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테크노, 반복과 변이
back to noculture
반복이 계속되다보면 변이가 일어난다. 그것은 유전자복제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테크노 음악에서도 그렇다. 실은 인간의 모든 지적활동 및 사회활동이란게 그렇다.
지식이 머리속에서 그대로 재생될 뿐 변이가 없다면, 자기의 생각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반복이 계속되는데도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은 죽음을 향
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지금 전세계를 불어제끼는 테크노 열풍을 단지 넘치는 정력을 주체못하는 젊은이들의 레이
브파티일 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테크노는 죽음을 없애고 삶을 들어서게 만드는 선에 접해있다.
테크노바엔 테크노가 없다?
나는 지금 한국에 잠시 불고있다는 '테크노 바람'을 보면서 꼭 붕어 없는 붕어빵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붕어빵에는 배신적으로? 붕어가 없지만 누구 하나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즐기는 건 그냥 단팥이 들어있는 '붕어모양'의 빵일 뿐이니까. 테크노바도 생기고, 사이버 메이크업도 번성하지만, 그런 테크노
열풍과는 상관없이 요새 테크노랍시고 나온 가요치고 테크노라고 부를 만한 것은 하나도 못 보았다. 대개는 거의 냄새 좀 피우는걸 가지고 테크노라고 하니 웃길
뿐이다. 하지만, 그저 웃을 뿐이다. '법적'으로 고소를 하거나 할 꺼리는 아닌 것이다, 물론.
본래 테크노 음악에서 댄스가 나왔다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은 무시하고 싶다. 왜냐면, 그런 걸 따지기에는 너무나 틀리기 때문이다. 한국의 댄스음악은 1990년대에
형성된 한국댄스일 뿐이다. 원래 테크노는 춤추기 위한 음악으로 번성했다 어쨋다 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모든 음악은 자기 나름의 춤을 가질 수 있는 거다.
'한국 댄스음악'은 나름의 춤을 가지며 공인된 젊음의 발산 양식으로서 자신에게 충실하며 그 안에서 소통될 수 있는 음악만을 생산한다.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 들
어서는걸 용납하지 않는다.
반복-집착
90년대 중반 이후 홍대앞 락카페에 심심찮게 출몰하며 나름대로 춤의 일가를 이루어온 나의 감각으로 미루어봤을 때, 테크노가 다른 음악과 본능적으로 다른 것
은 '반복'이라는 화두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다. 락도 디스코도 블루스도 기본적인 비트 위에 적절히 반복되는 곡의 흐름을 가지고 있고, 나름의 양식 하에 반복
은 변이한다. 그러나 이건 언제나 '적절히'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략 3, 4분에 끝나는 노래라면 시작에서 끝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테크노라고 하는 음악은 반복을 강박적으로 되풀이하면서도, '정형적'인 전개와는 무관한, 나름의 변주를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테크노도 많이 듣다보
면 그 전개를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개는 별로 친절하지 않다. 아주 면밀히 그 변주에 자신을 밀착시켜야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곡들의 연결을 멋
지게 해내는 고수 디제이가 있어야만 제대로 춤추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반복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큰코다치는, 무한대의 변주가능성을 가지고서 테크노는 우리를 자극한다. 한마디로, '고수'에겐 춤출 맛이 나게 해주는 음악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따라가기 힘든 정도가 좀 쎄서, 대개의 '진짜 테크노바'는 춤추기
좋은 음악을 집중시키는 시간과 어느 정도 진짜배기를 엮어내는 시간을 번갈아 안배하는 듯하다.
너무나도 실험적인
난 현재 시점에서 진정한 실험음악, 진정한 현대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역시 테크노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그 한 백년 전에 기존 화성법을 벗어나겠다며 무조 음
악이니, 12음기법이니를 만들었다지만, 지금까지도 그런걸 베껴먹는 사람들이 자기네가 '현대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 우습다고 생각된다. 뭔가 상식을 깨는 이상
한 짓을 해서 '아방가르드'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한번만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앤디 워홀의 테러블한 실험이나 존 케이지의 깨는 짓거리는 단 한 번 실행될 수
있는 예술인 것이다. 후에 조금 다르게 고쳐서 해대면서 예술이라고 불러 달라는 건 몹시 뻔뻔한 태도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의 어법을 다양한 삶의 감정과 질곡들을 표현하도록 형식화해야만 될 것이다. 어느 차원으로든지 소통이 되어야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예술' 차원에서 얘기하자면, 테크노는 '실험적인 현대음악'보다 더 본격적이고, 창의적이다. 다른 음악들과 비교해봐도 실험성과 창의성이란 면에서 발군이라고 보
인다. 자본주의 사회 안의 음악들 중에는 말이다. 테크노계의 고수들은 자기가 직접 음원을 만들어서 쓰는 것만 '친다'고 한다. 남이 만들어준 반제품 음원 갖다가
늘어놓는 것은 '어설픈' 방법이라는 얘기가 아닐까. 물론 멋지게 뒤섞어 이어붙이는 것도 충분히 창조적인 작업일 수 있고 괜찮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 원래 편한
것이 테크노의 미덕이 아닌가. 만약 악기를 직접 손으로 다룬다면 수십년의 세월을 바쳐야 이룩할 수 있는 음악적 기술적 경지를 한 번의 복제로 그대로 운용가능
한 것이 테크노의 강점이 될 것이다.
n세대와 테크노
손쉬운 복제와 수없이 가능한 결합, 이것이 우리가 테크노라고 부르는 음악 장르의 변별점이 될 것이다. 그 두 가지는 네트세상이 구현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전자
복제는 거의 추가 노동을 필요치 않으며 가치를 손실 없이 그대로 재생한다. 그리고 네트 안의 한 싸이트는 또 다른 싸이트와, 마음에 찍은 하나의 점은 또 다른
점과 무한히 연결된다. 따라서 아주 유치한 수준이긴 하지만 현재 한국에 불고있는 테크노 유행과 n세대의 연결은 가당하다, 고 볼 수 있다.
손쉬운 복제로 뚝딱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컴키드들은 신나게 컴퓨터음악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물론, 대단치 않
은 수준이고, 착각도 유분수인 아마추어일 것이다. 그렇게 프로그램 몇개로 만들어내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진짜 음악을 해보려고 했을 때, 당장 다가오는 큰 장
애물은 돈이다. 전자악기들은 정말 비싸다. 원래 비싸기도 하고, 이놈의 멍청한 나라에서 문화산업 육성 어쩌구 떠들면서 벤처사업엔 자금지원 한다며 생돈을 날리
면서 정작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 창작자들이 작업을 위해 꼭 필요한 악기와 기계들에는 사치품적용 관세를 왕창 물리는 통에, 원간한 부자집 자제들이나 아니
면 예술하기도 참 힘들다. (그나마 집단 예술이고 노하우 축적이 조직화된 편인 영화에 비하면, 한없이 개인적인 예술인 음악은 좀더 힘든 편이다.)
난 이 나라가 진짜로 다른 나라에 비해 십년 이십년 이상 뒤진 문화산업을 제대로 융성하게 하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기자재에 대한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을 육성한다면서 기업을 도와주거나, 예술을 돕는답시고 클래식음악이나 밀어주는건 정말이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문화산업이 잘 되려면, 무
엇보다도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하며, 그 훌륭한 작품을 만들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물론 군대를 모병제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재능있
는 젊은이들이 중간에 바보총각 내지는 범용한 인물이 되지 않고 창의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입시감옥인 공교육을 뜯어고치는 것도 실은 그 다음의 일이다. 진
짜 될 놈이라면, 군대만 치워줘도 다 할 수 있을거다.
지금 형성되고 있는 전자기적 지구촌에 걸맞는 감수성으로서 테크노는 앞으로 한참은 유행할 듯하다. 아마도 십년은 충분히 유행하고, 그 담엔 또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하지 않을까나. 지금 테크노의 유행은 지금의 십대와 이십대가 어린시절 감수성에 깊이 아로새겼던 80년대 신스팝과 상당히 연관이 있다. 그 시절 전자
음은 지금 들으면 조금은 촌스럽지만 여전히 새롭고도 친근한 뭔가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생산력이 분출하는' 시대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 전세계에 불고있는 테크노 열풍이 좀더 제대로 된 작품들을 다량으로 생산하며, 또 그에 걸맞는 걸출한 뮤직비디오들을 양산할 수 있게, 잘 요동쳐 나가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 가질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본격적인 전자기 지구, 네트 세상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테크노란 용어도 엄밀히 따지자면 일렉트로닉스 안에 서브장르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난 그냥 '관용적 표현'에 머물기로 했다. )
2000.7.19
back to no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