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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신춘문예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에 응모했다. 나이트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에 대한 본평 빌리지진실보다더유효한허구의상극과 미셀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선샤인에 대한 단평 이터널선샤인티없이맑지않아도좋다를 써냈다.
둘다 2004년 개봉작이니 당선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고 하지만... 당선작 본평을 보니 별로 마음이 좋지 않다. 단평은 화려하니 그런대로 잘 썼는데, 본평은 심사위원들도 부족함을 인정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좀 못 썼다. 문장도 영 부실하고 작품을 보는 시각도 참신하지를 못 하고 평이하고 지루하다. '오로라 공주'는 못 봤으니 모르겠고, 친절한금자씨와 박찬욱 감독에 대해서는 그렇다.
심사위원들은 앞으로 영화저널에 글 쓸 일을 생각해서 단평을 중심으로 뽑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공고를 낼 때부터 단평이 단지 곁다리가 아니라 주요 심사기준임을 친절하게 알려주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단평도 제출하라'가 아닌 '본평 단평 이렇게 내라' 하는 병렬식으로 내줬어야 하는게 아닌가? 심히 심사위원들 맘대로같다.
그리고 내친 김에 이전 당선작들의 제목을 일별했는데 근래에는 모조리 한국 영화 비평이었다. '한국 영화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라면 별로 안 좋은 생각이다. 한국 영화가 수준이 높아지려면 비평이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 말은 맞지만 비평가가 감독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비평이 누군가의 수준을 높여줄 수 있다면 그 누구는 바로 관객이다. 한국영화 관객이 수준이 높아져줘야, 무한한 관용성 대신에 까다로운 입맛을 가져줘야 한국 영화가 수준이 높아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를 부지런히 씹어주어야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못난 영화를 비판하는 글보다는 훌륭한 영화가 잘난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더 쓰기도 어렵고 독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한국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간에 '훌륭한 영화들'에 대한 판단력과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지, 공연히 한국 영화만 밀어주면서 섣부른 자화자찬에 취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없단 말이다.
한동안 강한섭 교수와 씨네21이 한국영화 밀어주기를 열심히 선도했다. (나는 전혀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키워주기 위해서 지나친 관심과 칭찬을 줄 필요가 있었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타임이 아니다. 한국영화는 지나치게 비대하고 상업화되었으며 다양성의 배양도, 그렇다고 솜씨좋은 장인의 탁월한 경지도 기대할 수 없는 어정쩡한 괴물이 되었다. 그저 관객의 무한한 관용성만이 그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수입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코멘트 20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