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복고풍, 되찾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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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6년즈음, 그러니까 패션에 복고풍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직전 난 카메라를 들고서 홍대앞, 이촌, 명동을, 그러니까 아파트라는 삶의 양식이
등장한 후 밀려나고 사라져간 70년대의 흔적과 향수를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기기 그지 없는 새마을 운동 덕에 집집마다
덮혔던 슬레이트, 옛날 기억 속의 햇빛을 받아 투명해진 파아란 슬레이트가 잊혀지지 않아서였다.
음악에서 시작된 복고풍
90년대를 휩쓴 패션의 70년대 복고풍은 락음악계의 얼터너티브의 열풍과 함께 시작한 것이다. 얼터너티브를 9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자 유행으로 볼 때,
구체적으로 그 유행을 폭발시킨 형상이 되었던 것은 니르바나를 황제로 하는 그런지였다.
그런지는 분명 80년대의 헤비메탈을 부정하고서 70년대의 펑크를 불러들이는 운동이었다. 펑크와 같은 단순한 코드에다가 메탈의 (쌈박한 반항의) 사운드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익숙해진 귀를 위한 사운드였다. 메탈의 팝적인 변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점은 얼터너티브가 거의 소진한 지금에도
아주 익숙한 '갈아없어지는' 기타사운드에 남아있다.
방랑자여 방랑자여 노래를 불러라
70년대 복고풍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21세기의 시작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70년대의 히피의 반문화 운동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직접 그 시절을 겪어 70년대를 회고할 수 있는 세대는 이미 패션에서 떠났지만, 그 당시 혹은 그 뒤로 태어난 많은 젊은이들은 그 시절의
꿈과 멋, 열정에 대한 갖가지 환상과 추억들을 받아안고서 뒤늦은 90년대에 복고풍의 향수를 즐겼다.
난 이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시대를 향수하는 젊은이들의 감수성이 생겨난 것은 우리가 어려서 즐겨보았던 [말괄량이 삐삐]나 그외 수많은 반문화세대가
부지런히 만들어준 방랑을 다루는 티비드라마의 향수와 연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유와 방랑에 대한 동경이 우리를 본 적도 없는 히피를 모델로
삼게 하는 것이다.
** 70년대 한국 포크에서도 아주 강렬한 방랑자의 감수성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히피운동과 한민족의 김삿갓의 전통이 만난 것이 아닐까 난
생각해본다. **
우리 바깥에 있는 것들
70년대 복고풍은 무엇보다도 화려한 색채가 특징적이다. 강렬한 색채와 화려하고 이국적인(서양인들 입장에서) 무늬들, 몸에 딱 붙는 셔츠와 너덜너덜한
청바지에 높디높은 통굽, 그간 무조건 짧아지던 미니스커트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새로운 분할선이 복고풍을 형성한다.
에스닉 혹은 인도풍, 집시풍, 동양풍 이 모든 풍은 '이국적'이라는 범주 안으로 들어오는 감수성의 것들이다. 30년전 반문화 운동을 정열적으로 했던 히피들은
모든 '동양적인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전환을 위한 모델과 에너지를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무한한 자유를 원했고, 또 자기네의 공허를 채워줄 정신적인
것을 찾았다. 아마도 비기독교적이면서도 신성한 것을 찾았을 것이라고, 난 생각해본다.
우리는 황인종의 얼굴을 하고서 서구문명을 기본으로 받아들여서는 마치 자기가 백인남성이라도 되는양 모든 영화나 다큐멘터리, 책들을 바라보는
우스운 버릇을 가지고 있다. 우리 동양인은 때에 따라선 '우리 밖에' 있는 타인으로서 우리를 바라본다. '전통문화'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생활과
현실감각 밖에서 우리를 애처로이 바라보고 있다. '동양적'이라고 하는 감수성 역시 그렇다. 어쨋거나, 그것들은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의
'바깥'에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 바람(風)을 우리 역시 간절히 원한 것이다.
현대인의 열망
언젠가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 전쟁과 아무 생각없이 비교되는 경쟁과 이윤의 사회에 살면서 너덜너덜해진 정신과 문화를 치유하고 '제대로' 기르기
위해 우리는 새로이 동양적인 것에 열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도 수지침이니 단전호흡이니 경락마사지니 여러가지 아이템들이 번성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사회는 경쟁 패러다임에 계속해서 먹혀들어가는 중이며, 자본주의의 상품윤리를 미감적으로 체득해가는 중이다. 여전히 동양은 밖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자유와 방랑의 이미지, 히피의 정열은 역시 서양에서 온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향하고 있던 모델을 우리 안에서
바라볼 능력이 아직 없다. 70년대의 복고에 대한 향수 역시 많은 부분 밖을 향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완전한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80년대의 운동은 금욕적이었으며 90년대의 쾌락은 아직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21세기의 첫십년은 과연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심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연합을, 창조적인 문화의 개화를 얻을 것인지.
예측은 어렵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자신을 잃고 조잡한 근대화를 흉내내며 섣부른 풍요를 불러들이려 했던 그 과거를, '향수'라는 감각적 통로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조국근대화라는 미명하에 들어섰던 수많은 알록달록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바른 담벼락에 대하여, 나즈막한 집들의 후미진 골목에
대하여, 통기타 가수가 판쵸입고 기타 하나 달랑 매고 다니면서 사랑과 자유를 노래했다는 시절에 대하여, 나일론 천 위에 한없이 절제를 모르고 찍히었던
화려한 무늬에 대하여 다정한 촌스러움에 대하여 추억할 수 있다. 산업화를 추억할 수 있다.
200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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