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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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의 특권?
한국의 한창때( ->피부의 권력)가 십대후반으로 내려가면서 생겨난 한 가지 현상이 있다. 멋없고 하필이면 고삐리티 팍 나는 교복이지만 할수없이 입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자신이 잘 나가는 청춘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 교복을 입는 십대들이다.
한동안 세상에나 나이트에도 교복 입고서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교복에 대해서 예전부터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의식인 '지겹다!'는 이 시점에 와서는 사라지고 만 것일까? 싫다가도 너무나 익숙해지다보니 좋아진 것인지, 옛날 교복과 '비교하자면' 예쁘니까 좋아진 것인지, 암튼 요즘 중고딩들은 예전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교복을 선호하는 모양을 보인다.
** 그래서 미소년, 미소녀 그룹들은 교복 대신 똑같은 색에 똑같은 모양의 옷, 잘해봐야 비스름한 유니폼들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일까? 경우가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돈되어 보이라고', 라는 실질적 이유는 교복과 똑같다. 위에서 정해준 옷을 입지 않고서는 자기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단 말인지... **
요즘의 교복의 패션화는 대단해서, 다리 길어보이려고 하교길에 치마 몇번 접는 건 아주 귀여운 수준이고, 너나없이 입고 다니는 '타이트 미니스커트 교복'은 아예 옆품이 없이 꽉 끼게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저러고 어떻게 다니나' 긴장감을 일으킬 정도이다. 대개 특별히 몸매가 좋아서 그러는 것도 아닌 듯한데. 남들의 시선을 모으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인가? 역시 패션은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신호'인 것일까? 나 좀 노니까 그렇게들 알아, 하는.
세일러복 신드롬이라?
미소녀 세일러문에서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까지, 한스밴드의 '선생님 사랑해요'에서 영화 [거짓말] 신드롬까지, 근몇년간 세일러복이 새로이 한국인들의 감수성에 크게 다가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네 비디오샵에서 에로비디오란을 체크해 보면 확실하다.
미소녀 세일러문의 팬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세일러복이 일본에서 형성한 성적 이미지는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그냥 교복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일반 한국인들도 세일러복에 대해서는 '원조교제의 유니폼'이라는 선입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참동안 루즈삭스를 따라했던 한국의 여중고생들은 사실 원조교제 같은 것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건 단지, 자기네의 '특권'을 자랑하기 위한 패션이었을 뿐이다. 나는 아직 교복을 입는, 한창 피어나는 나이, 무슨 짓을 해도 되는 아이들이다, 라는 주장.
특권과 아름다움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물음은 이런 것이다. 교복을 입는게 그렇게 자랑스럽다면, 대체 당신은 누구의 시선으로 인해 기쁜가? 하는 것. 피어나는 나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그런 이유로 무조건 교복은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
교복들은, 아무리 뜯어고쳐봤자 교복이라 별로 안 이쁘다. 혹시라도 얼굴과 몸매가 아주 뛰어나기 전에는 (영화 [거짓말]의 김태연처럼) 그런거 입은 모양이 이쁠 리는 없다. 내가 보기엔 대개가 미감적으로 '아름답다'의 차원에는 도달하지 못한, '난 제일 빵빵한 나이라구', 혹은 '난 제일 잘 나가는 뇬이지'를 자랑하며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 차원이다.
이 현상이 먼저 확실하게 벌어진 일본을 보면 확신이 간다. 거기서 잘 나가는 중고생들은 교복입고 찬란한 화장을 하고서 다닌다고 한다. 교복은 순전히 '교복입는 나이'를 자랑하기 위한 유니폼인 셈이다. 아예 여고생들은 여중생 교복을 입고 여대생들이 여고생 교복을 입는다고 한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아주 쉽게 대답한다.
누구의 시선으로?
누구의 시선으로 인해 그렇게 자랑스럽고 즐거운가, 라고 묻는다면? 일본의 원조교제하는 고갸루들은 물론 상대가 될 중년남성들을 향해 상품성을 높이는 것이니 먼저 그들의 시선으로 인해 기쁠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일상적인 감정으로는 그런 원조교제라는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는 것이고 경제력이나 사치, 또한 특권을 과시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여고생, 여중생들은 어떨 것인가? 많은 여중고생들은 '재수없어' 할테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더이상 안전빵의 '무성적 시선'을 가장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 십대들이 일상적인 분노를 느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진 건 돈뿐이 없어 부끄러움도 모르고 영계를 사려고 하는 작자들의 시선에서까지 자랑스러움을 느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자기가 입고 싶어서 입은 교복이 아니니, 그걸 보는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던간에 입은 사람은 책임이 없다. 팔팔 솟는 청춘에 씌워놓은 굴레마저 '패션화'를 통해서 '특권'으로 변환하는 십대의 생명력에는 존경을 금치 못하겠으나, 단지 자신이 속한 청춘, 잘난 나이를 자랑하는 코드로서만 작용하는 옷을 입고다닌다는 것은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문제시되는 건 하나이다.
아름다운가?
옷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이다. 머리모양과 화장, 장신구, 문신 등과 함께 옷은 자기의 미감, 주장, 자기가 바라는 바와 되려고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기본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그저 교장이 '보기 좋잖아'라는 이유로 학교장 재량에 따라 정해버린 교복을 입고서 그 위에 무언가를 보태 보겠다는 것은 상당히 미진하고 찝찝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학생 투표로 몇가지 유니폼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입을 권리'는 아니다.
사실, 그런거 안 입어도 십대는 여전히 창창한 나이이며, 그런 유니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못 입고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으며 인격을 형성하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 6년을 그렇게 보내는 것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인간이 피흘리며 쟁취해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버리는 일일 뿐더러, 정보화에 역행하는 짓이다. 아무리 일본만화의 교복입은 미소녀 미소년들이 아름다와 보여도, 자기의 개성과 주체성을 묻어버리고 집단 속에서만 가치를 찾으려고 하다가는,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별볼일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십대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고서 또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대한 교훈을 말해보자. 세상이 이전과 달라져서 사춘기가 빨리 오고 인생이 일찍 문을 열었으면 그게 맞게 사회적 지위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젊음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인생이지, 옆에서 뭐라뭐라 하는 n세대니, 1318이니 하는 것들이 아니다.
한동안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중고등학생들의 열기에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한다. 이에 정부시책이 자율화로 돌아섰으니, 학교마다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머리모양의 자유는 얻은 셈이다.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아예 교복을 입지 말자고 데모를 하는게 어떨까? 이미 안전한 보호막도 탈선을 억제하는 제약도 될 수 없는 일제의 찌꺼기를 아직도 휘감고 있어야할 이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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