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화장비신세대의또다른선택

UserPreferences

개인화장비란 문화평론가 주상우가 처음 만든 용어로, 산업화 사회에서 개인화된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데 보탬이 되는 장비로서 주로 신세대가 이전과 다른 '라이프 스타일'의 변별점을 뚜렷이하기 위해 애용하는 이동음악장비, 이동통신장비 등을 말한다. 요즘엔 여기에 디지털 카메라가 추가되었고 점점 음악장비와 통신장비, 카메라가 합체되는 등 개인화장비가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화한 후 통합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은 기존의 가족, 친족, 마을 등의 공동체에서 개인을 독립시키면서 또한 독립한 개인을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으로서 다시 연결한다는 데에 있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으로는 회사, 학교, 대도시, 국가, 지구촌, 동호회 및 다음까페 회원 등이 있다. 이러한 개인화와 재연결을 위해서는 철도 및 국가기간시설 외에도 현대적인 장비가 필요한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재 개인이 처한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시공간의 사람과 연결해주는 것이다. 현대화 초기에는 책이나 신문이 주로 그런 일을 했고 후엔 전화, 그리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요즘엔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이 현대적인 장비들은 넓게 보자면 모두 개인화 장비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신세대의 필수품'인 개인화 장비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을 더 만족해야 한다.

휴대가 가능하다, 자랑하기 쉽다

휴대성은 개인화장비의 아주 중요한 특질이다. 휴대성은 그 장비의 유용성만을 배가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다는 점도 아주 중요하다. 어떤 사람에겐 유용성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마치 옷이란 것이 추위를 막아주고 몸을 보호해주는 기본 기능보다는 섹시하게 보인다, 혹은 나만의 멋을 표출한다와 같은 추가 기능이 더 중요한 지경이 된 것과 비슷하다. 쉽게 자랑할 수 있기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쉬우며, 자기정체성에 대한 불확신으로 꽉 찬 젊은이들이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간단한 방법으로 장비를 구입하기를 열망하므로 상업적으로도 금광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반항하는 젊음은 기성세대와 다른 자신만의 표지를 가지는데, 그 첫째 싸인은 언제나 옷차림이다. 그런데 그 옆에 낀 장비는 기술 발전에 따라 달라져서 문고판 소설이 될 때도 있지만 통기타가 되기도 하며, 워크맨이나 커다란 헤드폰,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화 장비는 곧 신세대 장비와 겹치게 된다.

이동 음악 장비 vs 이동 통신 장비

유전자복제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겐 지난 시절의 향수로 느껴지는 레코드판과 턴테이블도 50, 6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훌륭한 개인화 장비였다. 이런 장비를 삼으로써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자기네끼리 댄스파티를 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혁신이었다. 이에 비하면 문고판 소설을 살포시 들고 문학소녀역에 도취했던 우리네 부모세대들은 왠지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기네끼리 또래문화를 형성하고 낭만과 젊음을 만끽하는 데에는 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기술발달에 따라 무거운 각종 현대화 장비들이 점차로 휴대가능한 개인화 장비로 바뀌면서 몇천년을 장악했던 책의 위치는 많이 밀려나서 이동음악 장비로, 다시 이동통신 장비로 주력은 이동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극적인 사건은 80년대에 소니가 워크맨으로 전세계를 정복한 것으로, 이로써 판은 완전히 이동음악장비로 넘어갔다. 음악을 쉽사리 휴대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장점이었지만 그못지 않게 패셔너블한 이어폰과 리모콘, 헤드폰의 자랑과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90년대 들어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판세는 다시 무거운 장비쪽으로 기울었지만, 역시 휴대가 불가능하면 자랑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트북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삐삐가 유행했고, 더 편리하고 값비싼 휴대폰이 등장해 드디어 이동통신 장비로 대세가 넘어갔다.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 환경의 보급과 함께 음반을 사는 게 아니라 다운받아 듣는 풍토가 확산되면서 앞으로 점점 더 이동음악 장비는 독자성을 잃고 이동통신 장비로 편입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휴대폰으로 전화와 컴퓨터, 수첩, 음악장비, 카메라, 캠코더가 통합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빨리 과열되고 쉽게 닳아버리는 배터리라고 한다.)

방어용장비 vs 공격용? 장비

개인화 장비의 부가적인 특징은 동시에 방어용 장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어용 장비는 인구조밀한 도시생활에서 개인의 복된 삶을 위해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보조 장비를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청각적으로는 방어용 워크맨, 후각적으로는 방어용 향수가 있고 대인 관계에서는 신문, 책, 휴대폰 등이 있다. 썬글라스도 때론 그렇다. 썬글라스와 헤드폰으로 중무장한 사람에겐 도에 대해 아십니까도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 것이다.

지하철에 앉아서 혹은 거리를 거닐 때 자기와 같은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고 방해받지 않기를 바라며 저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 통신하기만을 열망하는 것이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개인화 장비는 곧 방어용 장비가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남을 방해하는 공격용? 장비가 될 수도 있다. 요즘 휴대폰 사용자들이 제조하는 소음공해는 상당히 심각하다. 기술이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화를 너무 빨리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세대라면 개인화 장비를 제대로 쓸 줄 안다. 우리가 진짜 신세대라면 기술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지 않고 기술을 선도하는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남승희

캠퍼스스타일 트렌드스토리 2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