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스코리아라는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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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미스코리아대회의 기억은 어찌나 나의 뇌를 잘 훈련시켰던지, 아직도 나는 할일 없이 바라본 거리를 휙휙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스타일에 점수를 매기게 된
다. 주로 옷이나 가방 악세서리 머리모양의 독특함, 별난 색깔과 재질, 조화로움, 깸, 서로 다른 요소들의 멋진 매치, 자기 신체를 잘 알고 스타일을 구사했는가 등이 채점기준이다.
옛날과 다른 점은 역시 채점표가 타고난 신체가 아니라 그 신체 위에 구사한 본인들의 취향과 감각에 대해서 작성된다는 점이다. 휠씬 바람직한 심사라고는 생각이 되는데, 어쨋거
나 예나 지금이나 심사를 한다는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 ^^
심사를 하는 것은 비교가 가능한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미스코리아는 공영방송에서 직접 개최하는 화려한 행사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미의 사절을 뽑는 축제인데
반해 미스터코리아는 소수 보디빌더들의 '매니아 잔치' 일뿐이라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비교가능하다는, 혹은 남자는 '총체적인' 비교가 불가능한데 비해 여자는 '총체적인'
비교가 가능하다는 걸 말해준다.
즉 사회적으로 인정된 여자들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측정가능하다는 얘기다. 남자에 대해서도 키나 얼굴의 크기, 모양, 그외에도 옷차림이나 자세 등의 문화적인 점수를 매길 수
는 있을 것이다. 이런 남자가 캡이다, 이런 남자가 잘 나가는 남자다 등으로. 그러나 남자들이 띠 두르고 줄지어 서서 매력을 평가받는 일은 슈퍼모델 선발대회 말고는 못 보았다.
그 남자들은 구색을 맞추어 연기력이나 그 밖의 장기 등속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일차적으로 다수 여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될 만한 매력을 지녔느냐가 역시 관건이 된다. 이점에 있
어서는 미스코리아와 다를게 없다.
남자들도 대상으로서 '계량화'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한국의 미남' 식으로 대표성을 부여받는다든가 하는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는다. 잘 생기고 매력적인 남자면 그걸로 족하다.
전세계의 잘 생긴 남자들을 모아서 경연을 하거나 하는 일은 아직까지 못 봤다. 이런 차이는 역시 여자의 미모를 평가하는 일이 그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여자가 남자를 저울질하는 일이 생기기란 많이 어렵다. *
* 어느 부족사회(니제르의 우다베족, 풍물기행, 세계를 가다 참조)에서는 총각들이 처녀들의 맘에 들기 위해 구애의 춤을 추는 것이 유명한데, 갖가지 화장과 애교가 다 등장한다. 이 사회에선 여자들이 모든 경제활동을 다 하고 남
자들은 빈둥거리며 놀기만 한다. 따라서 자기가 먹여살릴 남자를 직접 고르는 것은 여성이 가진 단 하나의 중대한 권리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풍습이 최고 이상향인 젊은 남자들
이 요새 한국에 많지 않은가 한다. ^^;
지금 남자들의 경연이 가능한 것은 여자들의 구매력이 켜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먼저 얼굴과 이미지, 인격을 팔아먹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수치심** 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성 상품화의 사회적인 수치심의 감소가 남성 상품화의 어려운 첫관문을 쉽사리 통과하도록 도
와주는 셈이다. 백년전이라면, 남들 보는 공공장소에서 어깨를 드러내고 다니는 여자는 저런 수치심도 없는것 하고 욕을 먹었겠지만, 지금은 아예 탱크탑을 입어도 흉이 되기보다는
참 저 여잔 자신있나 보네... 하는 선망의 시선을 받게 된다. 수치심이란 자기의 모습이 '그럴만한 모양'을 벗어났을 때 생기는 것으로 사회풍습에 따라, 또 개인의 의식에 따라 형성
된다. 사람에 따라선 더이상 나시티나 배꼽티를 못 입는 것이 수치가 될 수도 있다.
70년대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의 탈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윤리는 아무래도 상당 부분 전래의 윤리와 가치관을 뚫고 자기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유서 깊고도 손쉬운 상품화의 수단은 역시 여성이었고, 각종 광고분야에서 그 이미지들은 활약했다.
남성 역시 강력한 수단인 것은 다르지 않다. 다만, 여성은 가슴만으로도, 엉덩이만으로도, 다리만으로도 대상화가 충분히 가능하지만, 남성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인격적인 채로 남
아 매력을 호소해야지, 인격에서 분리된 신체만으로 나선다면 남성 전체가 수치심을 느낄 것이라는, 아무도 거론한 적 없지만 말없이 통용되는 규칙이 남아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아
직, 속옷을 제외한 영역에서는 분리된 남성신체의 오브제를 본 적이 없다.
** 수치심에 대해 더 얘기해보자면, 만약에 수영복을 입은 도우미가 등장한다면, 그 모습을 보는 여성 일반은 수치심과 무안함에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미끼로 사용해도 좋은 노출의
정도는 최대한도가 초미니스커트로 정해져있다. 이 한도를 넘어선 노출은 노골적인 것으로 여겨져 배척당한다. 그러나 성적 매력을 무기로 하는 점은 똑같다. 단지 사회적으로 용인하
는 수위만이 구분을 행할 뿐이다.
공개적인 점수매기기가 가능한 것은 다수가 선망하는 특성이 있고, 이것이 계량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키가 그 특성의 하나가 된 것은, 전체적으로 코카서스인종에 비해
작은 신체에 대한 열등감과 서양의 신체와 외모, 문화 전반에 대한 선망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키가 큰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건 '기골
이 장대'한 남성에 대한 선호일 뿐이였으니, 여성의 키가 큰 것을 선망하는 것은 분명 달라진 문화와 감성의 결론이다. 예전에 60년대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화면을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170cm이 될 만한 여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국민적 영양상태가 많이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언제나 키큰 여자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90년대 이전에도 키가 큰 여자는 있었지만, 농구선수가 아닌 바에야 이를 컴플렉스로 가지고 있었지 매력점으로 자랑
할만한 형편은 못 되었다. 미스코리아야말로 예외적인 여자들로서, 그렇게 키가 커서는 어떤 남자랑 세워나야 그림이 나올지, 대책이 없는 지경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미
인'- 160cm의 키에 45kg 몸무게 -에 맞서 싸우는, '대안적 미'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키가 큰 여자가 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험난했다. 한국에 분 미스코리아의 바람
은 어찌 보면 컬트적인 체형으로서 현실감 없는 이상형 속의 여성성을 보급하는데 공이 지대했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170cm만 넘어도 무슨 여자가 저렇게 크냐고 하면서, 현실성을 벗어난 미인이라고 점수를 깎았던 사람들은, 이젠 거리나 전철 안에서 자기보
다 머리 하나는 큰 미인이 걸어다니는 걸 보면 와 하고 구경, 감탄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키가 커서 영양상태 하나만으로도 일반인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던 예전의 양상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락이라고는 온가족이 모여 보던 TV 하나가 고작이던 시절을 지나 이젠 케이블티비를 비롯해 여러가지 오락, 레저나 스포츠 등 취
미생활이 다양해져서 미스코리아에 대한 관심 자체도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CF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 그보다 휠씬 멋진 미인들이 박스째로 대기하고 있는데 촌스럽게 수영복에다
번호띠 하나씩 두르고 어색한 폼 잡고서있는 미스코리아가 멋져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역시, 미스코리아가 아직까지도 안 없어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점수를 매기는 일의 즐거움'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이지 않을까. 물론 미스코리아 만들어서 돈 좀
벌어보겠다는 미용실이나 뭐 하나라도 쇼꺼리가 필요한 방송사의 사정이라는 것도 엄연히 있겠지만.
다음 주에 2탄 섹시한 여자의 고민이 나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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