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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란

비평이란


비평이란

고구마줄기 캐기

비평은 고구마줄기캐기다. 고구마 줄기처럼 세상의 현상들은 이런 영역, 저런 영역들이 서로 독립적이나 밀접한 연관으로 이어져 있다. 비평가의 역할은, 하나의 작품, 혹은 유행이나 각종 현상들이 연결되어있는 다른 줄기들을 지상으로 끄집어내어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한 중요하고 흥미로운 줄기들을 끄집어내는 자가 뛰어난 비평가다. 그외의 것은 말재주일 뿐이다.

말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을 즐겁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비평 중에도 이런 이유로 재미있어서 인기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줄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비평이란 없다. 대개 죽음같은 지루함뿐이다.

지루한 글

나는 대학이란 제도를 통해 자기의 학식을 인정받았다는 이유로 쉽사리 저널의 의뢰를 받아 비평을 하는 사람들의 글은 잘 읽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재미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흥분해서 반론을 쓰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는, 피곤한 경우를 당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꼭 반론할 가치가 있는 글에만 흥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매니아의 글

내가 즐겨 읽는 글들은 매니아의 글이다. 매니아는 자기가 미쳐있는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즉 그가 말이 되는 소리를 주장하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장하든, 조심스럽게 설명을 하든 흥분해서 주장을 하든, 귀엽거나 사랑스럽다. 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장하는 글은 읽다가 말면 그만이다. 이 사람은 교수도 아니고 비평가도 아니고 어떤 사회적 명예나 공인과는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헛소리를 해도 그가 한 짓 이상의 화가 나지는 않는다. 상당한 안목을 보이는 경우는, 무척 즐겁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가르쳐주는 그가 정말 고맙기까지 하다.

그러나 매니아는 고구마줄기를 한 뭉텅이만 또는 둘 정도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잘 아는 영역을 설명할 땐 최고의 써비스를 제공하다가도, 그것을 해석하는 영역에 들어서면 왠 난데없는 시대착오적인 구닥다리 철학만을 드러내기 쉽다. 나는 통신공간에서 비평가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제대로 연결할 줄 모르고, 억측이나 고집스러운 윤리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무식한 논객으로 분류될 수는 있으나, 비평가는 아니다. 비평은 단지 반대하거나, 분석하거나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비평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내가 오류라고 부르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상충하는 것들이 모여 궁극적으로는 아구가 안 맞아도, 그들은 정열과 의심없음으로, 그 시스템으로 어떻게든 해나간다. 이들은 어떤 때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하고, 어떤 때는 가장 멍청한 이상주의자의 실수를 저지르곤한다.

자기 취미를 가지는 것

음악이나, 영화의 경우 매니아층이 상당히 발달한 만큼 자기분야의 실수없는 고찰에서 유래한 중용정신을 가지고 매니아에서 출발한 비평가가 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얘기만 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괜찮다. 취미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식한 기자나 기획자들은 쉽사리 전문가의 편견에 기울거나 대중의 선호를 좇지만, 그들은 대중이 느끼는 것을 느낄줄 모르며 단지 대중이 좋아한다고 인정된 기호만을 알 뿐이다. 그렇기에 늘 진부한 영화와 음악들을 우리는 마주할 수 있다.

자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취미의 변화과정을 통해 진리라는 것의 성질에 가까이 간다. 옛날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감격 속에 듣던 락음악만을 기억하는 무식한 음악평론가들의 저항정신 운운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감수성 예민하던 청소년기 이후로 성장을 멈추었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들이, 우리 주변을 초토화하는 융단폭격을 하는 진부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것이다. 사실 그 바보같은 룰라의 노래들이 부분적으로는 얼마나 재밌는지, 어설픈 쿨이 촉발하는 자극들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느끼지를 못하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가버린 옛날을 알뿐이고, 오직 노화를 진행할 뿐이다.

보수적인 진보주의자

역시나 제일 고약스러운 것이 80년대 운동권 이데올로기에 쩔은 문화평론가와, 그의 아류들이다. 자기가 적당 수준의 보수주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래도 자기가 보수주의임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맑시스트나, 급진론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죽었다 깨나도 자기 수준의 그 끔직한 보수성과 협소함, 크나큰 착각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see also 진보에대한착각

(미국에서) 노동자의 음악이기에 락을 옹호하는 자들, 인디영화이기에 당연히 욕설과 이기적인 남성중심주의는 자동적으로 반중산층 이테올로기의 저항정신과 컬트가 된다는 자들, 프랑스에서 유행한 철학이기에 열심히 들뢰즈를 인용하지만 한켠으론 작가주의를 옹호하며 수준도 안 되는 여성다큐작가를 추켜세우는 자들, 그 외에도 혐의자는 많다.

많은 6*년생들은 관변학문의 최정상국 구소련에서 2차대전 후에 떠들어대던 낡은 도그마가 여전히 지상 최고의 과학적 인식이라고 믿고 있는게 아니냐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그들의 어려운 시대탓을 할건 없고, 90년대초 이후라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제대로 공부를 했다면, 그리고 머리란게 달려있다면 지금껏 그런걸 정조처럼 지키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상 공부를 안 했을 것이다. 자기가 너무나 힘들게 믿고 있는 신조를 벗어나는 진리를 수용할 용기가 없었거나, 이미 굳은 머리와 감성이 새로운 것을 감각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난 고통 속에 굳은살 베긴 그들의 감성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단지, 느낄 수 없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알고라도 있을 일이고, 모른다면 말이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일이다. 꼭 글쓰는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밥먹고 사는 길은 많다. 자기가 여전히‘진보적인 일’에 종사한다는 만족감을 얻기위해 남들을 혼동시키고 괴롭혀도 좋다고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나는 티비를 보고 자라나 늘 주변에 깔린 대중음악을 듣고 사는 세대가 자신에겐 너무나 진부한 것에 반발해 새로운 감각들을 찾아나서서, 결국엔 바보같은 평론가의 말을 믿고 락이나, 인디영화나, 펑크나, 힙합, 혹은 테크노의 눈먼 노예가 되버리는 일을 바라지 않는다. 남들과 대립되는 자기의 취향은 물론 긴장 때문에 약간 딱딱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엉뚱한 설명서를 첨가해서, 자기의 자유로운 유영도, 남들의 즐거운 소풍도 가로막는 좀비가 되어버린다면, 그 잘난 취미를 애써 지켜서 무엇하리요 하는 생각이다.

예술과 비평의 목적

어디까지나 문화예술은 자기 확장과 쾌락을 위해 있는 것이다. 혹시 자기가 생각은 급진적인데 몸이 안 따르거나, 전연 생각은 없는데 감각적으로 뛰어나다거나, 어떤 경우라도 그의 감각은 자신에게 고유한 것이다.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진실한 자기의 느낌을 속이고 조작하는 한 그 사람의 말들은 쓰레기일 뿐이다. 자기의 모자란 점에 대해선, 솔직히 시인하면 그만이다. 우리들은 각자 다른 시스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하드를 최적화해 놓으면, 인생에 도움되는 얘기들을 얼마든지 주고 받을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기만에 대해선, 난 클리닉을 차릴 마음은 없다. 스스로 깨야할 뿐.

자기가 느낀 것으로 끊임없이 자기의 논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비평가가 될 수 있다. 말하기를 귀찮아하거나 몸으로 움직이는 걸 휠씬 좋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때가 없거나 하지 않는다면. 나는 ‘우리’ 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술가에 비평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자기가 발견한 영역들이 어떤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길 바란다. 많은 걸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의심없는 의견이며,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시스템을, 투철한 의심과 물음을 추구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제안.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즐기지 못한다면, 느끼지 못한다면 비평은 필요없다. 쓸데없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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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보다감상이먼저

나의 솔직성에 대해 겸손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 난 용량이 작아서 거짓말을 못하는데요?

고문서 1998.9 마지막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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