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네트워크 세상과 유치함의 사회화
-컴퓨터혁명의 효과는 이렇게나 명확하다. 좋은 일만큼, 나쁜 일도 빠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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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온갖 매체에서 떠들어대던 '정보화'가 익숙해지면서 벌써 우리는 퇴행성
명작엽기 '텔레토비'를 맞이하였고 요새는 인터넷의 공로로 인해 비주류 매니아
문화로만 남아있을 듯하던 '엽기'*의 트렌드화를 마주보고 있는 중이다.
** 요즘 한참 '엽기' 트렌드가 떠서 젊은이 문화를 점령한 듯한데, 사실
생각해보면 몇년 전에 '썰렁하다'에 그토록 집착하던 젊은이 문화의 모습과 거의
다른 점이 없다. 다른 점이라면, 말에 중점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던
썰렁시리즈 시대와는 달리 지금의 인터넷 시대에는 시각적인 면을 충분히
발휘하여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쨋거나, '엽기'는 사실 난 벌써
은유적으로 한참 쓰다가 그만 약발이 다 떨어져 내버려두었던 용어다. (내가 좀
쉽게 물리는 편이긴 하다.) 이제 대대적으로 대중적으로 그 은유를 써대고
있으니 앞으로 그게 은유였던 것도 잊어버릴 만큼, 은유가 다 헤어져 닳아버릴
때쯤 해서 그 유행은 사그라들 것이다. **
핸드폰이 삐삐를 제끼고 젊은이의 필수품이 된 것이 겨우 2년전인데, 요새는
imt2000을 둘러싸고 난리들이며 이제 조금만 있으면 노트북이 아니라 팜탑
컴퓨터가 개인의 능력과 부를 상징하는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엔
컴퓨터가 없으면 학생은 숙제도 못하고 컴퓨터가 없으면 비디오샵 하나 만화방
하나도 할 수 없다. 초고속 인터넷이 없으면 게임도 할 수 없기에 한국엔
그렇게나 많은 게임방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실질적인 효율성을
생산해내는가와는 상관없이, 컴퓨터 없이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시대에
뒤떨어지고 돈벌기 힘들어지는 것으로 인식된다. 컴퓨터가 이렇게 인류의 삶을
바꿔놓으리라고는, 75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1을 만들었던 애플사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싹쓸이 문화가 만연한 한국만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사실
이곳은 무척이나 감성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는 나라라서 야단스럽게 우르르
몰려다니다 끝나곤 하지만 변화를 빨리, 감성적으로 알아챌 수가 있다는 좋은
점이 있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만약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면서 해나갔다면
어림도 없을 정도로 초고속통신망을 비롯하여 컴퓨터 등 하드웨어쪽이 잘
업그레이드되어있는 것 또한 싹쓸이 문화의 장점에 속한다. 이것은 또한
무엇보다도 자식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보람으로 아는 한국인의
교육열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덕분에 한국인은 네티즌 사이에 국제적인
오명을 떨치게도 되었다.
한동안 오로지 스타크래프트 게임 하나만을 하기 위해 몰려든 중고딩들의
위세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특이하게도 pc방이라는 정보화 수단을 가지게
되었지만, 또한 덕분에 세계에서 최저의 예의없는 인간들이라는 딱지도 달게
되었다. 한국 네티즌의 평균연령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으며,
그 까닭은 오로지 평소 재미없고 괴로운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사주신 컴퓨터를 이용해서) 네트에 들어와 놀아대는
중고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신변이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부로
욕하고, 예의없게 행동하는 네티즌 에티켓 빵점짜리들이 한국에 만연한 것 역시
이용자의 다수가 중고등학생이라는 것이 큰 이유가 된다.
물론,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오로지 입시교육을 위해 모든 교육이념을
팔아넘긴, 공교육이 망해버린 나라이기 때문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구타입시교육을 탓하더라도, 개인의 인격과 무례는 개인의 책임이다. 네트에서
우리는 아주 수준높은 (주로 매니아적 자질을 보이는) 고딩과 유치찬란한
고딩들을 모두 다 만나볼 수 있다. 네트워크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양질의
지식에 특권을 갖지 않은 개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세상만은 아니다. 유치함의
사회화라고 하는 현상을 일으킨 것 역시 네트워크다. 이것은 단지 어린
학생들이 예의가 없다, 문화가 없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pc통신과 인터넷은
새로운 장을 만듦으로써 어디까지나 새로운 문화들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어린 시절을 지내왔고 수많은 유치한 짓들을 했었다. 점점
크면서 이 짓이 유치한 짓이구나, 하고 부끄러움을 느껴 그만두곤 한 것들이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개인마다 꽤나 많을 것이다. ^^; 사춘기 접어들 무렵엔
더없이 아름답고 슬픈 사랑 얘기라고 생각했던 소설이나 시들이 나중에
돌아보면 왜 그리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미사여구인지, --; 하는
창피함의 기억이 개인들의 미감에 흔적도 없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래 유치한 감정들이나, 사상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즉, 감상적인 시집이나 유치한 소설을
돌려보며 읽는 친구들은 한정되어 있고, 커가면서 많은 세상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런 가치들은 잊혀지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pc통신이 생기면서,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확 달라진 것이 있으니, 바로 이러한 유치함의 전국적인 공유다.
어느 pc통신회사나 간에 플라자란이나 토론실에 가보면 정말이지 어찌 이런
유치한 생각이.. 하는 정도의 웃기는 얘기들이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유치한 생각에 대항하는 또 다른 유치한 생각들의 싸움들을
보다보면, 참 웃기는 세상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전같았으면 절대로 만나서
붙을 리가 없는 전혀 반대의 의견들이 모두 똑같은 의견으로 존중되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신 민주주의의 세상이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어려선 유치한 생각을 하다가 크면
또 다른 생각을 얻게되는 것이 인간이니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현대세계의 조건은 어려서 가진 유치한 생각을 그대로
존속시킬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넷상에서 가끔 보게 되는,
중고딩 중에나 어쩌다 있을 법한 똘아이같은 미련함을 가진 대딩이 그 확실한
증거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음주운전이 무슨 죄인가요' 하며 지네
아이돌스타만을 옹호하느라 사리분별이고 뭐고 없는 빠순이들이 잘 났다고
자기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말로 팬들이 공간적 한계를 초월하여
넷상에서 집결할 수 있는 조건 덕에 가능한 것이다.
사이버공간은 다른 경우에 보게 되는 시공간적 한정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편먹기를 가능하게 하는, 심지어는 자기 혼자서도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강력한 환경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자기의 말을 들리도록 전달하는
과정이 있어야 개인은 '자기'라는 것을 만들고 보전한다. 넷상에 올라가는 글과
그 제목, 그 옆에 붙어있는 조회수 혹은 추천수는 그대로 자기의 말에 응답한
다른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있을 필요가 없다. 다른 어느
곳에라도, 자기와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둘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네트워크의
확장은 왕따제도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간다.
난 앞으로 네트워크가 만드는 수많은 세상에서는, 유치한 놈은 더욱더
유치해져 가고, 사이버펑크나 카피레프트족처럼 강력한 이념을 가진 족속들은
더욱 풍부하고 강한 커뮤니티를 갖게 되는 양극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뿐만이 아니라, 유치한 집단과 세련된 집단, 파시즘적인 집단과
개인주의적인 집단 역시 그 양극화가 심해지고, 갈등 또한 커질 것 같다. 몇년전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이동] 읽으며 낙관하던 시절과 달리
인터넷이 창출하는 모든 가능성을 자본주의의 이윤법칙이 앞질러
차지해버리려는 현재의 꼴을 보았을 때, 솔직이 불안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유치함의 사회화는 물론 어린애성의 사회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치함이란 곧 어린애같음이니까. 그 어린애같음이 선입관 없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소탈한 열린 마음으로 갈지 아니면 이기적이고 세상
모르면서 남따라 장에 가고 또래문화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아집으로 갈지에
따라서 우리는 어감이 다른 두 단어를 붙여준다. 네트워크가 두 가지를 다
부채질하는 것이 사실이다.
200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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