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와호장룡과 동양 신드롬
back to noculture
요즘 미국에서 비평가와 관객이 동시에 환호하는, 별나게 인기좋은 와호장룡 열기가 계속되어 2001년 아카데미상에 10개 부문이나 후보에 오른 것을 보면, 확실히 이안 감독의 시대가 드디어 열리려나 보다.
[음식남녀]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안 감독은 그전엔 가족과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동성애자의 이야기 [결혼피로연]을 만들었고, 후엔 순서양배우들과 함께 빅토리아조 영국 시대물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만들더니 70년대 미국가정의 붕괴? 고난을 그린 [아이스 스톰], 미국의 남북전쟁기로 가서 [라이드 위드 데블], 이번엔 주윤발과 양자경과 함께 [와호장룡]까지, 전연 상관없어 보이는 갖가지 영화들을, 각각이 아주 뛰어나고 재미나게 만들고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안 감독은 얘기하기를,
베스킨라빈스
에서 가지가지 맛들을 다 먹어보듯이 여러가지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의 솜씨에 아주 만족스러운 편이다. 난 [라이드 위드 데블]만 좀 심심했고, 나머지 영화들은 다 아주 재밌게 봤다.
[와호장룡]은 익히 알려진 대로, 여러 가지 점에서 요즘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역시 가장 빼어난 것은 춤보다도 아름다운 액션씬으로, 발레를 전공한 두 여자의 강하고 아름다운 액션에는, 이런거 처음 본 서양인들 뿐만 아니라 늘상 홍콩영화로 시간도 때우고 재미도 보는 일반적인 동아시아 관객마저 그만 엎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관에서 볼 때 난 한가지를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쩌다 사정이 그렇게 되다보니, 개봉 첫주에 가지 못하고 2주째인가 그 뒤에 가게 된 것이다. 그 바람에 방만한 자세로 놀러온 관객들이 숫적으로 많아서인지, 그 쇼킹한 '말도 안 되는' 피아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액션장면이 왠만큼 나온 다음에는 웃는 것도 잊고 입 딱 벌리고 압도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웃고 있는 둔한 인간들이 있어 관람의 재미가 많이 흩어졌다. 아마도 미국에서 본 사람들은 이런 방해가 없어 별무리 없이 뻑가지들 않았을까 싶다.
홍콩무협영화의 과장에 익숙해진 동아시아의 관객들이 이 기도 안 찬 과장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액션을 그대로 '숭고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당연한 순서로 먼저 어이가 없어 하고, 허허 웃다가 보면 그 긴박하고도 유장한 호흡의 박력과 호쾌함에 전염이 되어 마음을 빼앗기는 경지에 이르르는 것이다.
아마도 무협영화의 사전 훈련이 안 되어있는 서양인들이라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나온 액션과는 그 차원이 다른 몸의 운용, 길고 빼어난 흐름과 스케일, 특히 다리와 발에 역점을 둔 격투는 성룡이나 이연걸을 볼 때마다 늘 감탄하는 것이지만 서양의 액션영화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신기다.
서양인들은 무슨 싸움을 끝에 가면 꼭 총 버리고 완력으로만 싸워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듯한데, 이때 몸싸움의 중점은 어디까지나 주먹에 놓여진다. 그래서 여자들이 늘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 같다. 이런 관습이 앞으로는 바뀔지도 모르지만. 오우삼 감독이 만든 [미션 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가 보여주는 발 액션은 매우 멋있었는데, 또한 매우 동양틱하다.
그래서, 난 아무래도 이번 아카데미에서 [와호장룡]이 감독상은 물론, 작품상까지 다 쓸어버릴지도 모를것 같은, 괜한 예감이 든다.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녀왔던 '영어권 영화 제일주의'도, 무시될 수 있을 만한 후보진이니 더욱 그렇다. [와호장룡]을 놔두고 [글래디에이터]한테 작품상 주면 그건 좀 심할거다. 게다가, 아카데미의 허영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이 간 후, 그 다음 지적인 무대를 주무를 트렌드는 아무래도 동양이 될 거라고 난 예측하고 있는데, 그 대중적인 신호탄을 [와호장룡]이 올리는 것을 아카데미가 한손 거들어 줄 수도 있다고 본다.
동양의 바람은 이미 그곳에서 여러번 불었다. 서양인들은 예전부터 식민지를 절단내면서 그곳의 문화, 문명, 예술작품, 많은 것들을 자기네 속에 이식해간 전력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나 인도나, 중국, 등등등.
일본인들은 물랭 루주 그림을 그린 로트렉이나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의 판화(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을 늘 의식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일본의 판화는 정식 미술품으로 유럽에 영향을 준것이 아니다. 도자기와 같은, 일본에서 들여온 상품을 포장한 종이가 판화지였던 것이다. 요즘 같았으면 신문지가 되었을텐데.
뭐 이건 어찌보면 임진왜란 때 조선의 가난한 농가에 굴러다니던 밥그릇이 왜국에 건너가서는 자기 예술품이 되었다고 한다, 등과 비슷한 얘기다.
현대 서구사회에 분 불교의 바람, 60년대말 히피운동을 추동했던 정신적인 것, 동양적인 가치의 흐름은 그후의 새로운 과학의 운동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나뉘어 따로 돌아가 버릇하는 서구과학이 스스로 반성한 결과물이 그 당시 (혹은 조금 후에) 나온 프리고진의 카오스에서부터의 질서론, 린 마굴리스의 공진화론, 에리히 얀치의 자기조직하는 우주 이론 등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는 나의 유추이며, 역사적 연구가 부족하다.
만약 이미 불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앞으로 올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동양의 유행이 어떤 인과관계를 갖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별로 답할 말이 없다. 그저 직관적인 속단일뿐, 아직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보다 동양이 더 본격적인 것임은 확실하다. 서양인들이 자기자신을 반성하는 행위로서 말이다.
앞으론 동양에도 동양이 유행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젠 양식 인테리어가 유행하는 걸 보면, 거의 확신이 된다. 이미 한국사회를 한번 들었다 놓은 김용옥의 노자 신드롬을 보더라도 역시 이미 전부터 동양은 주무대로 올라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즘엔 그 이슈가 김용옥 끌어내리기로 변질된 감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 유치한 작당들을 하고 난 뒤에라도 좀 진지한 토론이 되면 좋으련만. 넓게, 제대로 공부를 한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문제인 듯하다.
동양인이면서도 서양식의 사고방식으로 삶의 굵은 양식들이 기본 포맷이 되어있는 우리들은, 동양정신이나 동양학을 별거 아닌, 다 아는 것처럼 쉽게 생각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교양수준은 의문스럽다.
물론 보르헤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같은 난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준은 몰라도 장자의 '내가 나빈지, 나비가 난지'의 우화는 기본으로 간직하고 있으니만큼, 직관적인 면에서는 좀더 유리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직관만으론 전체 학문과 문화를 위한 토양을 쌓을 수가 없다. 그점에서 지금 한국은 좀 비관적이다.
서양인들이 그 열심히 공부하는 쪽에서는 얼마만한 정열로 자기네 철학과 문화의 바탕 위에서 동양의 것들을 탐구하고 합치를 도모하는지 모르는 채, 우리는 아주 무심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만약 카오스의 언저리를 돌고있는 자연과학이 동양철학과 직통으로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나라고 뭐 동양철학을 공부한게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인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사상의 지평을 열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있다.
2001.3.9
**참고하면 좋을 책**
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통나무
에리히 얀치 [자기조직하는 우주] 범양사
프리고진/스텐저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고려원
린 마굴리스/도리언 세이건 [마이크로 코스모스] 범양사
혹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지호
[섹스란 무엇인가?] 지호
후기 1
- 흠, 골든글로브와 감독협회에서 감독상을 받았지만 아카데미는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리안의 시대는 이미 열리느니.. 그 기세가 지금 잠시 주춤하여도.. 긴호흡으로 잘 나갈것이라 생각함.
후기 2
이 글을 쓸 당시엔 증거가 너무 없어서 추측만 남발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2003년)은 (한국어로 번역도 되어있는) 여러 책들에서 확인을 한 상태다. 게으른 탓에 추측남발 형태로 글을 쓴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책들을 읽어보시압.
back to no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