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끼가 나라를 망친다
back to noculture
한국이라는 나라의 예술을 망치는 것은 분명 '끼' 지상주의다. '어린 나이'가
모든 권리의 근원이나 되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연예계, 티비와
잡지의 세상에서는 니가 만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넘치는
'끼' 뿐이라고, 속삭인다. 물론 잘난 얼굴도 필수조건이겠지만, 아무나 도전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 그것은 생략하곤 한다.
음악성, 연기력, 지성, 그런거를 요구하는 것은 못 보았다. 요샌 '싱잉
엔터테이너'들도 자기네 이미지에 장식을 하나 더 달기 위해 작곡을 하거나
작사를 하는 것을 강조하는 케이스를 간혹 보지만, 그건 음악산업 전체를
보았을 때 정말 장식도 못 되는 수준이다. 그들에겐 '의미있는' 창조자로서의
역할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일본을 못 따라가는 이유
한국에서 옆나라 일본처럼 뛰어난 밴드들, 대중음악의 스타들을 볼 수 없는
것은 워낙에 수준낮은 음악산업의 꼬라지에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무지
능력있는 뮤지션을 찾아서 띄울 생각을 안 하고 무조건 잘 생긴 얼굴이나
팔아먹으려고 드니, 생각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피해가거나 아니면
애쓰다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기 십상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음악의 스타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곳은 그
힘든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미국이나 일본에서처럼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지닌 것을 보기 힘들다는 희안한 특징이 있다. 즉, 잘나면 모두 뜨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이 곳은 잘난 사람이 뜬 것이 이리 보기 힘든
것인가 말이다.
음악가 가수가 있던 적도 있었다
한국에도 고래로 모든 스타가 제조되는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융성했던
포크가수들은 상당수가 스스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짓고 가사를 쓰고
노래부르는 명실상부한 음악가들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문화말살 정책에 죽은
것은 한국 영화뿐이 아니다. 한국 가요도 그렇다.
그뒤, 그나마 외국에서 들려오는 좋은 팝으로 심신을 달래던 한국인들에게
완벽한 케이오패를 먹인것은 팝말살정책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국
가요계는 자유경쟁으로 그렇게 큰 것이 아니란 사실을 준엄하게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가요계는 팝말살 정책과 더불어 내수독점을 통해 얼렁뚱땅 몸만
불린 산업이며, 수준높은 일본의 음악이 쇄국정책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적당히 베껴서 표절가요만 양산하며 히트시키는 재미가 들려 정신
못차리고 아직도 그 모양인, 베껴먹는 잔재주 외의 것을 소통시키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모리배판이다.
국민 모두가 가수라서 가수가 없다?
물론 이런 작태의 한 면에는 특출난 소수만이 아니라 온나라 인민 전체가
노래 잘하고 춤잘 추는 소질가들라는 사정도 있다. 아무나 뽑아도 왠만큼은
하니 잘 생긴 애만 뽑아놓으면 나머지는 '기획력의 승리'라는 한국 가요판의
'진실' 말이다. 한국인이 서구인들에 비해 가수나 배우 등 예인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는 것도 '저 정도는 나도 한다' 내지는 '노는 애들은 다 저
정도는 해' 하는 예능 경시풍조가 무시 못할 이유가 되긴 한다.
** 그러나, 여기 이상으로 전국민이 가수 수준이라는 반도국 이탈리아에서는
표절음악가도 노래 못하는 가수도 없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복식호흡을 통하지 않은, 목에서 나오는 생소리로 노래를 하는
가수는 가수로 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
이 나라에 노래방이 많은 것은 모두 다 마이크 잡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또
노래를 전체적으로 잘 하기 때문이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한국인들은 음감도
뛰어나고 리듬감각도 뛰어나서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춘다.
** 그러나, 서양인들은 노래를 못 하는 사람한테는 절대 노래를 시키지 않는다.
거기는 자기 자식이래도 노래 못 하는 애가 가수 된다고 하면 넌 노래 못
하잖아, 하고 끊는게 당연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전통에서 펑크가 나왔을 때
그것이 어마어마한 혁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나 노래할 수 있다'란
것을 그들의 관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나
노래하는게 당연한 거고, 못하는 놈이 병신이라는 독특한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다. **
대중음악의 무책임
간단히 말해서, 이 나라는 가요가 '예술'이라는 개념조차 성립을 안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이다. 그 유치찬란한 씨절부림이 예술이라고? 그렇다면,
예술의 전당에 올라가야만 예술인가?
음악이 어디에 있나? 대중음악에 있다. 예술이 어디에 있나? 예술은
대중예술에 있다. 만화에 있고, 영화에 있고, 가요에 있고 CF에 있다. 지금
시대에 존재하는 '현재적 예술'은 클래식 음악이 아니다. 시조나 아악, 판소리와
산조도 아니다. 보존이나 카피에 급급한 음악은 현재의 음악이 아니다. 현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던지고, 그들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정서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도, 예술이래도 해석되지 않은채
(무의미하게) 지나쳐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가난한 재산은 이것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는 발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긴 귀족사회도 아니고 외계인 식민지도 아니다. 그런데 대중
속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대중예술에 대해서, 정작 그 산업시스템 안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자들은 '단지 돈'만 벌면 될 뿐, 아무런 자각도 최소한의
창작의 윤리도 없다는 비극적인 사실이 한국 음악의 앞날을 암담하게 한다.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가요계의 뿌리깊은 표절정책이다.
(->악덕 표절업자를 고발함)
굵직굵직한 장사꾼들은 어쩌다가 아니라, 히트를 치기 위해 필수로
표절을 한다. 자체정화능력이 빵점도 아니고 마이너스를 파고들어가는
질낮은 음악계의 창작윤리의 이면에는, 이게 무슨 예술이야, 흘러가는 가요야
들키지만 않으면 (잘 무마하기만 하면) 적당히 베껴서 팔면 되지 하는 예술
천시의식이 깔려있다.
여기는 음악은 아티스트가, 마케팅은 매니지먼트가 책임지는 케이스가
극소수다. 밴드음악이 있기 어렵고, 작곡가는 자기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회사의 주문대로 적절한 기획상품을 생산해낼 뿐이다. 창작을
하든 생산을 하든간에 표절만 안 하면 좀 나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시스템이 창조의 싹들을 제도적으로 밟아죽이는 것이다.
'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없다는 것이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해서 '해석'이 없다는 것이다. 주관이 없고 해석도 없이
어떤 예술을 바라겠는가? 실상 대중들은 '연예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에
이 나라는 제대로 된 예술이 나올 수 없다. 백날 '앞으론 문화산업의 시대!'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2000.9.22
-> 북의 예능인과 남의 연예인
back to noculture
back to 나는 미소년이 좋다