 변동되기 때
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능력은 순위 밖이고, 오로지 잘 생긴 외모나 성격, 개성만이 중요한 여자들도 꽤 많다. 남자들이 이제 꾸밀 수밖에 없는 이
유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문명사회, 자본주의 사회 안의 남자들은 여전히 여자에 비해 수수하다. 남자라고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픈 욕구가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아무리 화려한 패션을 하는 젊은이들이라도 최소한 아직 화장은 하지 않고 있다. 어떤 한계선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남자들이 스스로
잘난 청정자새가 되기 위해 맞추어야할 수수함과 화려함의 배분이 지금 대략 그 수위에서 머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엔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자본주의 사회의 남녀의 격차는 아무래도, 서양의 청교도 문화가 주범인거 같다. 그러나, 그쪽만 해도 베르사이
유 궁전의 무도회에 참석한 남자들은 다 분을 바르고 입술을 칠하고 있었다. ^^;; 역시 성풍속과 권력관계의 단지 미묘한 차이에서도 패션의 이 엄청
난 간극은 생겨난다고 봐야겠다.
한국에도 눈썹정리를 하는 남자들은 제법 생겼다. 지금은 연예인과 방송인이 주로 그렇고, 젊은 남자들 사이에선 은근히 티 안나게 퍼져있다. 일본에
서는 이미 젊은 남자들 사이에 눈썹 정리는 물론, 간단한 메이크업이 퍼져있다니까, 앞으론 화려한 화장을 한 비주얼락이라도 유행하는 날엔 이곳에
도 무슨 뜻밖의 일이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남자들 안에서 '남자답지 못한' -지배자답지 못한- 경향들을 억누르고 왕따시키는 반발도 거세지겠지만, 역
시 남자들 역시 가지고 있는, 인기를 끌고싶고 아름다와지고 싶은 욕망을 성공적으로 억누르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화장한 남자
의 모습을 거리에서 보지 않을까나. 난 기대가 된다. ^^*
-청정자새 이야기가 좀더 궁금한 분은 [유전자의 음모] (다께우찌 구미꼬, 하이테크정보)를 보시기 바랍니다.-
199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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