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색, 아름답고 짜릿한-2000 봄/여름 SFAA 컬렉션 루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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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정말이지 한국 패션쇼도 볼만하다는 감탄을 자주 하게 되는데, 여러 면에서 그렇다.
모델들도 다 크고 잘 빠지고, 의상와 분장, 음악과 무대가 완벽하게 하나의 분위기를 멋지게
자아내고 있는 패션쇼가 제법 보여서, 케이블티비를 단 걸 다시금 뿌듯하게 여기게 한다.
보는 재미를 충분히 만족시킬뿐더러, 입고 싶은 마음이 날 정도로 예쁘고 멋진 옷들도 가끔
있다. 지나친 실용주의나 아줌마취향을 표방하여 보는 재미를 싹 잘라버리는 패션쇼는 정말
보기 어려워졌다.
케이블티비를 처음 달던 3년 전쯤과 비교해봤을 때, 예전에 한국거면 다른데 돌리고
외국거면 일단 뭔가 보고 하던 행태에서 많이 바뀌어 지금은 국적을 막론하고 속옷패션이면
왠만하면 다른데 돌리고 아니면 구린가 안 구린가 보면서 결정하는 걸 보면, 정말 다르긴
달라졌다.(좋고 구린 것을 가려내는 첫번째 방법은 음악이다.)
며칠 전에 본 2000 봄/여름 루비나 패션쇼는 오랜만에 즐거운 자극들로 옹송옹송 피어나는
푸릇함이 있었다. 커다란 꽃들, 연두색과 보색들이 줄줄이 이어진 니트의 가벼움, 이에 덧붙는
파랑이라기보다는 하늘색의 살랑거림, 톤을 낮춘 분홍색이 번쩍이는 재질을 만나 만들어내는
부드럽고도 빛을 발하는 화사함...
이 색들은 겨울 다음에 오는 봄의 색이기도 하고, 지겨운 IMF의 읊조림, '위축된 소비심리를
반영한다는' 칙칙한 색이나 그나마 좀 나아졌다는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밍밍함을 한달음에
제끼고 질러오는 오랜만의 봄의 색이기도 하다.
루비나는 멋지게도, 연두색, 보라, 오렌지, 파랑, 노랑, 분홍 온갖 선명하게 아름다운 색을,
채도를 한 톤 죽이고 대신 화려하게 맞붙여놓는다. 올막내리막 구불거리며 색색이 이어지는
니트는 참으로 가볍고 편안하면서도 꾸밈없는 느낌을 준다. 씩씩하고 발랄한 연두색을 주조로
한참 건너뛰어 날아온 색상들, 보라, 오렌지, 빨강, 분홍 등등이 그러나 한숨 죽이고
늘어붙어서, 대범하고 강렬하면서도 사붓하니 피어나는 부드러움이 있다.
파랑도, 거의 하늘색이라고 할만한 밝은 색으로만 쓰이는데, 얼기설기 니트로 가볍게
공기를 통과시키는 가디건은 연두색과 아주 사이좋게 튀어오른다. 보라도 파랑과 섞이기도
하고, 톤을 낮춘 분홍과 헷갈리기도 하면서 나풀나풀 잘 돌아다닌다. 이건, 지금까지 한국의
유행이란 데서는 전혀 나올 수 없는 색조다.
연두색의 주조로 흐르다가 톤을 한번 더 죽여 카키색을 주조로 하는 복잡한 무늬들을
선보이는데, 이건 옛날 옛날에, 이불보와 보자기, 엄마의 블라우스에서 보았던 그 화려하고
복잡한 무늬, 지금은 아무도 입을 수 없는(없던 ^^;) 유치찬란한 무늬다. 그런데, 이것이
다채로운 색들이 얹혀져서는 멋진 치마와 나시로 돌변하는 것이다. 멋지다.
최근에 이만한 즐거움과 신선함을 준것은 누구인지 이름 모를(^^;) 컬렉션의 한국 전통문양을
가슴에 단 원피스 군단 정도였지 않았나 싶다.
어떤 옷들은 진짜로 입고 싶었다.(돈만 있으면;;;) 그 예쁜 색들이 살아나는 건 역시 니트이기
때문인듯. 부드럽고 화사하면서도 활동성있고, 여유와 자신감이 넘쳐보인다. 까만 머리의
모델들이 많았는데, 한마디로 갈색 머리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색들만 나와서, 아주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노랑머리 모델은 어울렸다.(백인종이라 프리미엄을 얻어서 나온건지,
별로 잘 하지는 못한다.) 분위기 있는 척, 하는 태도는 절대 통용될 수 없는, 솔직한 생동감이
차 있는 무대였다.
요즘 보면, 한국 패션쇼에서 더더욱 개성이 소록소록 살아나는 모델이 많다. 탑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탑모델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모양이어서 여기서 본 사람 저기서 또 나오기 땜에
몇몇은 나도 얼굴을 외우게 되었는데(그중 한명을 접때 홍대에서 본적 있다. 정말 반가왔다. ^^*)
웃지 않고 무표정하든 방실방실 웃든, 어떤 색을 뒤집어쓰든 간에 미묘하게 포착되는,
자기만의 특정한 모양새나 모서리, 분위기를 갖고 있는 모델은 멋있다.
유일하게 모자란 게 있다면 부츠가 유치찬란한 색깔로 멋스러움을 자아내려고 했는데 그다지
완벽하지 못한 것이었다. 연두랑 빨강으로 번쩍이는 끈 묶는 부츠였는데, 대부분의 튀는 색과
비슷하게 튀어 어울리는 편이긴 했지만, 모양과 재질로 인해 안 어울리는 옷이랑 붙은 게 꽤
있었다.
루비나 컬렉션의 최대 미덕은 과연 대범한 보색대비다. 98년, 99년 봄의 파스텔 유행에
허망함과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일간지 패션란을 보니 아니, 이번 봄도냐? 하고 한탄하던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 아주 멋진 선물을 받은 셈이다.
이 발랄하고 화사한 색은 사실 IMF만 아니었다면 98년쯤엔 우리에게 주어졌어야 했던, 늦은
선물이다. 90년대의 모노톤, 칙칙하고 고상한(?지겨운!) 색의 물결을 뚫고 복고풍의 화려한
깃발 아래 갖가지 화려한 색상들이- 노랑 연두 파랑까지가 나온게 97년이니까 말이다.
화려한 단색들의 향연 뒤에는 한층 더 대범하고 멋스런 보색대비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는데-에스닉풍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말이다- 갑자기 경제가 위축되었다는
이유로 색들은 차단되고, 칙칙하고 때 안 타는 색들 아니면 얌전하고 은은하다는
파스텔톤이나 구경하게 되어버렸다. 어차피 비싼 옷값은 그대로 있는데 말이다.
파스텔톤은 80년대의 유행이다. 80년대라는 것은 흔히 간단히 줄여말하는 '70년대 복고풍'과는
전혀 다른 바람을 끌고 들어온다. 80년대는 냉전의 시대이자 보수반동의 시대, 전두환과
레이건과 대처의 시대였고, 전세계적으로 한때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68세대들이 모두 두손두발 들고 패배하여 스스로 보수세력이 되던 시절이
다. 디스코텍이나 신서사이저의 (지금 보기엔) 촌스러우면서도 신나는 향연이나,
그런것들이 있었다곤 해도 역시 80년대의 냄새는 눅눅하고, 갑갑하다. 여자들의 치마길이도
무릎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한국은, 어쨋거나)
90년대말의 파스텔톤은 철이른 80년대의 향수가 아니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단지 위축된 소비심리를 예측하고, 지어내기라도 해야하는 패션업계의
고분고분함과 소심함이었을 뿐이다. 이미 거의 결정된 '새천년 샤이닝 메이크업'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치는 밋밋한 파스텔조를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할려고 그러나, 뭘 입으란 말야
하던중에 루비나는 산뜻한 제안을 하는 셈이다.
루비나의 희안한 보색은 봄버릇 같은 요사이의 파스텔톤 유행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한걸음 앞질러 큐를 찌른다. 충분히 화사하고, 충분히 강렬하다. 이제야 좀 거리를 걸어도,
유행잡지를 훑어봐도 눈이 즐거워질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그동안은 정말 봄만 되면
재미없었다. 아주 가끔, 봄만 되면 파스텔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재치있는 색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살아있어 샤베트 같은 노랑이 나오거나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그동안 세기말이다 뭐다 하면서 사이버룩이나 괴상망측한 희안함을
추구하던것도, 자연주의 추구한다면서 절제된 색상으로 돌변하는 것도 다 그렇게 오랫동안
맘에 들지는 않았었다. 루비나 2000 봄/여름 컬렉션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혹은 언젠가
돌아보면) 복고풍 물결 끝자락에 달린 에스닉의 달콤한 변종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언어 이전에, 아주 예쁘고 멋지다. 여기엔 어떤 신비스러움도 불편함도 사기도 없다.
아주 참한 발랄함이다.
2000.3.8
sfa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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