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세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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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세대는 네트워크를 자기 감각/운동 기관으로써 쓸 줄 아는 세대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n세대는 네트-기계와 '친근'하게 감응한다. n세대 '이후'의 세대는 기계와의
'도착'성에서 차별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육체와 기계가 연결되는 것'이
아닌, '육체 안으로 들어온 기계로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색다른 인류가 될 것이다.
(
->매트릭스, n세대를 위한 맞춤 하이브리드)
많은 핸드폰업체 및 인터넷 관련업체, '젊음'의 문화상품을 팔아먹는 광고들은 n
세대가 마치 서기 2000년 현재 한국의 십대, 혹은 이십대 초반까지의 청춘들이라고
믿는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80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무조건 n세대라는 건
상품을 팔아먹기엔 좋은 논리일지 몰라도 현재 지구 위의 세상이 돌아가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n세대는 '발랄하고 귀여운 80년대생 젊은 청춘들'이 아니다. 물론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보단 문자메세지 보내고 정보검색하고 오락하는것이 더 친근한 세대,
베틀넷에 빠져있는 세대, 춤은 못 춰도 DDR은 잘 하는 세대들은 n세대의 개념에
어느 정도의 근사치로 접근하고 있다.
DDR(펌프 포함)은 기존의 '춤 잘 추는 사람'이 전혀 메리트를 가질 수 없는 오락이다.
춤이란 건 주어진 음악의 리듬 안에서, 거기에 자기 몸을 반응시키고 자기
몸의 리듬을 맞추어내는 행위다. 여기에 DDR 기계가 개입하게 되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단지 '음악에' 자기 몸을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며,
거기서 일정한 자신의 리듬을 '표출'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였지만, DDR을 위해서는
'기계가 시키는 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첫번째 관건이
된다. 그걸 마스터하고 난 후에야 자기만의 창조적인 DDR춤 개발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DDR 발판 타이밍이 남이 쓰던 컴의 마우스 클릭 타이밍보다는 더 어려운 거 같다. ^^;
자기네 젊음을 과시하는 방편으로 교복마저 자랑으로 삼는 요즘 십대가 춤마저
자기만의 독창적인 개발과는 상관없는 '획일적인 DDR'만 열심이라고 비판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히 그런 측면은 있다. 나도 '유니폼의 문화'에 대해서는
언제나 매서운 비판을 사양치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DDR 열풍의 이면에는 '기계와
일체가 되는 훈련'이라고 하는, 분명 앞으로 살 세계에서 꼭 필요한 연습과정의
의미가 깔려있다는 것을 더 중요시하고 싶다.
따라서, DDR을 잘 하는 사람들은 컴퓨터를 왠만큼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는 기본기를 어느 정보 확보한 셈이라고
자위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DDR을 잘 하면 n세대고, 못하면 아니라는 얘긴
아니다. 사람마다 운동신경이 다 다르기도 하고, 음악취향이 까다로운 사람은 아직
까진 DDR을 꺼릴 수도 있다. 단지, DDR이 21세기초(혹은 20세기말) 지금, 하나의
세대를 이루는 특징적인 감수성의 준거가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세대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세대론'이라고 하며 거론하는 세대는 대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공유하며, 따라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있어서 공통점을 지니게 되는 동일 연령
집단'이다. 한국의 4.19. 세대라든가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처럼 말이다. 한국의 신세대에
대해서도 '컬러티비를 보며 자란 감수성의 세대'라는 식의 가름이 있을 수
있다.
( 관련글 링크 ) 나는 '새마을 운동 세대'라는 말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세대
의 특징은 무척이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386세대도 여기에
관련이 많을거 같은데.) 아마도 '등신불 세대'라는 것을 만들어본다면 90년대
초에 극심했던 학생운동권의 분신자살을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
까나 한다.
세대라고 하는 것은 단지 몇년도에 태어났다는 것으로는 물론 그 가름이 서지 않는다.
그들이 특정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상의 일치점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아동기나 청소년기를 통해 강렬한 문화적 쇼크를 같이 받았기 때
문이라고 봐야한다. 반드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급변하는 사회의
특징적인 한 굽이' 역시 준거점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컬러티비나 워크맨, mp3라는 환경변화는 그것 없이 청소년기를 지나버린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감수성을 자기 세대에게 심어주게 된다. 컬러티비를 보며
자란 세대는 엔간한 쇼에는 만족할 수 없는 솔직하고 욕심많은 미의식을 갖기
마련이고, 워크맨을 끼고 자란 세대는 위에서 틀어주는 중앙방송에는 만족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와 색깔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는 법이며, 공짜 mp3로 이
세상의 모든 음악들과 접하며 자란 세대는 네트를 통해 수많은 개인들끼리의 상호
교류하는 것을 익숙히 여기며, 따라서 은근히 카피레프트(관련글 링크 예정)의 가치로
접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다 커서도 여전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스스로 넓은 세대를 살며 또
길고 넓은 세상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배틀넷에 맛들이고 인터넷 서핑으로 날밤
새는 많은 70년대생들은 일단 잠재적 n세대로 보아야 한다. 지금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 즉 네트, 기계와의 친근성, 노동의 질적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가에 의해서 n세대는 형성되기 때문이다. 난 DDR 잘 하는 회사원들 보면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춤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도 DDR 만큼은 적응이
잘 안 되고 있는 판이다.
신세대와 n세대
처음 한국에 신세대론이 등장한 것은 93년, 서태지의 화려한 등장과 공교롭게도? 거의 맞아떨어진다. 처음의 용어쟁탈전에서 '신세대'는 일본의 '신인류'를 가볍게 제끼고 미국의 'x세대'에 대해서도 전반적 우위의 고지를 점령했다. 당시 '신세대'는 서태지* 를 좋아하고 이어폰을 꽂고다니며 자기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직의 권위보다 중요시여기는 젊은이들, 그때의 십대와 이십대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학생만 신세대가 아니라 신세대 직장인, 신세대 주부까지도 나왔다. 그땐 아직 고등학생이 교복을 자랑스럽게 입고 춤추러 가지는 않는 때였다. ^^;
*그 서태지가 지금에 와서 발달된 네트워크의 미덕으로 인해 표절 의혹이
'표절음악 홈페이지'에서 제기되고 있으니, 세상일이란 재미있다.*
80년대의 물질적 풍요 속에 자라나 각종 개인화 장비를 갖추고서 기성권위와는 아주 자연스럽게 결별하는 젊은 세대가 신세대였다. 그때가 사회주의권 몰락과 함께 학생운동권이 종교적? 권위를 잃고 몰락을 거듭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지적 관심이 온통 '문화'와 '욕망'이라는 범주로 몰리면서 신세대론은 막강하게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 역시 코에다 걸면 코걸이 귀에다 걸면 귀걸이 식으로 '신세대'는 신세대 가구나 신세대 패션을 팔아먹는 문화적 코드로 착취?!당했다.
'x세대' 역시 그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이해불가능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란 면에서 x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알파벳 순서'라는
무지막지한 괴물의 습격을 받아 스스로를 한정시켜버리는 최후를 맞이했다. 즉, x세대는 변이를 일으켜 y세대로, z세대로까지 갱신됨과 더불어, y나 z는 '당장에 상품광고의 대상이 되는' '특정한 아이템으로 설명되는' 젊은층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고, 신세대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 즉 '쉰세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생활양식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대충 정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의 n세대는 단지 y, z를 따라붙는 또 하나의 젊은 나이(십대, 1318, 또는 80년대생)의 권리를 드높이고 젊음의 상품을 팔아먹는 편리한 용어로써 몇년 써먹고 끝날 이름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싶다. 'n세대'는 '신세대'와 버금가게 한 시대의 변천을 특징지을 수 있는 큰 이름이다. 신세대가 기존의 권위와 연줄로 돌아가는 사회에 반기를 들고 자기 문화와 라이프스타일로써 개인의 가치를 드높인 세대라면, n세대는 그 반항의 절대적인 무기가 되는 새로운 생산수단, 즉 네트와 기계화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감응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는 세대다.
뭐 만들자면 웹세대, 사이버세대, 유전자공학세대(gen세대*), 얼마든지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네트워크 세대'(n세대)처럼 포괄적으로 현재 인류가 맞고 있는 생산양식의 변혁에 대해서 반응하는 세대로서 표상하기 적합한 이름은 없다. 특히나 지금 당장의 인터넷 혁명의 이름에 아주 잘 어울리니까.
*일본 전래의 선불교 문화가 서양에 가서 유행을 만들어낸 zen 양식이 요새 한국에까지 들어왔다는데, 앞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날이 유전자공학의 혜택을 미리 좀 받는 날과 겹치게 되면, '젠 세대'가 대대적인 문화코드로 유행할 거라고도 생각해본다.*
신세대와 개인화 장비(->나이를 알수 없는 얼굴) 신세대와 x세대, 그리고 그 뒤를 따른 y세대, z세대를 거쳐서 지금의 n세대까지 변천해온 '세대론'을 들여다보면, 각 '세대'들이 자기네 존재를 확연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특한 '기계장비'가 따라붙음을 알 수 있다. 신세대(x세대)는 이어폰과 워크맨, 서태지를 특징으로 했고, y세대는 커다란 헤드폰과 (아마도) 이스트팩을 가지고서, z세대는 힙합바지에 염색, 목 뒤로 걸치는 헤드폰으로써 차별화되었다. (y와 z세대는 나의 기억도 좀 불확실하다..) 'n세대'는 핸드폰과 배틀넷, DDR(펌프 포함), 여기에 앞으론 mp3 플레이어도 추가될지 모르겠다.
각 신세대들의 장비는 1) 음악을 개인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장비와 2) 통신수단을 기본으로 하고있다. 음악 개인장비는 워크맨에서 CDP로, 일부에서는 MDP(미니디스크)로, 앞으로 어쩌면 MP3 플레이어로, 음질이나 간편성에서 발전해가며 동시에 이어폰에서 큰 헤드폰으로, 다시 작고 멋진 곡선을 자랑하는 헤드폰으로 '돌출부위'의 패션도 변화한다.
통신장비는 삐삐가 점점 작아지면서 석권하다가, 핸드폰이 등장해서 점점 작아지면서는 핸드폰으로 대체되었다. 지금은 'n세대의 필수품' 처럼 여겨지는 핸드폰이 2년전까지만 해도 '아저씨는 핸드폰 들고, 오빠는 삐삐차고', 하는 유머의 소재였다는 걸 다들 기억하실래나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그것을 무시하는 방법으로써 음악의 개인화 장비는 기능한다. 다른 시간을 사는 것이다. 통신장비 역시 공간의 제약을 뚫고 다른 개인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삐삐는 공간을 무시하는 연결을 함으로써 통신문화에 일대 혁신을 이루었고 핸드폰은 그 시간제약마저 무시함으로써 더한 짓을 하고 말았다.
컴퓨터는 원래부터 개인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너무나 기본적인 사양으로서 휴대가 간편하지 않으나,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함께 곳곳에 pc게임방이 널리게 되어 이젠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즉 '개인장비에 못지않은' 신세대 장비라고 볼 수 있다.
각 신세대들은 모두 '끈끈한 전통적 사회적 유대감'을 거부할 수 있는 나름의 기계장비, 말하자면 자기네의 '개인화 장비'를 가지고서 하나의 세대로서 자신을 세운다. 그리고 기술발전에 따라 개인화 장비는 '업그레이드'되기 마련이고, 새로운 기술을 채택하는 건 언제나 그 시기의 가장 민감한 인간들, 각 신세대들이다.
(사실 y세대나 z세대는 이제는 금새 기억도 희미해진, 자각이 없는 세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세대들은 문화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꽈다붙인, x세대의 변형일 뿐이기 때문이다. n세대 정도는 되야 기존의 막강한 '신세대'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
신세대 장비는 기본적으로 개인화, 그 다음에 개인끼리를 소통을 가능케 한다. 개인끼리의 연결, 이란 점에 있어서 이전 신세대들의 노하우들을 초토화시키는 것이 n세대의 막강 무기 인터넷이다. 이미 90년대 전반기부터 pc통신이라는 무차별 개인들의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만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제공하는 네트가 있었지만, 웹브라우저와 홈페이지, 인터넷만큼 본격적으로 모든 멀티미디어 정보와 개성의 발현 자체를 세계적으로 자유자재로 소통시키는 혁명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점에서 n세대는 아주 특징적으로 개인의 연결을 표상한다.
혁명이라고 하니까 거부감을 느끼거나 고작 기술발전 가지고 '오버'를 하는군, 하고 야릴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혁명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류는 산업혁명으로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혁명을 겪었고, 그전에 신석기 혁명 역시 그랬다.(더 심했을 거다.) 1980년대 이후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의 컴퓨터 혁명 역시 인류의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난 생각하고 있다. 가까운 변화라면 [인터넷 자본주의 혁명](이케다 노부오) 정도이겠지만, 조금 더 멀리는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권력이동], 좀더 멀리 보자면 [멋진 신세계](헉슬리)나 영화 [카타카]의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당장의 인터넷 붐과 버추얼 리얼리티 따위가 인류의 상당히 된 버릇인 종교를 대체한다거나 하는 근본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세계를 수많은 방식으로 연결하는 네트의 건설은 충분히 현재 자본주의 사회 안의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바꿀 수 있으며 지역적 집단의 지위 역시 바꿀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의 교류와, 그 이상의 새로운 감각 영역의 개척 역시 인간의 생활영역과 존재방식에 확실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 지구 위에서 우리는 다른 사회를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구세대의 지연과 학연, 연고주의와 위계사회, 나이 테러리즘과 반대되는 것은 이제 공허하게 되풀이되는 민주주의 이상사회나 코스모폴리탄의 관념어가 아니라, '기계와의 친근성'이라는, 새로운 생산양식에 적응하기 위한 기본기가 될 것이다. 전선이 재편성되는 것이다.
네트는 광대해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의 마지막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야말로 [공각기동대]라는 작품 전체뿐 아니라 현재 시점의 네트혁명** 에도 '요점정리' 격이며 n세대에게도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 있다.
*[공각기동대]는 [매트릭스]를 비롯해서 많은 미국영화들이 영향받고 베끼고 한 일본아니메로 근래의 가장 뛰어난 사이버펑크지만, 스스로는 [블레이드러너]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시로우 마사무네의 원작 [공각기동대]보다못하다는 푸념도 들리지만, 내가 보기엔 원작에 쓸데없이 붙어있는 여성비하적인 양념(써비스정신! -.-;;)과 산만함을 걷어내고 나름의 새로운 스타일로 다듬어낸 수작이다. 리메이크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라, 하고 견본으로 하고 싶을 정도다.*
**지구 위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보혁명은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화해온 박테리아들의 정보시스템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겠다. ([마이크로코스모스], 린 마굴리스, 도리안 세이건 범우사) 그러나 앞으로의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본다.**
우리에게 이젠 다른 접촉, 다른 망의 형성이 가능하다. 인간 사회를 바꿈으로써, 얼마나 다른 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을런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유전자공학과 의학의 발달 정도에 따라 상당한 변수가 생길 수 있을거다.
n세대는 지금 탄생하고 있다. 지금 네트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n세대는 말초적으로? 사이버펑크와 닿아있다. 네트를 자신의 감각기관처럼 운용할 줄 알며, 그를 통해 세계를 인지하고, 그를 통해 쾌락과 고통을 배우는 것이다. 기계와 연결되어 인간은 새로운 자유의 영역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지금 인간이 개척하는 모든 새로운 영역에는 자본주의 법칙이 기를 쓰고 따라와 자유를 판매가능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싸움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대응한다면, 상당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n세대 이후는 어디로 가나?
당장의 인터넷 붐이 쓸고지나간 다음엔 또 무엇이 유행할지, 그것까지는 확답할 수 없지만,(늙지 않는 약이 될지, 복제인간이 될지) '네트를 통한 개인의 연결을 특기로 하는' n세대 이후엔 어떤 또 다른 세대가 형성될지에 대해선 말할 수 있다. 기계와 '친근함'의 다음 단계는 '기계와의 도착'이 될 것이라고 난 본다. 인간과 기계는 '연결'되기만 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기계 안에, 기계가 인간 안에 들어와 그 '잡종'으로서, 나아가서는 새로운 인류를 만드는 것이다. 그 전초전으로서 '도착'이라는 감수성 훈련이 필요해질 것이다.
지금 수준에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이버섹스다. 지금도 미국에선 초보적인 수준의 버추얼 리얼리티로 사이버섹스를 행한다고 알고 있다. 그것이 초보 딱지를 떼고 제대로 기능할 정도가 되면, 현실과 가상, 진실과 환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인류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감수성을 발달시키게 될 것이다. 그때 'n세대 이후' 세대가 탄생한다. 이것은 아주 오랜 뒤의 얘기가 아니다.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지금 당장 '어린 n세대'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젊지는 않다. 확실한 노화방지책이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을 생각할 때, 난 지금의 십대들이 대책없이 말려들곤 하는 '젊음의 특권의식'에서 조금만 벗어나 이성을 가지고 자신이 갖고 있는 힘, 그리고 세상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자각을 했으면 한다. 원한다면, 그리고 제대로 한다면 우린 지금의 특권을 영원토록 가질 수도 있다. 그 특권은 물론 즐겁고 재미난, 모험과 가능성의 삶이다.
20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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