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난 너의 언니가 아니어요
back to noculture
난 동대문보다는 백화점 세일을 가기 좋아한다. 그건 내 까탈스러운 감각과 함께
옷감의 질에 대한 고집(땀을 잘 흡수하는 면이 좋다.)을 만족시킬래면 브랜드쪽이
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생각엔 한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되는거 같다. 백화점
에 가면 판매직원들이 '손님~' 하고 공손하게 부르지 '언니~' 하며 괜한 친근감을
형성하려고 드는 꼴은 안 봐도 되는 것이다.
언니라고 하는 가족호칭이 언제부터 상거래시 판매자와 구매자를 가리지 않고 난
잡하게 오가기 시작했던 것일까? 전에도 그런 경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
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몇년 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동대문이나 이대앞 등 상가에서 옷이나 악세서리 등 여성용품을 파는 판매원
들은 대충 중학생 밑으로는 '학생'이라는 호칭을 쓰고, 그 위에 해당하는 대학생
및 이십대 여자들에게는 '언니'라는 호칭을 쓴다. 고등학생은 유동적인 것 같다. 요
즘 동대문에서는 고딩한테도 전체적으로 '언니'를 쓴다. 그 위에는, 없다. '신세대
감각'의 상품들을 파는데 더 나이든 쇼핑객들은 드문 편이므로 다른 영역에서 쓰
이는 아줌마나 사모님, 어머님들 등속의 호칭을 알아서들 쓰는 편이다.
실제로 판매원들이 손님보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한것은 상관없이, '언니'라고
불러준다는 것은 '우리'가 '같은' '젊은' 나이대에 속하며, 아름답고 화사하게 꾸밀
권리와 능력이 충분히 있는 '족속'으로서, 나는 당신을 높여주는 의미에서 언니라
고 부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손님이 점원을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확실히 일종
의 동류의식을 형성하며, 서로 언니~ 언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부와 흥
정이 오간다. 요새는 좀 늙은 '언니'들도 언니라고 불러주면 좋아하니, 나이대가 팍
팍 올라가기도 한다. 여자들 사이에서 서로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서로를 '한창나
이의 (따라서 매력있는) 여성'으로 존중해준다, (내 생각엔) 아부해준다는 의미이
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언니'는 2인칭 호칭이 아니라 아예 객관적 실체를 인정받는
사회적 집단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언니들'은 문화적 욕구
를 지닌 젊은 여성들, 대학생과 젊은 직장여성들을 주축으로 하는 소비집단이자
근사하게 매력을 뽐낼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이다. 젊다는 것과
경제능력이 있다는 것. 젊다는 것은 갖가지 옷과 화장품과 악세서리를 구입해서
걸쳐입은 보람이 확실히 난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정경제에 대한 부담없이 자
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물질적, 정신적인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다는 보장이
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여러 문화산업을 먹여살려주고 있는 것은 젊은 여성들이다.
문화상품의 판매자들은 '친근하게' '높여주는 뜻에서' 그들을 '언니' 라고 부르려고
한다. 요즘엔 징그럽게도 나이 먹은 아줌마 상인들도, 남자 노점상들도, 심지어는
아저씨들도 '언니~'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언니'라고 불리우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같은 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여자들인가? 그 이유는 사실 분명하다. 가족호칭이 '개인들의 사회'에 침입하는
걸 꺼려하는 것이다.
한국은 원래 가족호칭의 범람이 심한 곳이다. 대표적으로 보통명사화된 것이 할
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그리고 아줌마다. 이 나라는 시민사회란 것이 거의 없다시
피 하며, 공공 교통수단인 전철 안에서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난 철저한 남남
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경제활동인 상거래에서조차 손님과 상인은 고유의 관계
만으로는 모자라 이웃사촌, 형님아우의 '유사가족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맘편해한
다. 왜 한 인간이 얼굴에 주름살이 지고 나이가 오십대를 넘어섰다는 이유만으로
생전 첨 보는 사람한테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들어야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들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있지 않은가. '노인'을 공경해
야 하지만,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거다. 지금 사회적인 이슈를 형성하고 있
는 '아줌마'만 해도, '결혼한 여자' 혹은 '아이가 있는 여자'를 자동적으로 아줌마라
고 부를 이유는 조금도 없다. 아줌마란 원래 '숙모'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만약 비
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이 호칭을 확산한다면, 자기 나이보다 한참 위인 여자
만을 그렇게 불러야지, 많은 아저씨들이(^^;) 그러듯 자기보다 휠씬 어린 여자를
'기혼자'라는 이유에서 아줌마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들 한다.
많은 여자들이 '아줌마'라고 불리면 불편함을 느끼고 저항하지만 '아줌마'도 거의
보통명사화되었다. 부르는 사람과 불리우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불리우는
사람의 나이와, 그에 '걸맞는' 역할과 신분이 호칭을 결정한다.
나이와 그에 걸맞는 역할과 신분, 여기에 여성/남성만 집어넣으면 대부분 정리되
는 것이 '바람직한 한국인'의 인생이 아닐까 한다. 말은 민주주의에 자본주의, 정보
화사회라고 하지만 여전히 개인들을 노동하고 결속하게 만드는 것은 가족의 윤리,
그리고 연령별 역할모델의 강제이다. 학교에 가도 회사에 가도 놀이집단을 만들어
도 필수로 따라붙는 나이에 따른 위계, 서열,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을 굴러가게 했
지만 또한 앞으로 잘 나가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점을, 그 심각성을 많이들 무시
하는 것같다.
지금 보통명사화되어 가고 있는 '언니'라는 호칭의 승승장구는 당분간 계속될 것
이다. 앞으로 산업전반을 좌지우지하게될 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젊은 여성들의
비중은 크고, 세력이 불어나는 것도 당연지사다. 그리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보다
는 이미 불러줬으니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다들 왜이리 맘이
좋은 것일까?) 그러나 난 역시 '언니'가 싫다. 그냥 깨끗한 상거래의 관계에서 비롯
된 호칭, '손님'이 듣고 싶다. 모르는 사람, 아무에게서나 2인칭 가족호칭을 들어가
며 친근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 '가족적 관계'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문화적
인간들'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미 있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또 하나의 가족
호칭을 사회화시키는 것은, 논리성으로나 경제성으로나 뒤떨어지는 낡은 관습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다.
'언니'가 되건 안 되건 '문화적 여성들'은 자기 길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들이 집
단적으로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자유'라는 걸 만져보기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언니'가 되었듯이 곧이어 '아줌마'가 될 것이며 각종 의무 속에 주어진 역할에 충
실함으로써만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통만 넘어가고 '젊음'은 축적되
지 않는다. 이것이 신묘한 보수성의 위력이다. 과연 현사회의 변화는 다양성으로써
이 단단한 매카니즘을 깰 수 있을까?
1999.12.13
-2000 여름.
이제 난 백화점의 점원들도 모두 언니~라고 하고 있다. 나도 포기하고 네~ 한다.
더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쓰니까.
동대문도 가끔 간다. 거기서도 몇 가지 아이템은 쓸 만한 걸 살 수 있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 글을 쓸 당시엔 여고생들은 여기 가면 언니고 저기 가면 학생이고, 좀
아리까리한 경계선상에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언니가 된지 오래다. 요샌 중학생
도 언니다.
back to no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