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꽃미남이여 영원히-미소년 신드롬과 만화, 틴에이지 파워 (미소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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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거의 끊이지 않고 만화를 봐온,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거칠고'- '폭력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면이 종종 드러나는- '남자애들의 만화'는 좋아
한 적이 없었다. 만화를 아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그렇듯이 중학교 시절 나름대로 아무에게도 안 보여준 연습장에 직접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린 작품도 몇개가 된다. (^^;)
내가 보기에, 순정만화 판도가 지금이 예전과 아주 달라진 것은, 무엇보다도 '순정만화'라는 말 자체에 비하감을 듬뿍 실어주는, 다리길고 꽃같은 미남들이 나오는 이러쿵저러쿵의
사랑얘기-라고 하는 것들의 성격이 팍 죽었다는 것이다.
<증거> 이유정의 단편만화 [꽃이여 영원히]가 등장한 것은 이미 만화계-생산자 향유자 모두-가 유치찬란했던 과거의 순정만화를 극복했기에, 이에 대해서 전투상태로 생각할 필
요는 전혀 없고,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 정도로 만만하게 생각하고, 또 키치를 사랑하는 기분으로 '별취미'로 즐길 수도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준다.
그 대신에, 좀더 현실적인 사랑얘기나, 일상과 주변 얘깃거리에서 탈피한, 광대한 스케일의 환타지를 비롯, 다양한 장르들이(!) 대거 성업중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미소년 미소녀 신드롬은 지금 젊은층에서 찬찬-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미소녀 신드롬의 주근원지는 일본만화나 게임 등이라고 보는데, 난 이쪽에 상당히 취약하므로,
내가 할 얘기는 주로 미소년쪽으로 쏠려야겠다. 왜 꽃미남 멜로물은 사라졌는데, 왜 이리도 강력한 미소년 신드롬은 가능한 것인지? 난 그 이유가 미소년의 현실화에 있다고 본
다.
9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된 십대 후반 및 (최근의) 십대 중반의 가수성 연예인들의 돌풍은 만화 속에서나 보던 예쁘장하고도 아름다운 얼굴의, 길쭉한 팔다리의 미소년을 현실
속의 가능성으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이 미소년 현상은 단지 조명발과 화장발을 십분이용, 완벽한 사랑의 대상을 중고딩 여학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돈이나 확실히 벌어보겠다는 고
질적인 국내가요산업계의 상술과 미디어의 힘으로 만들어낸 허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거리에 나가서 잘 찾아보면, 연예인 뺨치는 미소년들이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꿈같은 세계(?? ^^;;;)가 가능해진 것은 단지 요즘애들이 영양상태가 좋아서일까? 단순히 신체적인 조건만으로는 아름다움은 형성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남자가 탄생하기 위
해서는, 아름다운 남자라는 개념 자체가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에나 몰두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십대라면,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미소년'의 기대는 불가능
하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기를 가꾸는 행위, 도덕, 능력이 남자들에게 가능할 때에야, 미소년은 현실가능해진다. 여자들에게 한인기 끌고 싶은 욕구 및 자기표현 욕구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꾸고 싶어하는 욕구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역시나 원인은 물론, 당연히, 사회적으로 십대들의 파워가 무시못할 세력으로 자라났기 때문이다.
십대는 경제적으로 볼 때 만만치 않은 소비층을 형성하며, 젊은층을 상대로 하는 패스트푸드 연쇄점엔 이미 점원들이 모조리 십대로 깔렸을 정도로 노동력 공급 측면에서도 한몫
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십대파워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자기네끼리의 문화가 소통가능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입는 옷과 악세서리, 먹을 것과 즐기는 오락물들
을 전적으로 상품에 의존한다고 하여 그들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라고 부르는 아도르노의 유령들이 아직도 있다. * 그러나 그들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
품화과정을 결벽증적으로 거부하고는 성사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는 것인지. 모든 의미있는 행위는 불가능하므로 죽자는 것인지. 그들의 상품화
론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상품화? 상품의 노예? 웃기지 말라고 해라. 그러는 놈들이야말로 비겁과 질투와 자기 합리화의 노예다. 여성상품화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나, 십대들의 놀이문화와 애정생
활을 '탈선'이라고 막으려드는 노친네들에게선, 똑같이 자기가 못하는 것을 하는 자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심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로 둔갑시키려는 치사한 혐의가 보인다.
관건은 자기네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가로서, 한국의 십대는 분명 문화상품의 직접적인 생산자로서는 미약하다. 그러나 그 방향성을 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완
벽한 파워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중대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생산자로서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예로 고딩영화제를 들 수 있다. 여기서 돌출된 고딩들과 심지어 중딩들의 위력은, 약간의 도구가 갖춰진다면 청소년들 역시 문화
생산자로서 둔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비디오카메라라는 도구 자체가 무척 접근하기 쉬운 대중적 매체라는 점에서, 또 한국의 대중들이 영화라는 것에 대해 남다른 애
정과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능성은 높다. 물론, 디지탈화가 가져올 소자본 영상문화의 시대에 대한 기대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전지구의 네트화와 함께 컴퓨터를 감각적으로 터득하는 신세대들이 앞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구타입시교육하에서는 암담하지만, 그 틈새를 뚫는
행운의 시도가 점차 많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다지 낙관할 것은 없다. 한국사회의 '한창때' 개념이 십대후반으로 내려가고, 많은 젊은이들이 입시구타교육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문화를 향유하고 젊음을 자랑한다고 해
서 그들이 끝까지 성공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인간 사회의 보수성이란아주 강력한 것이다. 받아 먹는 문화 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는, 젊음을 낭비하는 것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그들 대다수는 곧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속절없이 의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진짜 자기것을 갖지 못한다면 말이다.
1999.8.9
앞으로 아마도 6회에 걸쳐 '미소년론'이 이어집니다.. *^^*
-미소년의 사회적 미적 조건들..미소년을 만드는 여성의 시선..갑바 없는 남자가 아름답다?
등등...
->어린애성만이 그대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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