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김기덕의 낚시줄에 걸려드는 '한국의 곱게 자란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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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씨네21에는 한 임상심리학자의 김기덕변론이 실렸는데, 그 주장은 김기
덕 영화가 '치유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병리적이면 무조건 치유적이고, 한
풀이만 하면 무조건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기덕 영화가 치유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치유가 필요한 병을 앓고 있는 관객들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치유행위가 정말 치유를 가져오는지 아니면 돌팔이가 사람잡는 건지,
즉 병을 더 키우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인지는 명확히 가려내야 할 일이다. (치
유를 반드시 해야하는 것인지, 영화를 통해 그걸 시도하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인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접어두겠다.) -
김기덕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은 자기 영화보다 휠씬 잔인한 것'
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건 '니들은 곱게 자라서 몰라' 하는 어거지,
강변으로밖에 안 보인다. 세상은 넓고 또 거칠기도 하다. 영화는 그 모두를 보
여줄 수 없고 선택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영화는 (대개는) 감독의 시선
으로 어떤 세계들을 보여준다. 김기덕이 보여주는 세계는 (무슨 까닭인지 몰라
도) 여성에 대한 적개심이 기반을 이루고 있는 병리적인 세계여서 분풀이와 학
대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곱게 자란 남성들'이 김기덕의 주타겟이라고 난 추측하고 있다. 자기가 전혀
알지도 못했던 거칠고 험한 세상, 무시무시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사가 꼼짝달
싹 못 하도록 '곱게 자란 젊은이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비록 여성을 전적으
로 학대당하는 불쌍한 것들로 그리고는 있지만, 저런 거친 세상에서는 것두 어
쩔 수 없나 보지... (덕분에 재미나 보자) 기괴한 인물들의 뒤틀린 관계들, 감정
들 속에서 헤매느라, 혹은 쇼크 상태로 굳어있는 동안, 극심한 잔인함의 숭고
미?는 당연 일어나는 반발심을 제압하고, 부당함에 항거할 말을 잃게 되는 것
이다. 따라서, 남성은 완벽하게 자기 양심을 벗어나 쾌감을 누릴 수 있다.
김기덕의 영화에 걸려드는 소수 여성들 역시 분석이 가능하다. 이들 역시 '곱
게 자라나 세상 무서운 소리엔 끔뻑 죽는',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게 미안
한 지식인양하는 중산층의 소심한 딸들이다. 이 여자들은 자기비판적인 면이
지나쳐 자기학대적인 면이 강해서 그 극심한 여성테러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리얼리즘?'에 감복하여 넘어가 버릴 능력이 된다.
난 그동안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장선우 감독 비판도 자제하고 있었던 참이지
만, '문제적' 감독을 띄워주는 지금 한국 영화 저널의 꼬라지를 볼 때 본격적인
김기덕 비판을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옆에서 무슨 훌륭하신 론을 떠들어
대며 연막을 치든간에 난 내가 느낀 대로 영화를 평가한다, 는 비평가의 올바
른 자세를 견지하던 강한섭 교수마저 홀라당 넘어가서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
라며 [파란대문]에 점수를 준 사실이다. (이번 신작 [섬]에 대해서는 20자평에
'들풀같은' 미학을 운운하여 유명해졌다.) 그외에도 남자 평자들은 대개 끔뻑 죽
고, 다만 여자 평자들, 특히 평소 페미니즘을 휘두르던 여자들만이 여성학대다,
창녀자매애론이다 비판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정말 우습다. 한국 영화 비평계
의 수준이 보이는 듯하다. 어째서 남자들 중엔 하나도 반대론이 나오지 못한
것인가?
김기덕 감독 자신이나 일부 저널의 태도를 보면 '일부' '여성' 그것도 '페미니
스트'들만이 김기덕영화에 반발한다는 식으로 사태를 착각하고 있다. 강간과 기
타 여성학대, 여성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에 대해 반발하고 반격하는 일은 페미
니스트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정말로 심각한 사회적 테러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 하는 것일까? 강간은 인권문제고, 여성학대 영화는 작가의 윤리 문
제다. 당연하다. 남성도 할 수 있다. 남자들도 그런 꼬라지 보면 화가 난다. 웃
기는 놈일세, 열받는다. 단지 '색다른 폭력'에 압도되어버린 곱게 자란 남성들만
이 아무말 못하고, 자기네는 절대 말도 못 꺼냈을 폭력을 휘두르고, 복수해주는
영화에 감복할 뿐인 것이다.
이런 꼴을 보다보면, 두 시간 내내 남자가 강간당하는 영화라도 봐야 남자들
도 정신차릴 것인가, 하는 인간비하적인 생각도 난다. 현실 세계에선 수없는 남
자들이 강간당하고, 성희롱당한다. 한국만 해도 유아성폭행과 군대의 성폭력은
장난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자랑스런 한국의 남성들은 자신들의 명예는 문제
없으며 매맞고 더러워지고 강간당하는 것은 약한 여성들뿐이라고 안심하고 있
는걸까?
남자가 강간당하는 건 아직까지 코메디가 될 수 있다. [에이스벤추라 2]를 즐
겁게 본 사람이라면 악당이 고릴라에게 강간당하는 암시적인 장면(수풀이 출렁
출청 움직인다)에서 대개는 웃겨서 죽을려고 했을 거다. 남자의 강간이 코메디
가 되는건 남자는 강자이며, 희생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높은 사회적 위치에
서 끌어내려져 바닥으로 꼬꾸라지는 모양에 마음놓고 웃는 것이다. 만약 여자
가 강간당한다면 속으론 쾌감을 즐기면서도, 겉으론 아닌척 할 것이다. 여자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코메디로 만들었다는 알모도바르의 [키카]는 정말 예외적인
케이스에 속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주성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남성성기 학
대증이 코메디로 충분히 포장될 수 있는 것 역시 남성은 깎아내려도 역시 남성
이라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파란대문]에서 강간을 일상적으로 하는 포주는 나중에 몇대 얻어터짐으로써
곧 '우리 시대의 약한 남자들'이 되어 동정받고, 공감을 얻을 남자가 되었다.
'왜 난 너만 보고 하고 싶지?' 게다가 그는 하고 싶어서 했을 뿐이니, 이해해
줄 수도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이다. 모두다 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은데 단지 도
덕과 양심과 체면과 용기없음 기타등등 때문에 못 하는 거니까. (게다가 영화
라는 픽션으로라도 즐기고 싶은데 포장을 기똥차게 안 해주면 양심에 걸려서
쾌감도 못 누리는 소심한 마음이라.)
김기덕 영화의 팬들은 그 분포가 어찌될지 알 만하다. 여성에 대한 가슴 깊은
곳의 적개심을 감히 직접 드러내 해결할 수 없는 소심한 남성들에게 예술작품
이란 그럴싸한 구실까지 제공해가며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이다. 아예 야한거
찾아다니는 아저씨들은 그런 영화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 흥행은 별로 안 되는
거다.
그의 영화는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라, 함부로 여성을 비하하거나 함부로 대
하는 걸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젊은 남자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함부로는 드
러낼 수 없는 공격욕구를 긁어준다. 그리고 그런 쾌락을 맛보는 것에 대한 죄
책감을 완화, 상쇄시켜주는 것이 작품이 풍기는 '예술인 척' 냄새다. 그래서 그
어설픈, 예쁜 화면발 잡기, 상징 따위 배치하기 등속이 더더욱 역겹다.
그저 남자들의 뒤틀린 새디즘적 욕구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포르노 따위라면
그저 그저그런 포르노 취급, 그저그런 포르노 감독 취급을 해주니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텐데,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놓고 단지 포장을 심오한척, 이상
하게 해놓았다는 이유로 문제적 감독이니 대안 영화니 뭔가 있는 감독취급을
하고 뭔가 있는 영화취급을 하는 것이 정말 웃기는 점이다. 그건 정당하지 않
다. 김기덕의 영화가 영상미가 실제로 안 뛰어나다든가 별로 서정적이지도 않
고 상징은 뻔하디뻔짜이다라든가 하는 얘기는 할 필요도 없다. 그의 영화는 그
수준일뿐이라는 것이다. 여성학대 내지는 복수.
[섬]의 주내용을 이루는 새디즘과 매저키즘, 자기학대가 짬뽕된 기이한 여자주
인공의 행태는 한 사람, 한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개연성이란게 전혀 없다는
점을 보자. 이 캐릭터가 성립되는 것은 오로지 '김기덕 세계'에서 원리인, 1. 섹
스는 강간이다, 2. 여자는 창녀다, 3. 구원은 오로지 창녀의 품 속에서다 를 만
족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전 여자들과는 달리 새디스트로 설정된 이 여자
는 새디스트로서는 이해해주기 힘든 행위를 연달아 해댈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유지나 교수가 제대로 짚었다. ('김기덕 영화의 혐의와 [섬]의 문
제' 하이텔 명사칼럼- 예전에 보여주던 지나치리만큼 날카롭던 페미니스트의
독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상당히 유한 비판만으로 끝낸 것이 좀 아쉽다. 좀더
확실히 씹어줬어야 했는데) 그 여자는 진정한 새디스트도 진짜 매저키스트도
아니다. 단지 김기덕의 프랑케쉬타인 신부, 여성=창녀=엄마(자궁)인 것이다.
(난 [섬]을 보지 않았다. [파란대문]만으로도 김기덕 영화를 이루는 골조를 파악
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고, 다시 그런 지나치게 '자기학대적인 영화보기'를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용만 전해들어도 알만
한 그 심각한 영화를 내 돈 주고 극장에서 봐줄 가치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하
니까. 영화를 평하는 비평가의 도리 운운하며 그런 영화를 보느라 내 인생을
낭비하고 나 자신을 괴롭힐 이유는 없다.)
자기 영화의 잔인성을 무마하기 위해 김기덕 감독이 내세우는 '환타지'의 논리
는 정말이지 빈한하다. 환타지이므로 모든 것은 문제될 것 없다? 사실 난 당신
의 작품은 환타지와 기타 등등을 양념으로 친 강간 대리충족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복수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김기덕이란 감독이 하나의 작가로
서 서기에는 윤리적으로 빵점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개새끼인
작가가 작품은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는 궤변을 난 믿지 않는다. 최소한, 어느
시점에 가서는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김기덕 영화의 바닥에는 '여성에 대한 증오와 복수' 가 깔려있다. 그의 여자들
은 끊임없는 자기학대를 일삼는데, 그건 단지 그 여자들이 매저키스트여서가
아니다. 매저키스트는 복종을 통해 쾌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그 여자들의 자
기학대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이루는 수준이다. 그 자기학대는 어쩌면 '적의 손
으로 적의 목을 치는 더 통쾌한 복수' 같은 것이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이 sf를
만든다면 자기를 버린 여자의 복제인간을 만들어서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는 자
해 및 자살을 일삼도록 조종하는 남자의 얘기가 되지 않을까나 한다.
일반적으로 '잔인함'이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것을 비판하는데 성공했을
때, 아니면 일상적인 사회생활과 상관없는 무념무상의 액션으로 제공했을 때
뿐이다. (이 두가지가 한 영화에 모여있어도 욕을 먹는다.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라.) 아니라면 다수의 욕을 피하기 힘들다. 그래도, 진정으로
잔인함을 추구하는 광인들이 있어 자기네 컬트를 만들고 어쩌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실제로 총들고 무슨 짓을 한건 아니니까. 그러나 그것을 예
술이니 서정이니 어쩌니 하는 구실을 들어서 대안영화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분명히 김기덕 영화를 윤리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서는 전혀 헷갈릴 이유가 없다. (영화에 대한, 문화상품에 대한) 윤리적 비난이
란 유림들이나 YMCA 아줌마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만약 어떤 영화가 인
종차별이나 여성학대를 의식 속에 전제로 깔아놓고 있다면 그 영화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반대로, 인도에서 벌어지는 여성학대를 소름끼치게 그려내고 있는
[밴디드퀸]이 비난을 받지 않고 오히려 괜찮은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은 그 '고
통의 바다'를 그려내고 있는 감독의 방법이 냉정한 리얼리즘도 오버하는 페미
니즘 만세도 아니고, 바로 그 여자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힘의 발현을 이끌어내
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덕 영화는 전혀 '대안적'일 만한 꺼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영화의 참담한 상황을 더 나쁜 방향으로 끌어간다고 난 본다. 그동
안, 즉 90년대의 거대한 영화붐으로 인해 형성된 고급관객들과 자칭 '영화인'들
의 꾸준한 시도가 지금에 와서 단편적으로 단편영화가 해외에서 시선을 끌고,
신진감독들이 장편영화 입봉을 하고 (이 입봉이라는 말은 일본말로 기생이 처
음으로 손님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 쓰지 맙시다. 데뷔라
는 좋은 프랑스말을 씁시다.)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의 고급관객은 지나치게 자신을 영화인으로 동일시하며 뭐든
지 힘들게 애써서, 한국영화 발전의 밑거름이 되려고 하는 작품이나 감독이라
면 허접쓰레기든 사기치는 놈이든 다 용서해주는 무시무시하게 잘못된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비율상 그들 사이에 지식인 컴플렉스가 상
당히 먹힐 수 있다는 점. 그 분위기의 힘을 입었기 때문에 일반관객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평론가 취향'의 영화가 지금 한국 영화저널이 밀어주고 띄워주며
마치 한국영화의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인양 '착각도 유분수'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매니아와 평론가만 좋아하고 일반 대중은 외면하는 영화 중에는 물론 좋은 영
화가 많다. 그러나, 대학생 포함해서 한국 식자층들에 아무래도 만연한 컴플렉
스나 그들이 심취해있는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아부하는 영화나 계속 만들다
가는 한국영화는 정말 빨리 망할 것이다. 그 대표주자가 홍상수 감독이며, 김기
덕 감독도 한컬트하니 당연 주멤버이며, 이창동 감독도 그 대열에 훌륭히 끼어
들었다고 본다. ([박하사탕]을 아직 안 봐서 확신할 수는 없다. [박하사탕] 정도
는 비디오로는 봐줄 수 있는데, 미루다 보니.)
(최근 한국영화의 동향인 '헐리우드 따라가다 다리찢어지는 블럭버스터형'과 '예
술인양 컬트인양 새로운양하는 식자층용 작가주의' 구도를 파악하는데는 남명
희의 통찰에서 도움받았음을 밝힌다.)
그 임상심리학자의 변론 대로, 윤리적으로 비판해 마땅할 영화라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최소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끔찍한 행위를 청소년이 보고 따라하면
어쩌나' 라든가 하는 유치한 덮어씌우기가 아니다. 폭력음란물은 반사회적이니
추방해야한다 든가하는 웃기는 궤변을 늘어놓는게 아니다. 난 포르노 전용 영
화관에 찬성한다. 단.지.
몹시 기분이 나쁘다, 는 것이다. 먼저, 이런 웃기는 사고방식을 서정미라든가
기타등등으로 포장하는 감독의 술수에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별국 그 근본을
파고들어갔을 때 소심한 지식인형 컴플렉스 밑에 숨어있는 여성에 대한 원한과
복수 의식밖에 나오지 않는 영화에 대해 비평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냥
끔벅 넘어가버리는 거의 집단최면 수준인 이 천박한 한국의 영화담론의 작태에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물론 김기덕 영화엔 '치유적' 성격이 없다. 단지 강간대
리충족물, 지식인컴플렉스 주문제작 자위기구인 것이다.)
내가 김기덕 비판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악어]를 보고 나 역시 속아넘어간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자칭 영화인이자 고급관객에 근접하고, 지식인
컴플렉스에 대해서도 여성의 자기학대적 성향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안다. [악어]
에 넘어간 것은 역시 그 기발하고도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요상망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때문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도 불편하고
껄끄러운 심정을 분노로 표출하는 것을 막은 것 또한 그 캐릭터의 생생함,
'삐꾸 리얼리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후 시간이 흘러 나자신이 좀 바뀌면서, 그리고 '있는 척하는' 영화들의 구태
의연에 지겨움을 심히 느끼게 되면서 [파란대문]의 만개한 테러리즘엔 그만 열받아
칼을 뽑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루다 미루다 [파란대문]을 본 직후
[섬]이 개봉되는 희안한 타이밍이 되어 나우누리 씨네동의 '김기덕 논쟁'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 글로써 저번의 [파란대문비판: 감독은 포주다]에서 열받아
달리느라 분석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으면 한다.
김기덕 감독의 사기술은 정말 뛰어나다. 한편으론 분노가 자극되더라도 다른
한편으론 자기 안의 (요맨큼이라도 그 존재를 인정하기 싫은) 컴플렉스를 건드리기
때문에 (막중한 예술냄새의 무대장치에 힘입어) 걸려들게 되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싫은 것에 대하여 싫다고 그냥 도망가지 못하고 이상하네
이상하네 하며 돌아보다 말려드는 것이 '생각이 많은', '소심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씩이나 간' 사람들 중에 많이 있는 유형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좀 있다고 해서 크게 절망할 것은 없다. 자기의 욕망과 눈앞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솔직함을 유지하면서 밀고나가면 다 빠져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치유목적으로 아무거나 집어삼킬 필요는 없다.)
끝으로, 소심한 '곱게 자란 남성들' 내지는 지식인 컴플렉스가 분명 과거에 '말
잘듣는 아이'로서 어머니에 대한 원한을 밑바닥에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이
내 머리 속에 들어오고는 있는데, 아직 확신을 할 수는 없다. 곱게 자란것
같지는 않은 김기덕의 기발한 반항이 이들에게 어필한 것은 사실이다. 김기덕의
반복되는 상징, 물과 자궁은 그냥 멋으로 붙인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김기덕 감독의 극악스러운 여성에 대한 복수의식은 어머니에 대한 원한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자연스런 추측은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의 개인사
밑바닥에서 '원인'을 건져올리는 심리학적인 방법은 나의 영역은 아니다. 다른
연구자의 작업을 기대한다.) 굳이 개인의 과거사를 파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사회
남성의 도착적 성의식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수 있겠지만.
한국사람의 모성 이데올로기, 엄마타령은 아주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있어서 수많은 여성들을 감금하며 여성들이 자기를 위한 삶을 사는데 막강한
방해를 하고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이는 탄압이고, 보이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억압은 어떠한 정신병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한국의 여론은 '마마보이'라는 귀여운 일갈 외에는 표면에 내어놓은 적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대대적인 비판을 기대해 볼 데가 어디 없을까?
20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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