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 시진동 회지발간을 위해 쓴 글입니다. 1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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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얼리 나가보자, 유시진 연구 v. 1.0
1. 까놓고 가는 즐거움-쿨핫
2. 말
3. 자아를 가진 자의 슬픔
4. 등가의 원칙 - [마니] 해루의 철학
5. 다른 것 - 유희
1. 까놓고 가는 즐거움-쿨핫
난 [쿨핫]을 첫회부터 봤고, 아직도 짜릿하게 그 순간을 기억한다. 왕개성들 자체
인 인물들이 등장할 때 마치 영화 [로미오+줄리엣] 처음 시작할 때 왕개폼 이후
순간 정지까지 하며 '머큐쇼' , '티볼트' 그렇게 자막까지 뜨며 인물 소개하듯이 경
쾌한 템포로 나가는 '크레딧'. ^^; 핫, 무척 감동이었다. 잘 생기고 개성 팍팍 넘치
는 주인공들의 최소한의 프로필은 이름과 반, 그리고 키. 우리의 다소 속물적인 관
심사이자 즐거움이기도 한 키 소개가 정면에 나서는 이 만화는 어딘지 까놓고 가
는 즐거움이 돋보인다.
루다가 등장하는 이상 키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키(key)가 될 수밖에 없다. ^^;
키 큰 남자에 대한 열화와 같은 사회적 선호와 그 반대로 키가 필요 이상으로? 큰
여자는 왠지 모를 꺼려짐의 대상이 된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적어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키 큰 걸 선망하며 동시에 개성과 다양성을 중요
시하는 우리들은 미묘한? 입장에서 쿨핫을 즐긴다.
증거라기엔 뭐하지만 열거를 하자면, 키가 작은 축에 속하는 은희영(155)과 별로
큰 편은 아니지만 겁나게 이쁜 동경(162)을 빼고 나면 중요인물로 등장하는 여자
들은 모두 키가 크다. 남자도 금진성(164) 외에는 다 큰 편이다. 물론 뚱뚱한 사람
은 없다. 개성있으면서도 매력있는 캐릭터로서 기본이 다 갖춰져있다고나 할까?
동경이는 키는 별로 안 크지만 겁나게 이쁘기 때문에, '160 센티미터의 키에 45키
로그램 몸무게'에 근접하는 한국형 미인으로 우러름을 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미인형으로 등장하고 있는 여자는 재련이로, 170 좍 빠진 몸매에 까무잡잡
한 피부, 약간 치켜올라간 또릿또릿한 눈으로 트랙 4 연재 이후 한창 주가가 올라
있다.(루리보다야 못하지만... 아무래도 여자팬들의 마음이란 그렇지 않을까나 ^^*)
여기까진 요즘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분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다. 181 cm
에 근육질 몸매, 미남형 얼굴의 여인네 루다가 등장하기 전엔 말이다. 커서 잘 빠
졌다! 고 하기엔 너무 커버린 루다는 남자들이 욕망의 대상으로 하기에 적합한 미
인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가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여성형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조금 삐딱~하게 나가보려는 우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 것이다. 루
다가 극중의 여자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리는 그 큰 키와 힘, 날렵한 운동감각
의 효과는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작용한다. 여자이면서도 남자를 압도하는 육체적
인 힘과 크기, 멋있지 않은가? 역시 무슨 영화를 보든 여자로 감정이입하는데 익
숙한 나 역시, 단순무식하면서도 순진하고 재밌는 성격에 귀여워하면서도 일종의
대리만족의 쾌감을 루다를 통해 느끼는 것을 감출 수 없다.
큰 키에 대한 선망이라고 하는 것은, 근육질 남자 도태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감수성이다. 키작은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말자! 는 예의바
름이나 왜 꼭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커야되냐? 는 남녀평등론, 키가 문제냐 개성
이 중요하다 인격이 문제다 등등의 다양화론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감수성은 어떤
'론'에 가려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감은 당위성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어떤 감수
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감수성이다. 즉, '키 큰 여자가 아름답다'와 같은.
키 큰 남자를 선망하는 대신 우리는 키 큰 여자를 선망함으로써 본래의 감수성도
만족시키고 동시에 앞서나가는 신세대로서 바람직한 감수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키 작은 남자를 선망하는 것도 물론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주류가 되기 더 어려
울 뿐. 스스로의 키에 만족하는 여자들은 '귀여운 남자' 내지는 '눈높이'의 조건을
더 중요시해 작은 키를 좋아하기도 한다. ^^*)
자신의 뜻에 맞는 감수성을 개발하는 것은 무척 즐거울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진
행해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남녀평등 외치는 여자라도
보수적인 마쵸맨이 자기 취향이면, 말짱 도루묵, 고생길이라는 거다. 하지만 반대
로, 전투적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자기 맘대로 레즈비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 엄마아빠가 낳아주신 유전자의 바탕 위에 적절한 문화적 자양분을 받아 자기
취향은 정해지는 거고, 그럴만한 토양이 되야 그럴만한 싹이 나오는 거다.
물론 문화적 과정이란 것이 무조건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 적극적이
되어 문화적 소양을 쌓을 수도 있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으로, 하나의 의지로 감수성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과정 위에
있다. 루다 같은 여자가 멋있어 보인다고 해서 다 레즈비언이 되는 것도 아니겠고,
혹은 진성이 같은 아담한 미소년 취향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새로
운 감수성이란 기본적으로 즐거움 자체로서, 자신에게 '넓어진, 많아진 세계'를 안
아다 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 또한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영화나 만화를 볼 때,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예술작품 내지는
문화상품에 대해 평가를 할 때 내가 가장 앞세우는 것은 '재미'이고, 그 중에서도
얼마나 '새로운' 재미, '깸'이냐가 중요하다. 난 같은 자극의 반복에 빨리 물리는 성
격이라 그닥 새롭지 못한 것엔 그다지 관용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평가는
별거 없지만 보는 동안은 매우 즐길 수도 있다. ^^;;;) 그렇기에, 작가가 제아무리
훌륭한 논리나 이상을 가지고 있더래도, 입으로 외칠 줄이나 알지 감각적으로 사
람을 끌어당기는 매력과 함께 새롭게 사물을 보는 시각을 혹은 청각이나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고 본다.
난 [마니] 본 후론 거의 '유시진 신도'라서 조금 편파적인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엄정하게 말해보건대, [쿨핫]의 톡까놓고 가는 즐거움을 비롯하여 유시진 작품들의
독특한 면모들은 현대의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려는' 젊은이들이 문제시하고 집착
하고 갈망하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잘' 다루는 성공작인 것이다. 단지 '개성이 강한
작가'라고만 부르기에는 다른 뭔가가 있다. 그것은 '시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다. 그리고 남들의 언어만 앵무새처럼 배워 되뇌이다 가는 많은 인생들과 식자들
을 생각해볼 때, 그 시각을 표현하는 방식을 안다는 것은 정말 멋진 능력이 아닐
수 없다.
2. 말
유시진은 문체가 있다. 그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시
각적인 감각이나 전체적인 연출에서도 스타일이라는 것이 물씬 배어나오지만, 대
사나 나레이션 한 마디 한 마디에 똑 부러지는, 잊혀지지 않는 자극들을 박아넣는
솜씨는, 일반 글장이들을 무색케한다. 한 마디로 말맛이라는 것을 알며, 느끼게 해
주는 작가로서 이 문장력과 결코 상관없지는 않을 통찰력과 주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어쩌면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예술가의 사상이라는 건 그의 작품보다 나을
수가 없다는 속설에 위배될지 모르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증거1>
내 염동력은 여전히 건재하고...
난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그의 텔레파시-
아무도 흉내를 못낼 유시진의 그 통찰력과 결합된 문장력은 초기작들부터 지금의
대작(?)까지 여전하다. [그의 텔레파시]의 마지막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보는 이
의 심장에 느끼게 하는 이 나레이션은 확실히 그가 생각이 있을 뿐 아니라 말맛을
아는 작가라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초능력자 레진이 자신에게 있
어 자신의 염동력의 부재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타노의 건재를 몹시도 바라는 이
끝맺음은 직선적이고 날카로우며, 레진에게는 불리했을 등가의 의미가 그에게 어
떤 아픔과 바램으로 파고드는지에 대해 명확한 단언이자 동시에, 그 끝없는 기다
림으로 열려있는, 0에 수렴하는 낮은 기대치에 걸려있는 그의 삶, 정념의 비극적이
나 그치지 않는 한결같음이다.
유시진의 작품에서 종종 불거져나오고 하는 얻음과 잃음, 교환의 등가관계는 이
초기작부터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스스로 이 관계의 육화자체가 되려고 하는 해
루의 등장 이전부터, [베이지톤 삼색체크]에서 내비치는 사랑과 자아의 교환(?)관
계에 관한 친절하고도 명확한 설명 역시 인상적이다. 그의 통찰력이 그 문장을 만
든다는 것은 명백하다.
증거2>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가짜라도, 대리라도 좋으니까
-아웃사이드-
얄미울 정도로,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이 주인공의 나레이션은 만화
를 즐겨보는 독자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찌른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강
요를 거부하고, 오로지 홀로 서있는 개인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우리 반항아들 역
시 갖고 있는 약점과도 같은 것이다. 재미난 것은, 정상성이 남들보다 더 박탈되어
있는듯한 주인공들은 그렇기에 우리가 대개 넘치도록 가지고 있고, 지겨워하기도
하는 가족이라는 것을 염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정말이지 잊고 싶었다. 가족과 사회적 의무와 남들이 나에게 강요하는
가치를 벗어나서 내 뜻대로 멋있게 살고 싶었고, 만화를 보는 것은 그중에서도 유
시진처럼 뭔가 있는듯한 작가를 본다는 것은 거기에서 벗어난다는 하나의 보장이
다. 벗어나서, 다른 감각, 다른 윤리,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쾌감이 우리를 끌여들인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다니.
눈물은 공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약점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 잘난, 자기자
신으로서 있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신도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맘놓고 사랑받고 싶
고, 따듯한 구속을 원한다는 것을. 그것은 우리가 자연스레 가진 인간적인 부분이
고, 이 약점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을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암담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또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잊을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
인간에겐 있으니까.
이것이 일부에게만이 가능한 감상법이요, 평가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감
동은 주관적인 것이니.
증거3>
이것이 내 성격이자 운명이며...
나란 인간이 지금 서 있는 곳의 좌표이다.
-쿨핫-
이 장면을 이루는 대사와 행동, 나레이션은 적절한 시간적 간격과 배치로 완벽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영화가 나온 후의 방식으로, 많은 만화들이 영화
에 영향받은 듯한,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는 장면분할을 하고있다. 가슴저리는
이별의 정황도, 막막히 아려오는 동경의 나레이션도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게
없지만, '성격과 운명', '좌표'라는 단어들을 이 한순간에 쏟아붓는 작가의 과감한
결정에는 찡~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술을 먹거나, 아주 단 외제 초콜렛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어지러움이다.)
무모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하다. '성격이자 운명'이라는 말은, 운명이라는
것이 이미 정해져서 인간을 지배한다는 생각에 반하여, 사람의 성격이 그에 따른
운명을 가져온다고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다 운명이라고 체념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인간의 의지만을 내세우며 무리한 일을 요구해 그르치거나 하지 않
는다. 현재의 자기를 알고, 무엇이 나를 만들었으며 어떤 가능성들에 열려있는 것
인지 아는 사람만이 '내 성격이자 운명'이란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성격이란 것이 일단 형성된 후에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받으면 곤
란하기에 '좌표'가 등장한다. 육체에 직접 아로새겨진 지문도 인생이 달라짐에 따
라 변하듯, 성격 역시 변화하는 것이기에, 지금을 벗어난 운명에 대해서도 확언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다 대신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좌표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사람은 존재의 정의를 내리는 일의 어려움을 알고있다는 것
이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다... 유시진이나 동경이나.
정의를 내리는 대신에 좌표로 돌리는 것은 주인공에게 열렬히 감정이입하는 대신
에 거리를 두다가 한 순간, 치고 빠진다는 전략과 잘 맞아떨어지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동경의 나래이션으로 표현되며 따라서 단지 동경의 생각일뿐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지성은 유시진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난 이 수미일관한 면이 그의 지성이고, 솔직함이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안에 어느 정도 모순되는 가치관이나, 취향, 측면들을 갖는 것은 일반인이나 만화
가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그러나, 외압에 굴복하지 않은 때문에, 특히나 자신을 있
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그치지 않았기에 생긴 가치의 일관성은 강하고 귀하다.
증거4>
- 그렇지만- 환웅님은 금방 어른이 되실 거여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크고- 훌륭한 어른이요.
- 훗... 어떻게 알지?
- 왜냐면요- 엄마가 그랬거든요. 발이 큰 사람은 키가 큰다구요.
- 그런데 환웅님은 발이 이렇게 큰 걸요. 아주아주 커지실 거예요.
- 하하...
-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신명기-
니마와 소향의 이 장면은 순전히 이 장면에서 유래한 코스프레(costum play, 만화분장이라고 하자는데 난 닭살이 나서 차마 이 말은 못 쓰겠음)를 히트시킬 정도
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도 신명기에서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고. 그러니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랜 주제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발전시킨
그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불안정한 현재와 미래, 기대와 두려움 속에 있는 상처받은 자존심뿐인 고귀한 소년에게 어리고 작은 소녀가 건네는 위로의 말은 아름답다.
(분석은 못하겠다. 난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말려들련다.)
-> 자아를 가진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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