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내음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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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내 음악 이야기 2000.5.22. 비누도둑 남승희

라디오헤드의 노래다. 아무나 기타를 칠 수 있다네! 이 노래가 기타를 처음 잡은 나에겐 큰 힘이 되곤 했다. 1집 <pablo honey>에 들어있는 노래인데, 난 아직도 그 시절의 라디오헤드가 젤 좋다. 내가 최고로 뽑는 앨범도 정규가 아니고 1집과 2집 사이에 실험적으로 낸 <my iron lung>이다.(정말로 죽여주는 곡들만 줄줄이 들었다. 특히 the trickster나 lewis는 마치 70년대 산울림 사운드가 연상되는 희안한 곡들인데, 사람 미치게 만든다)

난 4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음악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그때, 96년은 니르바나의 열풍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불어 얼터, 펑크 밴드들이 막 솟아나고 있던 시기였고, 난 8미리 소니 캠코더를 휘두르며 밴드 빵을 쫓아다니며 라이브를 찍어주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이 자료는 동영상으로 만들었는데 곧 공개할 생각이다) 지금은 모르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굉장히 괜찮은 밴드였다. 노래가 좋고, 가사도 또 깬다. 국문과 출신들이라 그런지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나오고. ^^;

카메라를 든 나는 기타를 들고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 부러웠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차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옛날, 너무너무 기타를 잘 치는 한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기타 배울려면 어떻게 해야돼요?” “응, 맨날맨날 세끼 라면만 먹고 죙일 6년만 치면 돼.” -.-;;;; 나는 그런 고행을 겪느니 그냥 즐겁고 살고 말겠다, 고 생각을 했더랬다. ^^;

그러나 어느날, “어, 기타 그렇게 안 어려운데..” 하는 빵 기타리스트의 한 마디에 난 허거걱... 0.0 -> ㅠ.ㅠ; 드디어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콜트 베스타를 빌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pc통신에서 기타교습을 찾아봤는데, 날 가르친 선생?은 좀 자격미달이었는지 한달 기한으로 시작했는데 6번을 가고나니까 더 이상 할게 없다며 ‘하산하라’고 했다. -.-;;; 난 집에서 열심히 코드를 긁었는데 연습교재에 달린 노래는 좀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좀 어려웠다. 그래서 제일 쉬운 A, D, G 따위를 가지고 나름대로 순서를 잡으면서 연습을 했다. 그런데, 거기에 맞춰 노래가 떠오르는 것이다.

난 그렇게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맨처음에 만든건 그냥 가요같은, 밍밍한 노래였지만 코드전개는 코카콜라와 비슷해서 나름대로는 만족?했었다. ^^;; 그러다가 점점 재주가 늘면서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내가 뭐라고 했니’와 ‘사람들은 시계를 차’ 등이 나왔다. 그래서 실은 지금도 기타를 잘 못 친다. 리듬기타나마, 잘 해보자고 다짐해보곤 하지만 썩 나아지지를 않는다. ^^;;; 기타리스트로서는 아직도 초보일 뿐이지만,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충실하기 그지없는 자부심이 그때나 지금이나 짱짱하기 때문에, 기타에 노력을 종최 안 하는 것이다. (문제다, 문제....-.-;;;)

난 지금도 주로 집에서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 밖에서 멜로디나 등등 생각나는 때도 있지만, 제때 삐삐에 녹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건 그저 흥얼흥얼, 흘러가 버린다. 거리를 지날 때, 지하철을 탈 때, 난 거의 늘 뭔가를 흥얼거리고 있다. 주로 옛날에 들었던 클래식 음악 한 토막을 가지고 일루절루 변주를 하며 놀고 있다. 아니면 전에 화실 선생님이 틀어대던 ‘이탈리아 뽕짝’(칸쪼네를 난 이렇게 부르곤 한다)이나 팝 언저리의 노래들. 한마디로 최대한 통속적이고 락스피릿과는 관계없는? 노래들이다. 요샌 그동안 너무너무 좋아진 사라본느를 따라가느라 애써보기도 한다. (재즈는 어렵지만 무진장한 감흥이 있다)

이어폰이 없는 아이

나에게 노래는 늘상 즐거운 것이다. 난 절대 이어폰을 꽂고 다니지 않는다. 음악은 오디오로 공간을 채워서 들어야지, 귀에다 갖다 대고 괴롭히는 거 난 좋아하지 않는다. 중고딩 시절 공부할 때 음악을 안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 들어도, 절대 가사가 있는 음악은 듣지 않았다. 그건, 난 말을 들으면 그만 그 말에 집중을 해버리고 마는 편집증적인? ^^;; 면이 있는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암튼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된 노래를 그냥 배경음악으로 흘려버릴 수 있는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그래서 난 클래식을 좋아했다. kbs fm 93.1 mhz에서는 절대 광고가 나오지 않는다. 아나운서가 주저리주저리 잡담을 떠드는 일도 없다. 그리고 가사도 없기 일쑤고 나와도 순 모르는 나라 말이다. ^^; 그래서 세상과 동떨어져 열심히 들었다.

중고딩 시절 남들이 열광하는 가수들에 한 번도 열광을 안 한 것은 물론 ‘고고한 척하는’ 허영심 때문이긴 할 것이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나 처음 클래식을 접하려는 사람들에겐 많건 적건 다 적당한 허영심이 있기 마련이다. 난 아마 초딩때 베르디에 열광한 파장으로 클래식을 들은거 같다. 처음엔 오페라나 관현악곡 뭐 그런게 좋은거 같더니 취향이 점점 고상해져서? 감정과잉인 낭만파는(특히 대규모 관현악이나 말러 같은 오버만빵의 감정) 도무지 참을 수 없게 되고 오로지 모짜르트, 바하, 소규모 곡들, 그러니까 맺힌 데 하나 없고 맑고 투명한 소규모 바로크음악이 젤 좋았다. (그래서 실은 난 바로크메탈이 우스워 보였다. 대위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하가 건반용으로 만들어 논 걸 기타로 해내는 묘기를 보이는 것뿐인데 바로크란 이름을 달다니 우습다.)

난 좀 심하게 감정이입을 잘 하는 사람이다. ^^; 어렸을 때부터 양심에 찔리는 일이 있느면 가슴팍이 뻐근하게 아팠다. (진짜다) 티비에 누가 나와서 노래를 하면 그 목소리가 그대로 나에게 들어온다. 그래서 노래 못하는 가수가 빽빽 소리지르면 내 목마저 아프다. (이것도 진짜다) 그래서 난 노래 못하는 가수나 말 못하는 vj, mc들을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무리 이쁘고 잘 생겨도 절대, 용납 못한다. 끼친 해악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말 한국 케이블 티비 vj들은 대개 발성 꽝이다. 요새 뮤직채널보다는 패션쇼를 더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거 같다. 전보다 볼 만한, 내 가슴을 찌르는 뮤직비디오가 더 없기도 하지만. 반면, 좋은 패션쇼는 열이면 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음악이 좋다.

난 늘 흥얼거리고 있다. 내가 알던 곡을 꺼내 변주를 하다 보면 잘 생각이 안 나서 바뀌기도 하고, 다른 노래로 옮겨가기도 한다. 원곡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또 새로운 곡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곡들이 하루에도 여러개가 생기는 것이다. (외출만 하면 ^^;) 아마 이걸 내거라고 이름붙여서 내놓으면 그게 아마 최고의 표절곡이 될 것이다.

표절 암행어사를 하면 마패에 말이 아홉마리쯤?

내가 표절문제에 민감한것도 이유가 있다. 언제나 난 표절과 창작의 경계선상에서 흥얼거리고 있으니까. 아마 악상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표절곡을 잡아내는 능력은 98 퍼센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맨날 다루고 있기 때문에. ^^;; 그래도, 절대 스트레스는 안 받는다. 그 시간은 언제나 ‘연습경기’로 삼고 있으니까. 되려 기타잡고 노래 만들어놓고는 이거 혹시 뭐랑 안 닮았나 검색하는 과정이 더 스트레스다.

나의 두뇌는 이상하게 생겨서 명사는 잘 까먹지만 (특히 고유명사) ‘바로 그것임’을 알아보는 능력은 비상하다. 즉, 배우 이름은 모르지만 저 배우 어디서 본 배우다는 정확하게 검색해내는 것이다. 음악도 어떤 노랜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미 존재한 노래에 나온 부분과 같다, 혹은 비슷하다 하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잡아낸다. 이건 좀 심해서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과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의 짧은 공통부분에 대해서도 ‘으읏!’ 하던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은 좀 심했던 거 같고, 지금은 사회적으로 적절한 균형감각을 찾아 표절/인용/비슷함/다름을 변별하고 있다.

97년 난생 처음으로 공연이란걸 하면서 신나고 즐겁던 시절 만든 ‘감각’은 굉장히 맘에 드는 노래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고치고 고치고 하여 만든 노래다. 기본 포맷은 이미 서있었지만, 멜로디와 리듬이 맘에 안들어 아파트 옆의 찻길을 밤마다 오가며 노래 연습을 하면서 수많은 이종본?!을 만들었다. ^^; 중간에, 우연히 듣게된 바네사 빠라디의 노래랑 좀 닮은거 같아서, 무지 억울해하며(왜 나중에 나와서 이 고생이야..) 핵심 가락을 폐기한 일이 있다. 다행히도, 덕분에 휠씬 멋진, 완벽한 멜로디를 만들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인지도 모른다.

외롭고 웃긴 밴드

밴드를 하면서는 짜릿하고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힘들고 괴로운 일도 많았다. 나에게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건 담배연기 빼곡한 클럽에서 공연해야 되는 일이다. 처음엔 좀 덜하고 갈수록 좀더 심해진 거긴 하나, 내가 원래 그렇게 강한 목이 아닌데다가 ‘청아한’ ^^;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별수없이 남들 공연할 때 진득하게 앉아서 보질 못하고 끊임없이 밖에 나가 빌빌대는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청아’라니;;; 우~읍 할지 모르지만 암튼 목소리가 전혀 안 허스키한데다가 비누도둑 창법이란게, 복식호흡을 해서 만든 두성에 약간의 디스트를 거는 것이라, 공명을 충분히 일으키기 위해서는 목이 깨끗해야 한다.

(크렌베리즈 따라하다 익힌 것인데, 역시 크렌베리즈를 응용한 주주클럽의 보컬 주다인씨는 매운 것도 먹지 않는단 얘길 들었었다. 맞는 얘기다. 성악하는 사람들이 몸아끼는 것은 정말 대단한데, 두성을 쓰는 같은 입장이지만 락커는 참 불쌍하다.)

한국에서 특히 언더에서 담배연기를 못 참으면 참 어디 갈 데가 없는 신센데, 그래서 많은 사람을 사귀지 못하기도 한다. 술먹는 자리는 늘 담배피니까. 이젠 그냥 할 수 없지, 내 운명이려니 한다. 대신 혼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요즘 세상은 네트를 통해서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으니 것도 좋지 않은가.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건 낮에 연습을 한 다음 밤에 공연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세상을 구경시켜주는 책과 인터넷은 모두 집에 있다. 공기가 너무 나빠서 pc방도 갈 수 없고 오락실도 갈 수 없다. 이 정도 되면 중증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기 목소리를 지키는 건 보컬로서 기본 소양이다. (실은... 그렇다, 중증이다. --;; 목이 약한건 한국인으로서나 보컬로서나 별로 안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대갠 별수없이 바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도 무시하고 또 흥얼거린다. ^^;

아무런 의미있는 일도 뾰족한 오락도 못하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건 못할 짓이다. 그렇다고 편하게 쉬는 것도 아니고. 나의 생은 그렇게 마구 구겨버려도 좋을 시시껍절한 것은 아니다. 굉장히 많은 세상들이 내가 기웃거려주길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고 있다. 나는 지금 음악을 하고 비평글을 쓰고 두 가지 활동만을 하고 있지만, 언제가는, 즉 내가 돈을 충분히 벌게 되면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나에겐 수많은 감각적 능력이 있다. 그걸 다 발휘하고 개발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다. 그리고 당장, 내가 누릴 수 있는 자극과 즐거움들에서 떨어져있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전엔 멤버가 빠져서, 등의 이유로 공연을 쉬게 되면 은근히 기쁘기도 했었다. ^^;;; 보컬이 할 말은 아니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그렇다. 하고싶은 거 하는 건 좋지만, 거기에 따라붙는 넘 괴로운 것들은 싫다. 난 쉬는 것이 좋고, 빈둥거리는게 좋다. 편안함과 여유를 가져야 이에 따르는 권태!가 나타나고, 그래야 또 심심치 않기위해 진짜 재미난 것, 새로운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누도둑을 만든 것도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는데, 공연하는 것이 넘 짜릿하고 재미난 것이다. 내가 만든 노래가 좋다고 칭찬받는데 그만 익숙해지고 말았다. ^^;; 이것도 마약이다. 그래서 계속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데모도 찍고 홈페이지도 만들고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커리어를 쌓기로 된 거다.

그러나 비누도둑은 상당히 ‘의식적으로’ 만든 밴드다. 난 평소 한국 가요계의 1.가창력으로 미는 여가수와 2. 달콤한 걸그룹이라는 이분법밖에 없는 여성보컬의 상황을 무지 끕끕하게 생각했다. 락이라고 하면 무조건 허스키하게 가는 것도 불만이었고. 결정적으로, 내 목소리에 힘줘봤자 그렇게 독특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그래서 여성적이고 맑은 소리로 락을 하면 어떨까, 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도 고운 목소리와 예쁜 멜로디로 하는 펑크를. 부조화의 조화랄까, 말이 되니까. 물론 이건 크렌베리즈라는 성공 케이스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거다. 나뿐만 아니라 현재의 많은 모던락 밴드들이 그 영향 안에 있다고 본다.

희안하게도, 원래 갖고있는 요소들을 끼워맞추다 보니 ‘부조화의 조화’ 내지는 ‘비누도둑의 독특함’이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좋은 멜로디’ 아님 용서를 못하는데다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동시에 중고딩 6년을 불교학교를 다닌 덕에 복식호흡도 할 줄 알고, (^^; 단전호흡은 아직도 못하지만) 클래식의 온갖 복잡한 구성 듣다가 락 들으면 ‘그 정도 복잡함’은 절대 성에 안 차니 차라리 왕단순하게 핵심만 찌르는 것이 좋았다.

비누도둑의 뽀대를 만드는 데는 초대 베이스 신동선씨의 활약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구인광고를 내어 두번째로 만난 베이스였는데, ‘가사가 감동적이에요,’ 하고 아부?를 하길래 전격 의기투합을 했다. ^^;;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비는 기타사운드를 메꾸기 위해 동선씨는 점차 화려한 베이스라인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비누도둑은 높은 음정의 보컬이 중심이 되고 서브라인으로서는 상당히 비중을 차지하는 역동적인 베이스, (스트로크만) 깔짝대는 기타, 단순하면서 약간의 맛갈스런 양념을 치는 드럼으로 이루어진 3인조 밴드가 되었다. 한번은 까페빵에서 공연을 같이하던 허벅지밴드의 안이영로씨가 ‘홍대씬 전체를 통털어 가장 기타소리가 작은 밴드일 것’이라고 얘기한 일이 있는데,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 나는 절대 기타가 압도하려 들지 않는 사운드를 의도한다.

비누도둑은 복고풍 하이브리드다

나의 노래는 어디까지나 70년대 한국 포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난 어려서 엄마가 부엌에 하루종일 틀어놓는 라디오를 들으며 감수성과 인성을 형성하고, 자랐다. 양희은이나 지금은 기억들도 못할 ‘사~랑의 나비소녀!’ 라든가 ^^; 우리집에 제일 높은 곳~ 하는 ‘다락방’, 제목도 모르는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같은 노래가 지금도 좋다. ^^* 내 생각엔, 90년대 후반에 복고풍 패션이 유행하면서 자극받은 내 향수가 스멀스멀 기어나와서 내 음악을 만든게 아닐까 한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 통기타의 담백한 아름다움, 그런 것들을 난 나름대로 계승했다. 비누도둑을 포크로 보는건 좀 말이 안되겠지만, ‘영향받은 자’로서 이 정도면 자랑스런 제자라고 생각한다. ^^; 암튼, 노래를 만드는 것도 기타를 앰프에 꽂지 않고 그냥 통기타처럼 치면서 만든다. 그래서 기타통이 커서 자체 소리가 큰 텔레케스터가 내 맘에 꼭 들었다. ^^;; (더 큰것 도 있지만 내가 들긴 무거워서..)

그 향수를 그대로 담아 만든 노래가 라디오?다. 가사내용도 그런거다. 어린 내가 아주 또렷하게 흡수했고, 또 자라면서 비판하고 멀리했던 라디오. 그 주성분은 노래와 말, 즉 오락과 사회통념이다. 지금도 토크쇼나 교통방송, 아침마당 같은 건 두드러기를 일으키며 싫어하는데, 자기네 추레한 인생을 정당화하기 위한 괜한 두둔과 동조도 싫지만 특히나 한 5분 10분 남의 인생 가지고 수다를 떨고는 금방 잊어버리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그 위선이 제일 싫었다. 별관심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남의 고통과 감정들을 일회용 안주거리 삼고서 버리는 행태들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이런 성격인 바람에 지금도 이러고 살긴 한다. ^^;;

그래도 난 노래만큼은 여전히 좋았는데, 그때 엄마가 뽕짝을 안 틀은게 천만다행이라고 가끔 생각해본다. 난 뽕짝을 싫어한다. 싫어한다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관심이 없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거다. 기본적으로 체념과 한의 정서가 영 싫지만, 어려서 접한 한 뽕짝의 가사가 나에겐 특히나 끔찍했다. ‘... 여자의 숙명이지요오~’ 원 재수없어서, 난 그때부터 모든 뽕짝을 싫어했다. 뭐 항간엔 트로트랑 뽕짝을 구분해서 트로트는 체념과 기타등등이고, 뽕짝은 신나는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나에겐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패배주의’라는 점에서는 같으니까.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너무 많이 접하게 되면 친근해질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우리 엄마아빠는 사는게 바빠서인지 뽕짝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아노학원도 보내주었고, 우리가 클래식 들으니까 은근히 ‘잘 한다’는 분위기여서 우리집은 한참동안 ‘뽕짝 절연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도 사람이라 pizzicato five님이 뽕짝하면 그건 용서하긴 한다. ^^;;)

라디오?를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은 두번째 베이스인 김혁중씨다. 내가 이걸 어떻게 노래를 만들까 생각하는 중에 그만 이상하고 마음을 끄는, 까만 배경에 귀가 한마리?! 있는 앨범자켓을 맞이하고 말았다. 해적방송-라디오 컴필레이션. 난 좀 고민스러웠다. 워낙에 오리지날리티 문제엔 예민해서, 벌써 남이 이렇게 해버린 소재를 다시 다루어도 될 것인가 ;;;;; 내가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한들 먹힐 것인가 ;;;;; 서로 상관없는 기원인데, 뉴튼과 라플라스도 독자적으로 미적분학 개발했는데 상관없지 않을까 ;;;;;; (물론 거의 상관없다) 그러다가 베이스 오디션을 보았는데, 김혁중씨가 복숭아를 다루는 방법이 참 맘에 들었다. 다른건 몰라도, 이쪽(센거 말고 말랑말랑한 노래)으로는 잘 맞을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라디오 기획’을 얘기해주었고, 곧이어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비누도둑 데모에 들어있는 복숭아와 라디오?의 베이스가 김혁중씨 작품인데, 정말 맘에 든다.

난 카피라이트인가봐

난 곡을 만들 때 컨셉부터 만든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컨셉과 동시에 그냥 노래가 다 나와버려서 잘 분간이 안 가는 <빨리 좀 와라> 같은 곡도 있긴 하다. 밴드경력 3년차가 되면선 나도 그 컨셉을 모르겠는 <도둑고양이> 같은 곡을 만들게도 되었다. ^^; 확실히 요샌 ‘아무생각 없이 그냥’도 잘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난 컨셉으로 작업한다. 요건, 작품을 만드는 전과정에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어떤 주제를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자극할까를 연구하는 광고 작업과 비슷한 면이 있다.

마케팅까지는 연구하지 않지만, 어떤 얘기를 하고싶다 하고 미리 가지고 있는 주제가 있으면,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일루절루 생각을 하다가 우연찮게 멜로디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근사한 멜로디와 맞아 떨어지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를 먼저 쓰는 일도 많다. 대강을 작업해 놓고 나중에 노래랑 맞추는 과정에서 고쳐쓰기도 한다.

내가 가장 폭발적으로 양질의 노래를 양산했던 건 비누도둑을 만들기 직전, 한달 정도 가다 깨진(실은 쫓겨났다) 밴드에 합류한 그 날이었다. 그날과 다음날에 걸쳐 <여성비가>와 <밑져야 본전>, 그외에도 지금은 버렸지만 괜찮은 많은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건 참 신나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눈이 나빠 돗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자기 외모에는 별로 자신없던 여자애가 어느날 갑자기 시력교정 수술 하나 받았다고 갑자기 공주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97년 봄에 난 남 앞에서 기타 들고 노래하고, 찬사를 받는 것에 대해 할 수 있군, 하는 자신감이 들어 버렸다. 그때 넘쳐나던 에너지를 주체 못해 비누도둑을 만들게 된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대책없는 허영심이 진정한 예술의 원천이다. ^^;

<여성비가>는 가사가 워낙에 실감나서 다 내 얘기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거 같은데,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다. 내 경험 쪼가리 및 여러가지 가능한 것들을 짜맞추어 만들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여성으로서 갖는 어려움과 그럼에도 욕망이란 주제를 ‘살짝만’ 건드려보고 싶었다. 이렇게 컨셉은 다 한 문장으로 요약이 된다. ^^;; 하루가 시간으로 매여있지 않은 백수의 라이프스타일을 자랑, 부추기는 노래가 <사람들은 시계를 차>다. 그리고 변변찮은 장비로나마 ^^; (복고풍을 하면서도!) 사이버펑크로서 입장을 천명하는 단순명쾌한 노래가 <친구가 될래>다.

난 늘 비평가로서의 자신을 의식하며 사이좋게 꾸려가는 창작자이려 한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건지 모르면서도 끝내주는 예술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엔 자기가 스스로의 기획자이고 마케팅부이며 비평가인 편이 더 맘편하고 낫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세상’에선 개인이 받아들여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종류도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니까. 걸 무시하고 무조건 전문가만 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뛰어난 종합가?가 되는게 아마 앞으로의 일반적인 목표가 되지 않을까나. 나도 ‘가늘고길게’ 인생을 재밌고 보람되게 살자는 주의로서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건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론...

난 현재 밴드는 쉬고 있는 상태다. 97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4년째인데 데모 한장 달랑 만들었으니 상당히 게으른 편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라인업이 늘 비었다. -.-;;; 밴드하면서 가장 어려운게 좋은 라인업을 갖추어 유지하는 일인거 같다. 몇년씩 같은 라인업을 유지하면서 점점 더 나은 밴드로 커가는 밴드를 보면 제일 부럽고 존경스럽다. 마음이 착 들어맞는 멤버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할 능력이 있어 원맨밴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는 어떻게어떻게 꾸려왔다. 하지만 다음에 나설 때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서 재시도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고민스럽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나의 비평가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끝내주는 책을 쓰는게 목표다. 99년부터 다음포털의 미즈칼럼에 no cuture only styles라는 칼럼방을 개설해서 지금껏 많이 썼지만, 올여름까지 더 많이 써서 내 자신이 흡족할 만한 반듯한 작품을 만들거다. 이 책을 많이 팔아서 돈을 벌면 ^^; 그걸로 신서도 사고 컴도 따로 장만해서 여러가지 해볼 생각이다. see also 나는미소년이좋다

실은, 전부터(97년부터) 비누도둑 1집을 내서 돈벌면 그걸로 여러가지 악기를 사서 2집은 본격 사이버펑크 음악을 하자, 는게 내 욕심이었는데 데모도 99년에 나왔으니 남탓할건 없고, 어차피 2000년 지금의 테크노 열풍은 다 가짜밖에 주류시장엔 떠돌고 있는게 없으니 좀 있으면 ‘진짜 좀 제대로 된게’ 시장으로 진출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쉬는게 꼭 나쁜 타이밍은 아닌거 같다. 크라잉너트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머신이 유행이 이미 다 돌은 3년째나 되서 다시금 ‘좀더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걸 보니 매니아 유행과 일반 전파 사이의 그 신묘한 경지는 연구를 더 해야할거 같은 생각이다.

난 좀더 탐구하고 싶다. 실은 무진장 탐닉하고 싶다. 아직까지 내가 손도 못 대고있는 소리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다루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되면 비누도둑이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좀 낯선, 다른 뭔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다시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겠지. 그렇게 되면, 어떤 이름으로든지 간에, 난 또 즐겁게 노래를 부를거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맘이 딱 맞는 음악 친구도 만나고 싶다. 이건 내가 노력한다고만 되는것도 아니고, 운도 따라줘야할 일이지만, 나의 음악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버릴 멋진 음악가를 만나게 되면 참 즐거울거 같다. 블러를 보나 라디오헤드를 보나, 좋은 밴드들은 다 중고딩 때 그런 음악친구를 만나던데, 난 중고딩때 공부만 했으니 지나간 일은 탓할 수 없고, 워낙에 늦되면서도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밤 새는 줄 모르고 열심히 재능을 발휘하는 타입이니까, ^^; 언젠간 만나지겠지 한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 이것이 ‘노래’라는 것을 요즘 난 어렵게어렵게 인정하게 되었다. ‘음악’이라고 하면 또 다르다. 갖가지 세계들을, 분노와 고통과 자극과 흥분을 표현할 이유가 있으니. 그러나 노래는 부르는 것이고, 듣는 것이고, 따라하는 것이고, 자기 삶의 한 흐름 속에 언제나 서있어 검색해 불러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이렇게 뭔가 깨달은게 있으니 앞으론 뭔가 또 달라지지 않을까.

2000.5.22.

남승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