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밴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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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두 여자의 의견이 갈렸다. 스무살 먹은 남자는 [밴디트]가 정말 감동이었다고,
당장에 나가서 사운드트랙까지 샀다고 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 그보다 조금 더 먹은
여자들은 웃기는 소리 마라, 그 여자들은 정말 바보천치들이다, 그 영화는 정말 재수없다,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죽긴 왜 죽어 하는 아주 단호한 태도였다. 페미니즘 영화를 찬양하는
남자와 극악하게 씹어대는 여자들, 이 차이는 남녀의 차이일까 아니면 단지 세상을 조금 더
살고 말고의 차이일까?
물론 위의 남자는 스무살치고는 너무 순진하다. 그래도, 순진하고 뭘모른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살이가 힘들고 나쁜 점만 있는건 아닐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고집을
갖고 무슨무슨 예술작품을 만들곤 하니 꼭 유해한 것만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순진하지 않은 나도 예전에 [델마와 루이스] 볼땐 마음이 불편한
중에도 감동을 느꼈었으니까. 두 여자의 마지막 질주에 가슴이 아팠다. 중간에
껴서 왔다리갔다리하는 헤비케이틀은 재수 없었지만. 자식이, 동정을 해!
지금에 이르러서는, 절대 [밴디트]가 좋아지지 않는다. 영화가 좀 약하긴 해도, 마지막만
얼루 도망쳐서 잘먹고 잘살았으면 용서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온간 고난을 겪고서 겨우
살아나선 마지막에 멋있게 한판 때리고는 그만 총구를 향해 돌진~ 난 감독이 누군지 챙기려는
생각도 없이 그저 욕이 나올 뿐이다. 아마도 남자가 아니었을까. '멋진 여자들'의 끝을
비극적으로 완결지으려는 욕심을 보면 그런거 같다. 그에게 여자들의 삶이란 언제나 픽션
속의 것이니까. 만일 여자래도, 알만하다. 페미니즘에 경도된(꼭 이런 어려운 말이 어울린다)
얼치기겠지. 스스로 남자의 시각을 가져야 알아들을 수 있는 사회문화와 학문, 등등에
쩔어있으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여자들이 있다.
이렇게 가차없는 비난을 퍼부울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는 있다. 최소 모든 여성들과,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있다고 본다. 만약에 여성들의 반항을 지지할 작정이고,
만약에 여성들의 투쟁을 부추길 작정이었다면, 그렇게 작위적이고도 이상적이고 덜떨어진
라스트씬을 마련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도 이 영화는 싫어하지 않을까 하고
난 생각해본다. 하자는건지, 말자는건지?
결론은 이것이다. 잘먹고 잘사느냐? 만약에 여성들이 자기네를 짓밟는 남성중심
권력구조의 사회에 대항한다면, 그건 자기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자존적으로 즐겁고
자유롭게 살기 위한 것이다.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말이다. 지금 이 사회는 '아직까지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여성들은 패배하고, 결국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면, 할 필요가 없다.
자기 힘으로 가능한 최대한의 행복의 추구할 일이지 뭣하러 저항 따위를 하겠는가?
단지 한 순간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혹은 굴욕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기분이 너무
짜릿하기 때문에, 란 이유로 한다면 그것은 이해해 줄 수 있다. 대책없는 일이라도
저지르는게 인생의 기쁨이고 인간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쫓기다 쫓기다 갈 길이 없어서도
아니고, 멀쩡히 도망가서는, 왜 죽냐는거다...
밴디트 역시 아편과도 같은 '대중의 환호성'에 물이 들어서 멋지게 한판 하고 그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죽음으로서 자신들을(의 이미지를) 완성하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다면,
제꾀에 제가 넘어간 바보짓일 뿐이다. 옛날엔 죽음으로써 사랑을 증거하고 종교를 증거하는게
멋있어보였을지 몰라도, 요즘 사람들은 코방귀만 뀔 뿐이다. 남들이 뭐라 그러던(환호하던
수배령을 내리던) 살아서 멋지게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야지, 미쳤다고 성녀가 되기 위해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냐?
그들에겐 더 이상 길이 없었다 등속의 궤변은 가당치 않다. 그렇게 본다는 것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라스트가 살지 않을거라고 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사기꾼짓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 영화가 사기라는 것은, 실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기 삶의 열악한
조건들을 바꾸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없애기 위해 투쟁을 하고, 항의를 하고, 수를 쓰기도
하고, 타협을 하기도 하며, 권력을 쟁취하려고 하는 그 모든 노력들은 아무 보람도 없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순교자 콤플렉스'는 멈추어 있을지 몰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아서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옛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조건이 나아졌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 여자건 남자건간에 인간은,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점.
득도 되지 않는 싸움을 오로지 자존심 때문에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바로 사기꾼들이 하는
짓이다.
만약에 자신의 욕망들은 있는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치루어야할 싸움이 불가항력적으로
이길 확률이 없는 것이라면, 그건 전선을 짠 자기 눈이 잘못된 것이고, 머리가 나쁜 것이다.
그걸 세상탓을 하거나 사회구조탓을 하고, 또 남까지 물들이려는 것은 아주 파렴치한
사기행위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싸움인데, 승률이 최소한 50퍼센트는 넘어야할게 아닌가.
그 영화는 자기의 도그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양태에 대해 몰이해로
일관한다. 따라서 개뼉다구만도 못한 쓰레기다.
-나의 전제는 이렇다.
1. 작품의 일관성을 위해 인생을 포기할 순 없다.
2. 자살은 불쌍한 것이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다시 확인하는 결론은
1. 희생을 미화하는 모든 것들은 다 사기다.
20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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