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몸을 입어라 마음을 얻으리라
-태양에서 세 번째 돌멩이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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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36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한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3rd rock from the sun)은 정말
재미난 작품이다. 한 외계인 종족이 우주의 여러 행성들에 정탐원들을 보내는데, 그중 한 팀이 지구에
배치되어 온다. 재미난 것은, 그들은 원래 분홍빛 튜브로서 지구로 오면서 인간의 몸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뇌속은 텅비었다고 하니 지구인이랑 똑같은 몸을 가진 건 아니지만 어쨋거나
뇌는 무시하고, 재미있게도 인간의 몸을 가지는 바람에 그들은 인간의 마음까지도 갖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논리적으로는 이해를 못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감정들을 다 느껴서 당황하곤
한다. 이를테면 얄밉기 그지없는 행동만 해대는 딕의 꼴을 보면서도 딕이 다리를 기브스하고 있다는
사실만 들이대면 가슴한켠이 결려서 어쩔 수 없이 있는 수발 없는 수발 다 들어주는 섈리의
당혹감. 아니, 이 사람들도 동양의학을 공부한게 아닐까? 어떻게 몸에서 마음을 나온다는 사실을
이렇게 실감나게 끝내주는 코메디로 만들 수 있는 걸까?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이 재미난 것은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제작 총지휘를 하는 두 사람 보니 터너
Bonnie Turner, 테리 터너Terry Turner의 위력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줄줄이 나오는 막강한
위트와 매끄러운 강의장면을 볼 때, 아마도 한 사람은 문화인류학을, 또 한 사람은 물리학을
전공한 게 아닐까 싶다. 전체적인 유머의 구성 자체가 인간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알 수 없는, 더
없이 인간적인 불합리와 치사함, 소심함 등 '인간적인 것들'을 인간이 아닌 외계인들과 벌어지는
차이를 통해, 또 외계인들이 인간을 흉내내다 보니 생기는 오버, 과장을 통해 희화화하는 것이다.
흉내내기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과장과 오버에 따라서 이 외계인들은 인간보다 훨씬
더 비굴해지기도 하고 휠씬 더 능구렁이가 되기도 하고 훨씬 더 이기적이고 대책없는 남성우월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처음엔 왜 지구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왜 남자는 그렇게 여자를
쫓아다니며 여자는 왜 그리 남자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는지를 이해를 못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혹은 다들 그러기에
튀지 않기 위해서 인간들이 하는 짓을 따라하는 것이다.
지구에 도착한 그들이 처음으로 인간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거짓말'이다. ^^; 도무지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던 그들은 인간들이 사는 방식을 익혀감에 따라 능구렁이 같은 거짓말 도사들이
되어간다. '흉내내기'라는 방식을 통해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평소 내가 외치던 '우리는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멋진 모습을 따라배우는 것이다' 라는 인간지성의 형성과정과 매우 흡사
하여 볼 때마다 흡족하기 그지 없었다
그중에서도 섈리가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정말이지 시즌 1의 압권이라고 할만하다. 아마도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명제를 이보다 더 잘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은 없지 않을까 한다.
섈리는 본래 군인으로서 '군인정신'으로 단련된 단순한 성격이라 쫙 빠진 8등신 미인의
몸을 입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엔 전혀 개념이 없어 좌충우돌한다. 지구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섈리는 데이트란 걸 난생 처음 하게 되고, 황당무계한 매너로 남자를 놀래키다가 헤어지면서
'전화할께요~' 던진 남자의 한 마디에 집착하여 집에 돌아오자 마자 전화기 앞에 붙어 장장 3일간을
전화를 기다린다. 자신의 그 이유없는 집착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머리를 쥐어뜯던 섈리는 까페에
가서 다른 여자들과 대화를 하다말고 깨달음을 얻으니, 바로 '난 여자네, 쟤들은 남자고!' 하는
진리였다. ^^;;;;;;
그후 섈리의 깨달음은 점차 업그레이드를 계속하여 '아부의 말로 남자를 이용해먹는 법', '터프하게
꼬셔서 갖고 놀다 차는 법' 등 여러가지를 익히게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샐리의 대사는 이것이다.
어느날, 섈리는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선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딕한테 말한다
"땀구멍을 막으니 이렇게 자신감이 넘칠 줄은 몰랐어요."
인간이 숨쉬고 살아가는 생명인 이상 땀구멍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지구촌의 이상적인 미의
기준은 땀구멍 하나 없고 땀 한 방을 흘리지 않아 매끈하고 보송보송한 피부다. 거참, 땀흘려
일하는 여자는 여자가 아닌가? 투덜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은 그런 '인간적
미감'에 반기를 들고나서서 자기만 힘빠지게 비판하다 지치는 길로는 가지 않는다. 대신, 인간적
가치관에 '솔직과다흡수'된 섈리를 통해 아주 즐겁게 야려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상당히 남성우월주의적인 태도와 발언들을 일삼는 딕이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는
것도 정말이지 고도의 전략이라고 할만하다. 겉으로는 적당히 감추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실은
그럴 인각적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지만) 딕의 행동은 하나도 위선적인 데가 없다. 솔직함의
미덕이라는 것이 이 외계인들의 머리 뒤로 동그란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에, 실수와 오버, 착각투성이인
그들이 더없이 귀엽게 보이는 것이다.
외계인들의 치수에 맞지 않는 지구인의 옷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때, 지구인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입고 있는 옷이 보편타당 유일무이한 옷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뒤집어보면, 정말은 아주 우스꽝스럽고 바보같은 불합리로 짜여진 광대옷일 수도 있다.
누구를 위한 공연인지 생각지도 못한 채, 우리는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남들 하는 말을 따라한다.
솔로몬 가족은 그러나 우리의 옷을 벗겨주지는 않는다. 아주 예의바르게, 거울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 주의 추천 도서 : 베르그송 <웃음> (세계사) ^^;
200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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