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지구 위의 모든 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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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으로 불린다는 스무살 먹은 젊은이가 모국인
한국으로 들어왔다. 담담날 아침 신문에는 no fur on earth라는 피켓이 또렷이
보인다. 지구 상에 모피는 모두 없어져야 된다...라. 그렇게 해야되는 이유가 무엇인
지 묻는다면, 나올만한 대답을 추려보자. 먼저, 오로지 모피만을 위해 동물을 기르고, 도살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다. 동물들의 생명권을 우린 존중해야한다. 따라
서, 백번 양보해서 고기를 먹기 위한 사육의 부산물도 아닌 오로지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모피를 두르는 행위는 근절해야 한다! (물론 아예 모든 동물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나가보자.)
그러나, 백번 생각해봐도 역시 고기를 먹기 위해 죽이는 것은 괜찮으나 모피를
얻기 위해 죽이는 것은 안된다, 는 결론의 당위성은 없다. 엉뚱하게 생각나는 것은 양혜왕의 일화다. 왠? ^^;; 그 유명한, 제물로 바쳐질 소가 끌려가는 걸 보고 불쌍
해서, 불쌍하니까, 양으로 바꿔라, 하고만 이야기. 사람들은 누구나 정이 있어서,
바로 눈앞에 그렇게 불쌍한 동물의 모습을 보면 대개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기 쉽지
만은, 도살의 결과물인 고기만큼은 왠만한 사람은 다 먹을 수 있다. 물론, 문화권
에 따라 관습적으로 먹는 고기 종류는 다르지만 말이다. (난 소고기는 먹는데
개고기는 못 먹는 사람은 이해가 되지만 자기네 문화가 안 먹는다고 해서 남의 나라까지 개고기 먹지 못하게 할려고 야단야단하는 사람은 절대 이해해 줄 수 없다.)
눈앞에 놓여진, 이를테면 예전에 티비에서 해준 관련 프로그램에서 나온 조그맣고
여린 짐승인 밍크의 불행한 운명, 등을 보고는 그만 불쌍한 마음이 들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밍크는 조그만 우리에 넣어져 대량사육되고, 코트 한벌 만들려면
백마리(?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상은 잡아야 한다고 한다.
그 눈도 떴는지 마는지 한 자그마한 생물을 보고 있자면 모피가 뭐길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그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엉뚱한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모
는 것은 그릇된 행위라고 생각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를 주로 먹는 한국인은 만약 북극쪽에 사는 이누이트 사람들이 그 예쁜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바다표범
이나 토실토실 귀여운 북극곰을 잡아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잔인해!
하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똑같이 불쌍한 소들을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욕하거나 원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제대로 된 생각이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을 위해서란 목적은 정당화되고, 입기 위해서,
특히나 사치를 부리기 위해서란 목적은 정당화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주는 인간의 기본권리란 오로지 먹는거다, 즉 먹는 것만 해결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의 해결과 그외 위생적인 문제, 인간적인 대우, 요즘엔 정보화를 위한 기본장비까지 최소 사항으로 넣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동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겨 옷으로
입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할 근거는 없다.
가죽은 인간이 처음 걸친 옷이었다고 한다. 지금 수많은 소재들이 나와 의생활을
그나마 풍족하게 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가죽, 그 중에서도 모피는 섹시하고 터프한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사치스러운 소재로써 막강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검은 가죽옷 역시 모피보다 휠씬 싸고 실용적인 소재로서 젊음과 반항, 섹시함의
막강한 이미지를 거느리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역들이 입었던 그 섹시한
가죽옷이 니트나 청바지였다고 생각해보자. 영 재미가 없지 않은가? 혹시 그 옷들
이 인조가죽이었더래도, 그 '섹시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가죽이라고 하는 것이
괜스레 필연적으로 연상하게 하는, 돌도끼 하나로 야생 동물과 맞닥뜨려 피를 뿌리고 승리를 쟁취한 사냥꾼의 자랑, 터프함과 섹시함, 멋있음인 것이다. 그런 (있지도
않는) 기억이 없다면, 가죽옷이 멋있어지질 않는다.
그런 과시를 하는 것을 '허영심의 만족 활동', 즉 사치라고 한다. 인간에겐 사치를
부릴 권리가 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인류문명의 찬란한 예술품들과 기타 등등의
업적들은 지구 위에 생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사치에 대해서 공동체가 두는
제한이 있다.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인육을 먹지
않는다.(의식제례화된 경우도 있었으나) 인간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타인에 대
해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시대도 있었으나) 근친상간 금지. 민중을 착취하면 천벌을
받는다.(민란 일어날 때만) 등등... 더 나아가면 음식 버리면 벌받는다, 지아비는
하늘이다, 까지도 갈 수 있으나 이 정도로 하고.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인간이라는 종, 또는 크고작은 공동체의 최소한의 방지책들인 것이다. 여기에
동물의 권리를 넣는 것에 대해서 난 정당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무조건 살생은 죄악이다, 하는 명제는 수용할 수 없다. '다른 생물을 먹고 사는
것'이 동물이란 존재의 제 1법칙이다.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영양물질을 만들어내는 식물과 달리 동물은 식물이나 동물, 균류 등 다른 생물을 먹고 사는 방식을 취
함으로써 결국 뛰어난 기동성, 뇌, 인공위성과 같은 놀라운 성과를 이룬 것이다.
식물이나 버섯을 먹는 데는 전혀 죄책감을 못 느끼면서 동물만을 자기 형제처럼
끔찍이도 여기는 편견에 대해서, 난 분명히 그 오류를 지적한다.
불가에서 살생을 금지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발생한 나라 인도의 영양학적
사정 때문이라고 난 믿고 있다. 한정된 경작지에서 더많은 사람을 잘 먹이기 위해
선 소량의 고기를 먹기 위해 가축을 키우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그것을 그들 종교의 방법 안에
실천할 수밖에 없었던 옛날 사람들과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기 시작한 현대 사람들이
같은 수준의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종교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섭생법 및 거시적인 지구생태계의 효율성과
복리의 문제다.)
같은 눈코입이 달린 동물로서 혹은 빨간 피를 흘리는 포유류로서 동정심을 억제할
수 없다면, 그건 이해해 줄 수 있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너무 유명한
일이다. 식물도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즐겁기도 하지만 그건 못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쉽사리 동정심을 일으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쓸데없는 고통을 양산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니까, 피를 흘리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면 그것은 분명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합리적인'
이해를 확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동물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도록 들이대어 동정심과 죄책감을 유발하여 '감정적으로' 육식습관이나 동물학대 등 자기네가 반대하는
행위들에 혐오감을 갖게 하려는 동물해방론자들의 테러적인 방법은, 그 근본부터가
잘못 되어있다는 생각이다.(관련글 링크 예정)
솔직히, 서양사람들 식생활은 지나치게 고기중심이고 따라서 건강을 해치기 쉽게
생겨먹었다. 그 쓸데없이 많은 고기 먹을 사료 심느라고 애쓸 에너지를 사람이 먹을
곡물을 심는데 적당히만 돌리면 훨씬 경제적이고 지구에 보탬이 될 터인데, 거기
사람들은 쉽게 그렇게 하질 못한다. 오랜 세월 형성된 식문화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는 것이다. 사실 지구상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으려면 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불합리를 해결해야 한다. 이 세계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으면
(돈이 되지 않으면) 남아도는 식량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줄 수도 없고 별들의 전쟁
을 대비한 군사비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낭비하는 대신 기후연구에 힘을 써서 가뭄과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없는, 그런 곳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공장식 사육의
부산물인 똥들을 비료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화학비료보다 비싸게 먹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나.
인간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귀한 것이란, 그것이 잘 없고
드물어서, 그래서 더욱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 이후로, 평소 각종
식물이나 균류, 벌레들로 가까스로 보충하던 단백질을 고단백으로, 것도 아주 맛있게
불에 익혀 먹으니 그것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산업화 이후 인간은 아주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휠씬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이상 귀하지 않지만, 아직도 우리의 미각과 문화, 감정은 이를 '좋은 것'
으로 여기고, 많이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낀다. 그러나 가난이란 제동장치가 있을
때와 달리 이제는 무조건적인 찬사는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 지나침을 막아줄
경제적 원인이 사라짐에 따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몸과 영양과 생태계에
관한 좀더 넓은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몸이라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을 통해서, 어떤 체질에는 채식위주의 식습관이 이롭고 어떤 체질에는 육식 위주가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단백 식사와 강도
높은 운동으로 인해 근육질이 발달한 것만이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연성,
몸안의 조화로운 기의 순환이 건강과 미용을 위해 휠씬 더 중요한 것임을 알 수도
있다. 박테리아와 생명의 진화과정, 지구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인간의
어처구니 없는 편견들을 버릴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래야 인간과 기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이 개념이 설 수 있을 것이다.
발달된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별필요도 없는 동물실험은 그만 두는 게 합리적인
것일거다. 그러나 당장에 '모든' 동물실험을 반대할 수는 없다. 고기보다는 콩을 통해 얻는 식물성 단백질에 좀더 의존하는 것이 인간의 건강에도 좋고 토양과 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도 좋다. 그러나 이를 위해 반드시 채식주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이건 마치 미국의 조사결과에서 무조건
순결교육을 실시하는 일부 가톨릭계 고등학교의 낙태율이 일반 고등학교보다 낮다는 이유로 개방적인 성교육을 거부하려고 드는 꼴과 비슷하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 정보의 흐름을 조작하고, 이미 있는 관습과 의식을 '이용'해서 일단 막아두려는 노력은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고 그러면서도 효과는 단발적으로 그치고 마는
짓이다. 요샌 사회의 변화가 너무 급속하기 때문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류의 변명은 아주 빨리, 통하지 않게 된다. 인간 외의 다른 동물의 평등권을 동원하여
채식주의와 동물해방을 설파하는 것은 한마디로 매우 어색한 행위다.
모피가 의미를 가지려면 최초에 사냥이란 행위가 있어야하나, 이미 그런 행위는
뒤로 물러나 있고 사육과 도살, 두 가지 단계만이 실질적으로는 남아있다. 이미
인류는 나무창 하나에 목숨 걸고 자기보다 커다란 들짐승을 뒤쫓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고서 스포츠에 열광하고, 안전히 사육, 도살된 고기를 즐겨먹는다. 분명 그 이미지만이 남아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경제적으로나 동물들의 쓸데적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나 진짜 모피랑 똑같은 인조모피를 개발하는 것이 젤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발달된 과학기술을 응용하여 무기물 합성보다는 유전자조작을 해서
커다란 밍크를 만들든지, 털만 배양을 해서 키우던지 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지, 무조건 반대하는게
수가 아니라는 점을 뒷받힘해줄 의견이 마지막으로 좀더 있다.
그 한가지로, 불쌍한 동물 많이 늘여서 좋을 것은 없지만, 동물의 종種의 입장에
서는 인간들이 책임지고 번성시켜 주니 반드시 원망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곡물
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엄청난 에너지 낭비를
감수하면서 가축을 기르는 것이 지구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있을나 일개 종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널리 번성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인간들이 옥수수 재배면적을 넓혀주고 번성시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여기에 대해서는 더이상 적극적인 주장은 아직 없음을 밝힌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겨두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은 아주 구식 동물이라 뇌속의 어두운 곳에는 어떤 욕망과 감각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법이다. 무조건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밀어내 버리면 즐거운 인생이 불가능해진다. 모피를 보며 흥분된
기분을 느끼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이번 겨울엔 진짜 오랜만에 진짜 모피의 바람이 한국에 불었다. 그동안 '사모님들'
의 전유물이자 환전가능한 재산이었던 모피의 개념과 전혀 다른, 한창때를 뽐내는
'아가씨들'의 화려하고 섹시한 모피패션이 엄청난 유행을 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인조모피지만, 간혹 가다 진짜 모피가 있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까만 토끼털
반코트의 촉감은 정말 근사하다. 만약에 나도 돈을 많이 버는 축에 낀다면, 한벌
장만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이 나의 낭비를 막아주었다.
한국인들은 아마 대니 서의 외침을 들은체도 안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채식주의
라는 극단처방도 모피반대라는 오버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는 것은 건강, 또는
아름다움, 자기네의 단순한 욕망들이다. 오랜세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해온
조상님들의 노하우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얻게 된 중용감각이 있다. 이
사람들은 채식주의를 신봉하지 않더라도, 늘 해오던 데에서 약간만 수정을 하면
(짜게 안 먹는거, 단백질 보충하는거) 문제없는 균형잡힌 영양식을 할 수 있다.
전부다 채식(중심 섭생)을 하기에 채식'주의'가 따로 생길 이유가 없는 곳에서 동물의 권리 주장이 씨알이 먹힐 것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2000.2.1
서양의식과 동물해방론에 대한 '더 심도 있는 비판'
[동물해방]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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