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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라는 것 -‘데이’들에 대한 단상

해마다 2월 14일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발렌타인데이, 이 날은 단순히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 아니다. 한 해의 모든 ‘데이’들의 시작을 예고하는 날인 것이다. 2월 14일의 원조‘데이’에서 파생되었지만 이젠 거의 동급으로 느껴지는 화이트데이부터 해서, 비참한 싱글들을 확인사살하기 위한 블랙데이, 그외 닭살의 궁극을 향해 가기위한 옐로우데이, 로즈데이, 링데이 등등 수많은 14일들이 자신을 주목하기를 바라며 한해를 주욱 포진하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 ‘데이’들이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상혼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성토를 하기도 한다. 하긴, 14일과는 아무 상관없는 11월 11일까지 빼빼로데이라고 ‘데이’에 편입한 걸 보면 꼭 순수한 연애지상주의의 매뉴얼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특수는 정말 장난 아니다. see also 냉소주의의함정

하지만, 난 대중이 이유없이 ‘동원된다’는 걸 믿지 않는다. 이유없이 욕망이 ‘조작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들이 이렇게 번성하게 된건 달마다 14일이라는 아무 일 없던 평일이 쉽게 동원될 수 있다는 장점과 화이트에서 블랙, 옐로우 등으로 또 초콜렛에서 사탕, 장미 등으로 쉽게 파생증식해갈 수 있는 ‘데이’의 막강한 생산력, 한국 젊은이들의 막강한 또래문화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 기본 동인을 파고들어간다면 역시 연애의 중심엔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연애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선물이라는 언명에는 물론 많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연애의 핵을 이루는 것은 성적인 끌림(쉽게 말해 ‘파지직’이라고 한다.)이라고도 볼 수 있고 오고가는 정, 쌓아온 인간관계일수도 있다. 모든 것이 다른 개체가 맞물리는 극적인 만남이라고 해도 좋다. 내가 여기에서 진짜는 ‘선물’이라고 단정적인 어투를 써보는 것은 남녀 간의 만남, 혹은 동성애도 상관될 지 모르니 연애상대자와의 만남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낭비’를 주조로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낭비’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물학적인 원인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암수컷이 만나 짝을 이루고 2세를 남기는 것은 동물 개체로 보자면 아주 극심한 낭비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 한쪽이 죽음에 이르는 일도 허다하니까. 여기에서 한 단계 승화한 인간 남녀의 만남 역시 ‘낭비’라는 구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연애는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시간, 물질과 돈을 부어넣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다른 관계들의 담담함에 비하면 어쩌면 ‘희생’이라고 할 만한 이 낭비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또 그럼으로써 기쁨을 얻는 특수한 관계인 것이다. 나를 위해 치른 상대의 낭비에 감격하는 것, 또 상대를 위해 치른 나의 낭비로 충족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물론 연애관계 외에도 인간의 행태는 역시 낭비로 이해될 수 있고, 선물의 의미심장함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대개 그 특별함이 남다르고 또 얘깃거리가 되는 것은 연애관계가 된다.)

그래서 선물은 연애의 중심에 놓인다. 주고받은 수많은 시간들, 말들, 감정들은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물은 바로 어떤 시간 어떤 장소 어떤 이벤트와 즉각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쉽게 손으로 만질 수 있기도 하다. 선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낭비의 확인, 사랑의 확인이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그 낭비는 더욱 소중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전보다 더 힘들게 벌어서, 아주 크게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데이’들은 계속 불어나지만 한 해라는 한정을 지니고 연애의 낭비 역시 두 사람의 능력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사람의 감정은 받는 것에는 익숙해지고 끊임없이 주는 손은 결국 지치는 법이라 여기에서 연애의 붕괴위험이 생긴다. 이것을 무사히 잘 조율하면 관계는 안정화된다. 그러나, 공인된 안정시스템인 결혼에 이르자면, 연애의 본령인 ‘서로에 대한 숭고한 낭비’가 거의 극적인 형태를 상실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하는것 같다. 사실 낭비로 치자면 2세를 키우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행하는 결혼만한 낭비가 없지만. 여기엔 더 이상 ‘선물’이 없고, ‘생활’만이 있으니까.

'선물’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혹은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 생겨나는 하나의 순간에 표지를 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것은 굳이 따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를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더 이상 모닥불을 둘러싸고 춤을 추지 않고, 더 이상 모두가 한 신을 향해 엎드려 황홀경을 맛보지 않는 현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의식儀式을, 이벤트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편한 구실로 ‘데이’들을 끌어들인다. 기억하기 위해, 확인하기 위해, 사랑을 좀더 영속적인 것으로 망상하기 위해.

--남승희

캠퍼스스타일 우먼칼럼 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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