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교복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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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창때가 십대후반으로 내려가면서 생겨난 한 가지 현상이 있다. 멋없
고 하필이면 고삐리티 팍 나는 교복이지만 할수없이 입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자신이 잘 나가는 청춘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 교복을 입는 십대들이다.
요새 나이트엔 교복 입고도 간다고 하고, '건전한' 놀이문화를 원하는 중딩을 위한 콜라텍도 생겼다. 교복에 대해서 예전부터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의식인 '지겹다!'는 이 시점에 와서는 사라지고 만 것일까? 싫다가도 너무나 익숙해지다보니 좋아진 것인지, 옛날 교복과 '비교하자면' 예쁘니까 좋아진 것인지, 암
튼 요즘 중고딩들은 예전과 비교하자면 교복을 상당히 선호하는 모양을 보인다. 그래서 미소년 미소녀 그룹들은 교복 대신 똑같은 색에 똑같은 옷, 잘해봐야 비스
름한 유니폼들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일까? 경우가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돈되어 보이라고', 라는 실질적 이유는 교복과 똑같다. 위에서 정해준 옷을 입지 않고
서는 자기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단 말인지...
요즘의 교복의 패션화는 대단해서, 다리 길어보일라고 하교길에 치마 몇번 접는 건 아주 귀여운 수준이고, 한참 유행하고 있는 타이트 미니스커트 교복은 아예 옆
품이 없이 꽉 끼게 만들어 보는이로 하여금 '저러고 어떻게 다니나' 긴장감을 일으킬 정도이다. 대개 특별히 몸매가 좋아서 그러는 것도 아닌듯 한데. 남들의 시선을
모으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인가? 역시 패션은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신호'인 것일까? 나 좀 노니까 그렇게들 알아, 하는.
일년전 '선생님 사랑해요'를 히트시키면서 조금씩 유명해진 한스밴드, 케이블티비의 뮤직비디오로 난 처음 접했었는데, 음악도 좋고 왠지 못생긴 아이들도 귀엽
고 정겨웠지만 결정적으로 세일러복을 짧게 땡겨 입고 나왔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일본의 원조교제 교복으로밖에 안 보이는 짧은 세일러복에 대해서 난 거부감이 들
었다. 과연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입었는지... 기획사에서 시키니까 싫어도 한건지 그것이 궁금했다. 십대 여자아이들로만 이루어진 밴드라는 상품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세일러복을 입힌듯 한데, 세일러복 소녀의 환상에서는 원조격인 일본에서는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면 그것마
저 노렸단 말인가? 암튼, 기획사쪽의 의도는 아주 의심스럽다. 당사자가 생각이 있는 여자들이었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조건 '원조교제복'의 이미지로 세일러복이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지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쯤 되면 세일러교복이 오만감이 교차하는 껄끄러움을 무마시
키고서 완벽한 '순수의 시절'의 재현으로 기능하는데, 그 치마길이가 길긴 했다.)
물론, 한스밴드의 세일러복이 단지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을 차용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얼굴에 그 몸매에 미소녀전사 코스프레는 너무 멀다고
생각한다. 혹시 그래서 인기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원조교제를 한다고 나서건 단지 한창때를 뽐내건 간에 '부러움을 일으킬 만한', '잘난' 모양새가 나와야 되었거
늘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기획사는 판단한 거 같다. 그러니 2집을 발표하면서는 정규멤버도 아닌 왠 이쁘장한 '미소녀들'을 추가시켜 분위기를
쇄신해보겠다고 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한 거 같다.
(실은 난 한스밴드는 그룹이지, 밴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네 밴드의 음악을 만들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밴드가 있을 순 없으니까.)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물음은 이런 것이다. 교복을 입는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의 시선으로 인해 기쁜가? 하는 것. 단순히 '아직 피어나는 나
이'라는 보증으로서 무조건 교복입은 모습이 아름다운 것인가?
교복들은, 아무리 뜯어고쳐봤자 교복이라 별로 안 이쁘다. 혹시라도 몸매와 얼굴이 아주 뛰어나기 전에는 그런거 입은 모양이 이쁠리는 없다. 내가 보기엔 대개가
미감적으로 '아름답다'의 차원에는 도달하지 못한, '난 제일 빵빵한 나이라구', 혹은 '난 제일 잘 나가는 뇬이지' 를 자랑하며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 차원이다. 이 현상
이 먼저, 확실하게 벌어진 일본에서는 이 점을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거기 잘 나가는 여고생들는 교복입고 찬란한 화장을 하고다닌다고 한다. 교복은 순전히
'교복입는 나이'를 자랑하기 위한 유니폼인 셈이다.
그러나 십대뿐만 아니라 이십대도 역시 창창한 나이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삼십대를 인생의 전성기로 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일은 없다 식으로 서른이 넘어서
혹은 스물다섯이 넘어서 혹은 군대간 다음의 인생은 죽은걸로 치고 그전까지는 원없이 지맘대로 놀면서 살겠다는 대책없는 '노세주의'는, 젊음을 팔아먹는 미디어의
상술에 놀아나 신세대 문화상품을 팔아주고 사라지는, 불쌍한 노예의 의식이라고 매도당해도 할말이 없다고 본다.
어차피 사회를 바꿀 힘이 없다면,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개겨주겠다, 는 식의 저항의식?을 존경해주는 축들은 소수지만 형성된다. 그런 축들을 위해 영화들도
제작된다. 나머지 자본주의의 신민들은 단지 문화상품을 제공하고, 돈을 챙기고, (그 돈으로 상당수는 젊은 몸을 사고,) 한때는 단지 한때로 소비하는 것이다.
100년도 안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십년은커녕, 삼사년밖에 안되는 좋은 때만을 가지고서 나머지는 노동과 의무의 세월만을 지내는게 자랑스럽고 자연스러운 일인
가 하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이용당하는 게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불가피하다'는 변명도 '접수불가'이다. 현대사회의 매체들은 당신이 깨우칠
방도는 최소한 충분히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다르게 살 수도 있다. 인터넷은 뒀다 뭐하고, 그 많은 책들은 뭣하러 있는건가? 여성에게 한없이 아니꼽
고 치사한 사회적 강제들, 돈이 없는 자에겐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잔인한 현실에 (잠깐의 푸닥거리를 한 후) 그대로 순응해버리기엔 인간의 능력은
너무 뛰어나고, 현사회의 변화는 넓은 가능성을 사양으로 주고 있다.
대책없는 노세주의 젊은이들은 젊음에 대해 '낭비'의 관념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래도록 젊고 아름다운 인생,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경험이라는 것을 가져보
지 못하는 것이다. 써없애는 것만을 알고, 채우는 법을 알지 못한다. 주위에서 틀어주는 욕망의 작동방식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벗어나는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갖지 못한다. 오로지 낭비와 자기학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뿐이다. 그 자학적인 낭비의 바로 뒷면엔 끊임없는 절제와 억압, 지루
한 노동이 있다. 공부가 되었건 돈버는 일이 되었건 말이다. 그 불가피하게 따라붙는 노동과 통제를 일시적으로라도 떨치기 위해 오락이 필요하고, 거대한 기계의
보잘것 없는 나사와도 같은 자신을 잊기 위해 두뇌를 마비시킬 술이 필요하다. 아무런 기반도, 실력도 돈도 갖지 못한 그들이 가진 유일무이하게 빛나는 건 젊음밖
에 없고, 그것을 확인하고 자랑하는 확실한 방법은 이를 되도록 극단적으로 낭비해 보이는 것이다. 술먹으며 밤을 새고, 담배를 피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자기 육
신을 한계로 밀어붙임으로써다.
더 길게, 재미나고 보람되게 젊은이로서 살 수 있는 방도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하염없이 소수일 뿐이다. 낭비 대신 축장적 성격을 가진 이들도 있고,
이를 부추기는 사회적 압력도 있지만 이는 젊음이 아니라 돈과, 잘해봐야 건강을 저축한다. 젊음을 다 써버린 후에, 또는 강도 높은 노동에 착취당하면서 저축할 수
있는 것은 사실 한 가지뿐이다. 돈, 그리고 어쩌면 이것으로 사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위신과 가치.
젊음의 가치를 무조건 소진시키는 걸로 끌고가는 자본주의의 상품경제와 이미지 전략에 대해 똘똘하게 대처하는 일종의 클리닉, 섭생법이 유행을 타야한다고 생각
한다. (여성지에 실릴 정도로.) 현재 경락마사지라든가 아로마테라피 같은 주제를 통해 건강과 미용이 통합된 몸에 대한 관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중이니까, 가
까운 미래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내일은 없다 식의 방종이나 내일을 위해서라면 식의 금욕주의에서 벗어나는, 미래와 연결되어있는 현재를 바라보고 즐
길 수 있는 균형잡힌 의식을 갖는다면, 좀더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서 '한창때'를 주장하고 싶은 십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이
글의 교훈적 어투가 거슬린다면 아주 쉽게도 말해주겠다. 속고 사는게 뭐 그리 자랑이냐?
'짧은 젊음'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도 엄청 중요한 주제인 '누구의 시선으로 인해 기쁜가'는 다음 번에 얘기해 보겠다.
20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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